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처방전 없음, 홍종원
강릉에 있는 독서모임 <이음>분들과 함께 읽은 책. 강릉에서 대학을 나온 의사의 이야기로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강다방은 최근 마을 공동체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제목 : 처방전 없음 - '새로운 건강'을 찾아나선 어느 청년의사의 인생실험
저자 : 홍종원
펴낸곳 : 잠비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87쪽
크기 : 135x200mm
가격 : 16,800원
발행일 : 2023년 6월 5일
ISBN : 979-11-980684-2-2 (03810)
강릉 독서모임 이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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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강'을
찾아나선
어느 청년의사의
인생실험
처방전 없음
홍종원 지음
함께 놀고, 함께 작당하고,
함께 건강하고!
주민들과 어울려 살며 축제를 만드는 것.
조건 없는 호의 속에 청년들과 같이 사는 것.
아픈 이의 집을 찾아가 환경까지 살피는 것.
병원 밖 의사 홍종원이 꾸려가는 진짜 건강한 삶
군대 가는 심정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대학에 갔다. 대학생이 되던 해 4월 5일, 무릎까지 눈이 왔
던 게 기억난다. '아, 내가 강릉에 왔구나'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인 듯 보였다. 같은 반 동기들 약 50여 명과 거의 같은 수업을 들었다. 주말이면 선배들, 동기들 대부분이 서울로 갔다. 절반 이상이 서울 출신이라 집에 가는 거였다. 난 광주가 너무 멀기도 하고, 강릉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집에 가는 대신 주말에 할 것들을 찾았다.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마음...
장애가 있는 엄마와 아들에게, 폐지를 줍는 홀몸 노인에게 나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사는 집, 먹는 음식, 경제적 능력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이렇게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환자들의 삶은 모두 병원 밖에 있다. 그 삶을 우리는 어떻게 보듬어야 할까.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치료 이후의 삶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없는 것일까.
2008년 이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됐고, 제도화 된 돌봄과 요양 서비스가 병원 밖 환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 서너 시간의 서비스가 24시간 남편의 몸을 돌려주어야 하는 아내에게 과연 큰 도움이 될지,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을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왜 우리를 인큐베이팅하는 겁니까, 우리가 신생아라는거요?"
마을공동체 시범사업을 하며 만났던 어느 동네 통장님은 활동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주민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불평했다. 활동가들 월급을 대체 누가 주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주민이 직접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때는 그를 욕심 많은 사람, 마을공동체 사업의 훼방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통장 월급으로 약소한 수고비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봉사해 왔던 그들에게, 마을 공동체란 이름의 사업이 들어오며 활동가들이 주민들을 가르치려는 모습은 영 불편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 지역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자다 보면 DNA에 새겨지는 정보도 같을 수밖에 없다. 그 정보가 세 대를 거쳐 전달되고 그것이 지금 나의 DNA에 새겨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매끼 같은 음식을 먹으면 몸의 형태도 비슷 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렇듯 '누구와 같이 사느냐' 하는 문제는 세대를 재생산하는 큰 기제 중 하나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메커니즘이 급속히 깨지고 있다. 더 이상 가족과 같이 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설령 같이 살고 있더라도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부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역시 가족의 품을 일찍 떠난 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에 집중했다. 대학도 원래 살던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고, 학기 중에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에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서울 강북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이 내 딴에는 한 곳에서...
"선생님, OO복지관이에요. C님 사망 소식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어요. 또 가실까 봐서요."
"정말요? 제가 얼마 전에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어서 못 뵙고 돌아왔어요. 어떻게 된 건가요?"
"집에서 쓰러져 계신 걸 발견했는데, 이미 사망하셨다고 해요."
C는 임대아파트 단지 내 복지관에서 의뢰한 분이었다. 혼자사는 80대 여성으로 인지가 또렷하지 않고 집 안의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모아놓고 사는 상황이었다. 복지관 간호사님은 그가 스스로 병원을 찾지 않으니, 나에게 방문관리를...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쁜 죽음도 있을까? 죽음 자체는 중립적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죽음 자체는 대체로 평등하다. 첨단 의료기술은 획기적으로 생명 연장을 실현했지만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두었든 쓰레기를 잔뜩 쌓아두었든 죽음을 맞은 본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음의 '질'은 산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고독사보다는 고독생이 더 슬프다.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도 무섭지만, 그로 인해 서로를 돌보지 않고 누군가가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잊히는 것이 더 끔찍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벌벌 떨면서도 정작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실질적 고통에는 무덤덤해진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C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 한동안 내가 그의 고립감을 조 금도 줄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컸다. 그리고...
대증적 요법을 써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또한 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갔으면 한다. 자신을 완전히 치료해 줄 약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시간을 좀 더 즐겁게 채워 나갔으면 하고 바란다.
치료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F에게 본인과 같은 병이 자녀에게 생길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과 자녀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법을 고민해 보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좀 더 풍성한 삶의 환희를 느끼며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가 이상주의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품'을 만들어내는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사실이다. 그들과 함께하고,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면서 나 또한 배운다.
자신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모습을 이용한다.
누군가는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니까. 그러나 모든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산다면 경쟁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대학 교수, 과학자, 시민활동가 중에도 그런 경쟁에 뛰어들어 '관심(관심종자)'으로 사는 이들이 많다. 그 모습이 생경하긴 하지만, 한편 이해도 된다. 연구결과가 관심받아야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사회운동도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관심이 연구활동이나 사회운동을 지속할 '돈'을 끌어모아 주니까.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한번 생각해 보자는...
너무 조급하지 않게, 너무 절박하지 않게, 찬찬히. 더 빨리 가자고 하는 사람들의 큰 목소리 사이로 잘 들리지 않는, 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꾸준히 뒤를 돌아보며 아픈 이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하려 한다. 지금보다 더 천천히, 더 많이 돌아보며 가야한다. 그래야 장애가 있어도 때때로 고향에 다녀올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
계속해서 아픈 이들을 만날 작정이다. 건강을 강요하지도, 약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과 함께하면서 마음이 시키는 소리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아픈 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언젠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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