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에서 1년, 게스트하우스 운영 6개월 이야기
여행을 할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여행을 할 때가 아닌 여행을 계획할 때라는 말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가장 즐거웠던 때도 여행처럼,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주문진에 온 지 1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6개월이 지났다. 꿈이 현실이 되었지만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약간은 허무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과 생각을 글로 남겨놓는다.
1. 장(長)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전 우리나라에는 서울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도권만 있는 줄 알았다. 실제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만 만났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곳,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 한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낚시하러 왔다가 게스트하우스 주변에서 문어 잡는 법을 알려주신 분, 주문진에 와서 밤하늘을 한 번도 안 올려다봤다는 나에게 도시와 비교하여 이곳은 별 보기 정말 좋은 장소라고 알려주신 분, 전투기를 조종하시는 분, 게스트하우스 나무문에서 소리가 나면 어떻게 수리하면 되는지 알려주신 분,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경험을 토대로 게스트하우스 홍보와 운영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해주신 분 등... 게스트하우스를 하지 않았으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어떤 손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금 나는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 단(短)
하지만 가끔은 너무 다양하고 달라 감당하기 어려운 분들이 올 때도 있다. 강다방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지치고 힘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다행이도 지치고 힘들 때는, 또 좋은 분들이 오셔서 위로와 힘을 주시고 가신다. 여행자들이 여행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게스트하우스에 오신 손님을 통해 힘을 얻는다.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큰 슬픔이다.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배웅해야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져야 하다보니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고 사람에 대한 신뢰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 것 같다. 아마 좋은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느끼게 된다면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지 않을까 싶다.
수입이 줄었다는 것은 단점이다. 같은 금액을 벌기 위해 회사 다닐 때보다 2-3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투자 대비 이익으로 따지면 효율성이 좋지 않은 업종이다. 또한 24시간 손님을 응대해야하고 한 곳에 묶여있어야 한다. 그래서 피로도가 높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일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자유롭지 못하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정작 여행을 잘 가지 못한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다보면 때로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한다.
3. 색(色)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 할 때는 다른 곳들과 많이 비교했었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는 시설도 좋고 이것도 있는데, 내가 하는 강다방 게스트하우스는 건물도 오래되었고, 다른 게스트하우스에는 있는 것들도 없었다. 그래서 누가 이런 곳에 올까, 과연 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뿐인데 꿈과 이상은 높았다. 그 차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자신이 없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는 부끄럽고 창피했던 시설을 어떤 손님들은 감사하게도 특색이 있어서 좋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라서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지금은 다른 게스트하우스나 숙박업소를 따라 하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강다방만의 색깔을 추구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다른 곳과 아예 비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름과 현실을 인정하고 강다방만의 색을 찾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고 조화롭게 잘 지내되 내 본성과 신념을 굳게 지키고 서로서로의 개성을 인정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을 수는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다보면 결국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와 다른 다양한 많은 사람들은 물론 전혀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게 불편하고 때로는 힘들수 있겠지만.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내가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다쳤을 때 속상하고 아쉬웠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손님들에게 평소보다 잘 해주지 못한 날, 비가 계속 내려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마르지 않는 날, 다른 일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지 못 할 때, 손님들끼리 성격이 다를 때 등 내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 할 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전과 비교해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편하게 먹고 있다. 나는 완벽할 수 없으니까. 요즘에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이 만족을 하건 만족하지 못하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한다.
사실 아직도 강다방은 강다방만의 색을 찾기 위해 고민중이고 노력중이다. 아마 게스트하우스를 문 닫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하는게 아닐까 싶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는 게스트하우스가 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곳이 되고 싶다.
4. 꿈(夢)
낯설었던 동네는 이제 많이 익숙해지고 빠삭해졌다. 처음 왔을 때는 신기하고 새롭게 보였던 것들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무뎌지고 있다. 여름 성수기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그래서 조금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조만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이 뭔가 비뚤어지고 어긋난다고 느낄 땐 낮잠을 자고, 여행하고 또 여행하라고 했으니까. 한번쯤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시기가 되었음을 느낀다.
20대가 되고 어른이 되면 뭔가 안정적이 될 줄 알았다. 30대가 되었을 때는 가정을 이루고, 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보다 현명해져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불안하고 부족하고 어설프다. 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는 게 꿈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취업하는 게 꿈이었고, 취업하고 난 뒤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나니 당장의 꿈과 목표가 사라져버렸다.
많이 부족하고 엉성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평생 꿈꾸던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에 정답은 없긴 한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것들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고민하겠지. 언젠가 새로운 꿈을 찾아 또 다시 떠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니까.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해야 하는 거니까.
주문진에 온지 1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지 6개월이 지났다. 주문진에 온지 2년이 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지 1년이 되는 날에 나는 또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문진 바다는 한 없이 넓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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