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72

굿바이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다양한 연령과 지역, 직업의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서로 별다른 대화없이 그냥 스처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잠시 동안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특히 자신은 어디에서 왔고, 어떠한 일을 하는지 이야기 해준 분들은 종종 생각이 나기도 한다. 특히 뉴스에서 어떤 지역, 어떤 직업에서 사건사고 소식이 들리면, 강다방 게스트하우스에 오셨던 어떤 지역, 어떤 직업을 가지셨던 분들이 떠오른다. 강다방 게스트하우스에 오셨던 분들이 강다방의 안부를 묻는 경우도 있다. 강다방은 못하는 연락을 용기내어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특히 강릉 지역에서 큰 화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안부를 물어주셨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곳으로 남는다면 ..

악플

자영업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 특히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남기고 평가할 수 있는 온라인 매체가 발달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면 1대 1로 말해주면 좋을텐데, 익명에 숨어 공개된 공간에 다른 사람들 보란듯이 악플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처음 누군가 악의적으로 달아 놓은 악플을 보았을 때 부들거리며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도 튼튼해지는지 가치 없는 글은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좋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잘 해주기 바쁜데, 싫은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게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곳이 되고 ..

아저씨

아저씨 군대에서 사용하는 비공식적인 단어 중에 아저씨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속해있는 부대가 아닌 타 부대 사람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군대는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지만 아저씨끼리는 계급에 상관없이 암묵적으로 서로를 동등한 대상으로 본다. 나의 계급이 일병일 때 같은 부대의 상병이나 병장은 직속상관이지만 (사실 병사끼리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타 부대의 상병이나 병장은 직속상관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는다. 여행자들끼리는 서로 동등한 관계가 된다. 누군가에게 더 잘 보여야하는 상황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거고 내가 싫으면 싫은거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회사 생활 할 때는 그토록 어려웠던 사람들이 밖에..

마지막 밤

마지막 밤 주문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나는 주문진을 떠난다. 주문진에 온지 약 3년 5개월이 지났다. 주문진에 온 이유는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서였다.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농어촌민박업으로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소유여야만 허가가 나지만, 주문진에 처음 왔을 때는 자가가 아니여도 임차로 농어촌민박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농어촌 지역을 찾다가 주문진에 왔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처음의 간절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졌다. 처음에는 서툴고 미숙했지만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해졌고 그와 비례해 가슴은 뛰는 걸 멈추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시도때도 없이 오는 연락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어느 ..

코로나와 집

Photo by Mick Haupt on Unsplash 코로나와 집 언젠가 게스트하우스에 온 손님과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님은 왜 사람들이 집에 안 있고 밖으로 나가는지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말을 안 듣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이 이해됐다고 이야기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반지하 단칸방에서 하루종일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야외로 나가는데 더 나은 행동이 아니겠냐고 이야기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옥탑방에 계속 있는 것보다 위험하지만 밖을 돌아다니는 게 건강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잠시 고시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 방 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가격이 더 비쌌다. 그래서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에 묵었다. 공용 화장실 겸 샤워장..

무지개와 밤바다, 꼬불꼬불한 산길

Photo by Yingchih on Unsplash 무지개와 밤바다, 꼬불꼬불한 산길 내가 강릉에 사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진 돈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시골뿐이었다. 그래서 도시가 아닌 시골인 강릉 주문진에 정착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고 돈이 많았다면 서울이나 강릉 시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도시를 다녔다. 서울은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제주도는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속초나 동해 등 강원도의 다른 도시들은 행정구역상 대부분이 도시(동 지역)로 되어있어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농어촌지역인 주문진에 왔다. 주문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신발과 옷이 젖은 채 힘들게 걷..

돈의 힘

PilMo Kang 돈의 힘 강릉 남쪽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 출근하는 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집과 마을이 사라져있었다. 마을 한쪽은 화력 발전소로 사용될 크고 높은 굴뚝이 올라가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헌 길을 밀고 넓은 새 길을 내고 있었다. 트럭이 쌩쌩 달리는 공사 중인 길을 걷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슬펐을까? 어떤 마음이 더 컸을까? 적극적인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평소 나는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맑은 공기를 내뿜는 산과 푸른 바다를 가지고 있는 강릉에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릉시 인구는 20만 명인데, 바다 등..

계절의 변화

AJ 계절의 변화 조금씩 따뜻해지는 날씨 덕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표는 올라가는 온도 이외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는 벌레들이다. 시골 오래된 집에 살다 보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벌레들의 종류들도 달라지는 게 보인다. 예전에는 벌레들이 나타나면 기겁을 했고, 어떻게든 벌레들을 퇴치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벌레들을 발견하면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생각이 든다. 벌레들을 잠시 보이지 않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벌레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걸 배웠다. 자신이 사는 집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나무와 벌레가 살았던 땅을..

햄버거의 맛

Armando Ascorve Morales 햄버거는 어렸을 적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일 년에 몇 번, 시골 할머니네 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탈 때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꽤 잘 사는 친구의 생일날 햄버거집에서 생일 잔치를 하면 참 행복했고, 어쩌다 한 번씩 학교에서 반장이나 부반장 엄마가 반 전체에 햄버거를 쏘는 날은 참 즐거운 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햄버거는 가장 저렴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시골 할머니네 집에 가지 않아도, 친구 생일이 아니어도 언제든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햄버거를 먹는다. 특히 여행 중에는 꼭 한..

코로나에 대처하는 소상공인의 자세

Tim Mossholder 코로나에 대처하는 소상공인의 자세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의 영향은 강다방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하고 있는 강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운행을 중단하거나 축소했고, 주문진 읍내에 위치한 유명 빵집과 호텔은 아예 영업을 중단했다. 강다방 게스트하우스 역시 손님이 줄었다 (쓰고 없다고 읽는다...) 2월 초기에는 그래도 사람이 좀 있었는데, 2월 중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자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나부터가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하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요즘 주변 장사하시는 분들과 만나면 대출과 관련된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자영업자 대출을 상담해주는 기관은 영업시간 시작 1-2시간 전 부..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

CJ Dayrit 게스트하우스 조식을 준비하는데 문득 파리를 여행할 때 묵었던 한인 민박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고 있었고, 돈을 아끼기 위해 빵과 스파게티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한인 민박보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파리 여행을 할 때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한식이 나온다고해 한인 민박을 예약 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타지 생활에 한국 음식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타지에서 먹는 한식이었지만, 한인 민박 주인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고 푸짐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 시간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한인 민박은 작고 오래된 가정집이었기 때문에 부엌에서 칼질하는 소리, 찌개 끓이는 소리 등 요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띵동! 관심 기업의 채용공고가 등록되었습니다

William Rouse 띵동! 관심 기업의 채용공고가 등록되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청소를 마치고 잠시 쉬고있는데 메일로 관심기업 채용 공고가 전달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게스트하우스를 시작 하기 전, 관심 기업으로 찜 해둔 곳이었다. 해당 직무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했던 직무와 비슷했고, 그 기업은 겉보기에는 그래도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결이 맞았다. 그래서 지원해볼까,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해볼까 고민했다. 나는 왜 회사를 그만 두었을까? 회사를 계속다녔다면 스트레스는 많았겠지만, 매일 챗바퀴처럼 살아야 했겠지만, 그래도 매달 안정적으로 월급은 들어왔을텐데...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을텐데... 회사의 부속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

주문진, 정지연

주문진, 정지연 누군가가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상처받으며 인간관계에 지쳐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알아보다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것이 바로 등대지기였단다. 그래서 등대지기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단다.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한 줄기 빛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바로 등대지기였음을. 사람이 싫어서 하려던 일이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주문진 등대. 100년 동안 그곳을 거친 등대지기의 삶을 잠시 생각해본다. 외롭고 지루하고 쓸쓸했을 시간들을 희망의 불빛으로 버티고 버텨내며, 떄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때로는 사명감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에서 20분 거리의 주문진 등대마을. 50년 가까이 익숙한 육지의 삶과는..

내 이웃의 집은 어디인가

내 이웃의 집은 어디인가 집 1.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 집을 보러 갔는데 집에 주인과 집에 들어가기 원하는 할머니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나의 등장에 집 주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집을 보던 할머니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할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당장 계약금을 보내주겠다고 집 주인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그 집에 들어설 때 부터 그 집은 게스트하우스 자리로 적합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빼앗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집을 나오며 할머니에게 조용히 저는 다른 집 볼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이야기 했다. 비록 나의 보금자리는 못 되어주지만 부디 누군가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랬다. 집 2. 동네 마트 전봇대에 전단지가 붙여진 집이었..

주문진에서 1년, 게스트하우스 운영 6개월 이야기

주문진에서 1년, 게스트하우스 운영 6개월 이야기 여행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여행을 할 때가 아닌 여행을 계획할 때라는 말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가장 즐거웠던 때도 여행처럼,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주문진에 온 지 1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6개월이 지났다. 꿈이 현실이 되었지만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약간은 허무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과 생각을 글로 남겨놓는다. 1. 장(長)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전 우리나라에는 서울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도권만 있는 줄 알았다. 실제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만 만났다. 그런데..

옥상에 누워 어두워지는 밤 하늘을 봤다

옥상에 누워 어두워지는 밤 하늘을 봤다. 기대했던 노을은 없었지만, 옥상에 누워서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지만, 해 지는 하늘을 본 건 몇 십년만인 것 같다. 도시에서 살 때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때로는 편의점에 들려 간단히 도시락으로 저녁을 떼웠을 시간, 거리와 지하철에서 지친 표정의 사람들과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시간. 같은 시간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나는 옥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 인데, 느긋하게 나태학살고 있는 건 아닌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지금 나는 잘 하고 있는건가? 남들 출근할 때 함께 출근하고 퇴근 할 때 같이 퇴근했다면 마음은 조금 편했을까? 도시에서의..

늦은 밤 주문진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늦은 밤 주문진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강릉에서 약속 모임을 가진 뒤, 주문진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늦은 밤 서울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사람 가득한 지하철, 버스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모임을 가지면 서울 사람들은 인천 또는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까지 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냐, 오는 데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을 받는다. 1시간만 넘어가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서울 사람들과 달리 인천과 경기, 수도권 사람들은 출퇴근, 통학,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매일 1-2시간이 되는 거리를 이동한다. (경기도에 살면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이곳 강릉에서도 서울에서 받았던 질문처럼 주문진에..

힘을 내. 너희들한테는 총보다도 더 강한 무기가 있어.

​ ​ 힘을 내. 너희들한테는 총보다도 더 강한 무기가 있어. 그게 뭔데? 미래야. 20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장소, 가장 치열했던 곳, 학교에 다녀왔다. 캠퍼스를 산책하고, 학생 시절에는 비싸서 특별한 날에만 마셨던 아이스 카페모카도 한 잔 마셨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지금은 생각도 안 나지만, 그때는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들 그리고 지금은 잊어버린 꿈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와 본 학교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고, 또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다. 그 때와 비교해 나는 얼마나 달라졌고 또 그대로일까?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 도서관에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잠시 잊고있던 미래와 꿈, 목표들이 생각났다. 꿈과 이상이 현실로 바뀌어버린 요즘, ..

집 안 곳곳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며 집안 곳곳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옥색 문고리입니다. 적당하게 슬은 녹과 세월의 때는 문고리의 나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검사필증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22년 전, 2000년생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제품이군요! 강다방은 요즘 문고리를 바꾸고 수도꼭지를 교체하고,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집 안 곳곳을 수리하고 묶은 때를 벗겨내고 있습니다. 처음해보는 일들이라 다소 서툴고 엉성하겠지만, 강다방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래봅니다. 밀레니엄세대의 감성을 담아, 그럼 오늘은 20000 (찡끗)

제자리에, 준비, 출발! (Ready, Get Set, Go!)

게스트하우스 자리를 계약 했다. 이곳저곳 손봐야 하는 곳들이 많아 입주하려면 아직도 몇 주 더 있어야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렁인다. 집을 구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마치 취업준비생이 된 느낌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할 수 있는 집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설사 몇몇 자리가 나와도 그곳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집 구하기를 포기해버렸었다. 예전 취업준비생일 때도 그랬다. 불합격과 좌절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매일 쓰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어느 순간부터 쓰는 횟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상황은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때는 그러한 시간이 무의미하고 가치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