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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에세이] 불온한 심장병, 오뉴월의 뉸슬

강다방 2023. 10. 9. 16:31

 

 

 

 

독립출판물, 에세이
불온한 심장병, 오뉴월의 뉸슬

 

 

알릴 수도 없고 알아서는 안되는 희귀병을 앓는 작가의 에세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찬란하지만 아픈, 푸른 청춘과 같은 여름이 느껴진다. 표지가 예뻐 디자인을 누가 한 걸까 궁금했는데, 작가의 브런치를 보니 여행가서 찍은 연못의 잉어 사진이라고 적혀있었다. 책을 다 읽고 불온한 심장병 제작 일기 브런치도 보면 좋다.

 

 

제목 : 불온한 심장병
저자 : 오뉴월의 뉸슬
펴낸곳 : 천목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16쪽
크기 : 110x180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2년 10월 4일
ISBN : 979-11-981680-1-6 (03810)

작가 인스타그램/브런치
https://www.instagram.com/5.nw_ull/

https://brunch.co.kr/magazine/midsum-eighteen

 

불온한 심장병 제작 일기 매거진

#책 #독립출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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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항상 비눗방울과 해파리들이 가득했다.

 

 

 

 

 

눈을 비벼도 온 세상이 흐렸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것처럼 희뿌옇다. 나는 앞을 더듬어가며 간신히 뒷문을 열었다.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교실 안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셀수 없이 많은 점이 찍힌 점성화 그림 같기도 하고, 240p 화질같이 뭉개져 보이기도 했다. 내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들은 물감이 얼룩덜룩한 추상화였다. 색깔은 빛을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고 친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덩어리져 움직였다. 친구들의 눈 코 입은 물론...

 

 

 

 

 


왜 병에 걸렸을까. 이 질문은 한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왜 나일까? 왜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나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날까? 무한한 별 중에 왜 하필 이 지구였고, 239개 국가 가운데 왜 하필 대한민국이며, 5천만 명의 사람 중에 왜 나이며, 대한민국의 학생 중 왜 하필이면 나고, 서른두 명의 같은 반 친구 중에 왜 나지? 왜? 무슨 이유로?

불공평하다. 나는 담배를 피운 적 없고 술도 마신 적 없다. 젓가락으로 맛본 맥주도 술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특별히 잘못 먹은...

 

 

 

 

 

 


폐동맥 고혈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병은 '병'이 아니었다. 그저 고혈압의 일종이었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심각하지 않게 생각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다루는 희귀병은 죽을 것처럼 시름시름 앓는 사람이었 다. 그 경중이 나와 달랐다.

폐동맥 고혈압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에둘러서 심장병이라고 하거나 호흡기 쪽이 약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정확한 명칭을 말하기보다 심장병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병'인 줄 알고 심각하게 봤다. 폐병이라고 말하려니 페트병이랑 발음이 비슷해서 심장병이라고 말한 건데,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을 속이게 되었다. 귀찮아서 심장병이라고 말한 게...

 

 

 

 

 

 


나는 언제쯤 두 발을 땅에 내릴 수 있을까

심장통은 폐동맥 고혈압의 흔한 증상 중 하나다. 심장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하고, 심장 속에 작은 유리 조각들이 뒹굴고 있는 것처럼 아프다. 마치 아가미가 생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이 병을 아가미 병이라고 부른다.

태생이 바다였을까. 땅 위에 있는데도 물 속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사계절이 여름인 듯 숨이 막힌다. 거기에다 나는 비염도 있어서 숨을 편하게 쉴 수가 없다. 가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때도 있지만 가슴 밑은 언제나 물밑이었다.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은 내가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참고 견디다가 마침내 '아프다'라는 개념이 모호해졌다. 통증이 자주 있다 보니 매번 아프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건지 아니면 그보다 심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혹시 나는 매 순간 아팠던 것인가.

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신을 다른 데 두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면 통증은 사라진다. 하지만 때때로 그 시간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럴 때면 울컥하며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평생 이러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인어가 되기 싫었는데, 이미 난 인어였다. 오늘도 나는 내 꼬리를 갈무리하며 뭍으로 나온다. 실은, 내가 발을 딛는 곳마다 바닷속이었 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투병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내 비밀을 말해주고 싶었다. 가까워 질수록 그걸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속인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답답해할 때마다 엄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비밀이 있다며, 자신도 딸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다며 나를 토닥였다.

"엄마가 나한테 숨기는 비밀이 있다고? 그게 뭔데?"

"말할 수 없으니까 비밀이지. 말할 수 있는 건 진짜 비밀이 아니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그 애의 꿈이었다. 언제부턴가 데이트하는 꿈을 꾸면 항상 그가 나왔다.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려고 하면,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도서관 안이었다. 책을 둘러보다가 책장 빈 칸 사이로 그가 보였다. 그는 꽃다발을 건네며 나에게 프로포즈했다. 폭죽처럼 책들이 터지며, 흰 종이가 컨페티처럼 휘날렸다. 도서관은 빠르게 교실, 공원, 에펠탑, 카페 등 다양한 공간으로 바뀌더니 암전됐다. 나는 이 꿈이 그가 나올 마지막 꿈이라는 걸 직감했다. 눈이 떠졌...

 

 

 

 

 


하고 귀뚜라미가 울었다.

가로등의 불빛은 어두운 밤 속에서
우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우리는 그날 이후 만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와 문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사라졌다. 만나기로한 약속도 흐지부지되었다. 고등학교가 달라졌지만, 크리스마스 날이나 새해가 되면 안부 문자를 전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 그것마저 완전히 끊겼다.

 

 

 

 

 

 

떡볶이 먹은거 기억나? 거기 뻥튀기 아이스 크림이 짱이었는데. 야, 그거 TV에도 나왔다. 봤어?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끝나질 않았다.

"너는 요즘 학교에서 어때?"

'그' 질문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들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이자,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간다는 생각에서 나온 직선적인 물음. 나는 S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지내고 있어."

 

 

 

 

 

 

그런 나에게 책방은 사람들로부터 날 숨겨줄 요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희귀병을 가진 환자도,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존재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비정상이라는 생각에 갇혀 자신을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후미진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책방이 보인다. <해리포터> 속 마법사의 거리 '다이애건앨리'처럼, 출입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문을 열자 팅커벨의 날갯짓 같은 종소리가 들렸다. 딸랑- 투명한 유리문이 햇빛에 반짝여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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