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splash의 Clark Wilson
강다방 야매소설 013
표면장력
지은이 강동이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맞추며 멋지게 나아갈 제갈건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사람들은 이기심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잠시 이런저런 딴생각을 하는데, 민호가 말을 건넸다.
"야 그 얘기 들었냐?"
"뭐?"
"곧 제한 급수 시작된대."
"진심?"
"응. 누나가 시청에서 일하는데 가뭄이 더 심해져서 이제 생활용수도 제한할 거래."
"와 제한 급수면 학교도 휴교하는 거 아니야?"
"코로나 때도 휴교 안 했는데 물 안 나온다고 휴교하겠냐?"
대릉시에 비가 내리지 않은지 3개월째. 식수원이 되는 운봉댐의 저수율이 20% 아래로 떨어졌고, 당분간은 비 예보도 없었다. 처음에는 농업용수가 제한되고, 그다음으로 시립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지금껏 살면서 물은 수도꼭지를 틀면 당연히 나오는 존재였다. 물이 끊긴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가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 옛날에는 단수 겪어본 적 있어요?"
"응 겪어 봤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집에 있는 욕조에 물 받아두고 그랬어."
"와 그런 시대도 있었네요. 단수되면 많이 불편해요?"
"응 말도 마라. 일단 씻지 못하게 불편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대소변 처리할 물이 없어서 아주 곤욕이야. 올해 가뭄이 심각해져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자 다시 책 펴라."
며칠 뒤 운봉댐의 저수율은 15% 아래로 내려갔다. 학교 정수기 사용이 중단됐고, 학생들에게 500ml 생수 6병이 매일 지급됐다. 화장실 소변기와 대변기, 샤워실의 반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교실 창가에 놓인 스킨답서스 화분의 흙도 바짝 말라붙어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는 길 민호를 마주쳤다.
"야 건아, 화장실이랑 샤워실 막아놓은 건 애바 아니냐? 막아 놓는다고 덜 싸는 것도 아니고."
"그니깐. 이게 무슨 난리래. 근데 청소할 면적이 줄어드니 물 사용이 줄어드는 건 맞지 않냐?"
"그건 그렇긴 해."
"야 근데 이러다 지드래곤 콘서트도 취소되는 거 아니야?"
"설마 그때는 나아지겠지. 어떻게 예매한 건데. 콘서트만 보고 공부하고 있는데, 취소되면 진심 슬플 듯."
가뭄이 깊어질수록 뉴스와 소셜 미디어에서도 대릉시의 가뭄 소식이 비중 있게 보도됐다. 마트 생수 코너가 텅 빈 사진, 저수율에 따른 제한 급수 내용, 생수 배포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각 글에는 사재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내용, 시청부터 제한 급수하라는 항의, 차 없는 사람은 생수를 어떻게 챙겨 가냐, 호텔 인피니트 풀은 왜 제한 안 하냐 등의 댓글이 수십 개 달려있었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가는 길, 간식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마트 한 편에 쌓여있던 1.5L 생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온라인에서만 보던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욕조와 양동이에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빠 물 받아 놓은 거예요?"
"응. 내일부터 아파트 전체가 단수된대. 학교는 단수 안 됐지?"
"네 화장실이랑 샤워 부스 몇몇 개를 막아놓긴 했는데 아직 단수는 안 됐어요."
다음 날 일어나 무심코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나오지 않았다. 비몽사몽이었던 정신이 확 깼다. 물이 나오지 않는 게 이런 거구나. 욕조에 받아 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 대충 세수했다. 머리도 감았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렸는데, 양변기 물을 채우기 위해 바가지를 여러 번 부어야 했다.
'양변기에 생각보다 많은 물이 사용됐구나...'
평소라면 집에 없을 아빠가 있었다.
"아빠 수영 안 갔어요?"
"응, 가뭄 때문에 수영장도 폐쇄됐어."
가뭄 때문에 여기저기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모처럼 휴일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컴퓨터를 켜 마인크래프트에 들어갔다. 디스코드로 민호를 만났다.
[야 너희 집도 물 안 나옴?]
[우리 집은 주택이라 물 나옴. 물 필요하면 와라. 나눠줄게.]
[말이라도 고맙다.]
게임 속 세상이지만 푸른 강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바닷물에 염분을 제거하는 담수화는 어렵나? 담수화에 대한 정보를 AI에 물어봤다. 담수화보다 관로 누수 줄이는 게 더 효율적인 거 아닌가? 휴대폰 상단에 인스타그램 알림이 떴다. 알림을 확인하려는데, 가뭄으로 물통을 주문했다가 강제 취소되었다는 사연이 피드에 보였다. 주소가 대릉시로 되어 있어 판매자가 주문을 취소했다는 이야기,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무료로 물통을 배송해 줬다는 내용이었다. 모처럼 인류애가 충전됐다. 같은 반 상화도 그 글을 리포스트한 게 보였다.
엄마가 밖에 나갔다가 물통 여러 개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물 더 받아두려고요?"
"응,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서.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물 나온다고 하니까 물 써야 할 일 있음 그 때 써라."
밀린 과제와 공부, 약간의 게임을 하다 보니 물 나오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 하던 것만 마무리하고 씻어야지 하다 결국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부랴부랴 샤워실에 들어가 샴푸로 머리에 거품 칠을 했다. 머리를 헹구려는데 물줄기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이 끊겼다.
"엄마! 물 끊겼어!"
"잠깐만 기다려봐, 부엌 수도꼭지 틀어볼게."
잠시 뒤, 엄마가 이야기했다.
"어머 물이 아예 안 나오네. 건아, 받아둔 물로 일단 헹구고 나와."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이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우리 아파트 정해진 상수도 용량을 모두 소진하여 물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과도하게 물을 저장하는 행위를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이 쉬지 않고 울렸다. 예정보다 빨리 물이 끊긴 건, 모든 가정에서 물을 받아두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가 딱 필요한 양의 물만 사용하면 물이 끊기지 않았을 거라 했다.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저층에서 물을 많이 써 수압이 약해졌다고 이야기했고, 퇴근이 늦어져 물 나오는 시간을 놓친 사람들은 급수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존댓말을 하고 있지만, 날이 서 있었다. 분위기가 과열되어 휴대폰 화면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았다.
뒤숭숭한 주말을 보내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한편에 전국에서 보내준 생수가 쌓여있었다. 교실로 들어섰는데 민호와 상화가 싸우고 있었다.
"주택 사는 얘들은 생수 하나씩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너희 집은 단수 안 됐다며? 이런 거 차별 아니냐?"
"씨발, 그게 왜 내 탓인데. 꼬우면 시청에 따지든가."
상화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건아? 넌 누구 편이냐? 너희 집도 단수됐지?"
"초딩도 아니고 유치하게 네 편 내 편을 나눠."
민호가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상화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둘 다 자기 처지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샤워 도중 머리에 샴푸칠을 했는데 물이 끊겨 짜증 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상화가 민호의 물병을 빼앗아 집어 들었다.
"너희 집에는 물 나오잖아."
"지금은 집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게 내 잘못이냐?"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 시간, 물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H2O는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이루어진 화학물질로, 지구상의 물(Water)을 의미. 생명체 생존에 필수적이며, 액체·고체·기체 등 자연 상태에서 세 가지 형태로 모두 존재하는 지구의 핵심 물질]
"자 오늘은 요즘 귀하다는 물을 가져왔다. 물이 가득 담긴 컵에 물을 한 방울 더하면 어떻게 되지?"
"넘치지 않고 컵 위로 둥글게 솟아올라요."
"맞아. 왜?"
"표면장력 때문에요."
"맞아. 물은 서로를 붙잡으려는 힘, 표면장력이 있어. 물 분자 간 강력한 수소 결합 때문에 생기는 거지. 그래서 물은 다른 액체보다 표면을 유지하려는 힘이 훨씬 커."
창밖으로 나무는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창가에 놓은 화분도 잎이 말라있는 게 보였다. 도로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물 나르는 소방차가 지나갔다. '물은 서로를 붙잡으려는 힘이 있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민호의 말이 떠올랐다. "물 필요하면 와라." 무료로 물통을 보내준 판매자도, 그 글을 리포스트했던 상화도 생각났다. 사람들은 정말 이기심과 위선으로만 가득 찬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수업이 끝난 뒤,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 잔뜩 쌓여있는 플라스틱 물병이 눈에 들어왔다. 물병 중에는 물이 남은 물병이 있었다. 그 물을 한곳에 모아 잎을 축 늘어뜨린 스킨답서스 화분에 부어주었다. 메마른 흙 위로 물이 천천히 스며들어 색이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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