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에세이]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연옥

강다방 2022. 12. 25. 15:42

 

 

 

 

 

독립출판물, 에세이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연옥

 

 

직업의 시작 혹은 끝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특히 더 추천하고 싶은 책.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회사에 취업했지만 당당하게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의 글. 글을 읽다보면 중간중간에 드립과 패러디가 들어있어 피식피식 웃게 된다. 강다방의 개그 코드와 맞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제목 :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 예민하고 아픈 사람의 퇴사와 일-실험 기록
저자 : 연옥
펴낸곳 : 제로페이퍼(Zero Paper)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23쪽
크기 : 128x182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2년 7월 15일
ISBN : 979-11-978971-0-8 (03800)

 

 

작가 연옥

https://www.instagram.com/yournokok/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예민하고 아픈 사람의 퇴사와 일-실험 기록

글과 그림 연옥
zero paper

 

 

 

 


연옥

만성적 정신질환과 함께 굴러가는 창작자.
한때 학교와 회사에 몸담기도 했지만,
가정폭력으로 얻은 우울증과 경계성 성격 장애로 인해
모두 그만두고 조직 밖 노동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정상 가족, 노동에 적합한 몸과 같이
사회에서 규정한 정상성에 의문을 던지고,
이로부터 비껴간 존재로서
느리지만 유연하게 일하고 살아남는 이야기를 합니다.

instagram.com/yournokok
brunch.co.kr/@yournokok

 

연옥의 브런치

프리랜서 | 만성적 정신질환과 함께 굴러가는 창작자 겸 조직 밖 노동자. 회사를 벗어나 탈성장을 지향하는 삶, 먹고사니즘 앞에서 흔들리는 예술가의 고집, 기타 잡다한 리뷰를 적습니다.

brunch.co.kr

 

 

 

 

 

강다방을 찾아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건강을 유예하며 일하는게 정말 당연할까요?
우울증과 경계성 성격 장애를 가진 저에게는
정신건강을 지키는게 제일 중요했어요.
그래서 저를 갉아먹는 조직에서 걸어나와,
제게 가장 잘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일-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직업의 시작 혹은 끝에서 방황하는 모두를 응원해요!
- 작가 연옥 드림 - 

 

 

 

 

 

사원증
박연옥

 

 

 

 

 

들어가며 8

1부 지워지는 나를
이보시오 인사팀 양반, 연차가 겨우 15일이라뇨 16
대리님 눈을 왜 그렇게 뜨세요? 24
나의 정신병을 알리지 말라 30
억울하면 네가 사장하던가 36
회사에 충성하기 위한 건강은 사양합니다 42
퇴사하고 싶지만 명함은 갖고 싶어 48
너랑 결혼까지 생각했던 조금 미친 사람 52
안녕 회사, 함께해서 더러웠다 62

 

 

 

 

 

2부 지키는 일

살기 싫어도 돈은 벌어야 한다네 74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80
고객님, 죄송하지만 꺼지시길 바랍니다 86
돈을 주겠다는데도 감히 일을 안 해? 94
어떻게 무능함까지 사랑하겠어 - 1 98
어떻게 무능함까지 사랑하겠어 - 2 104
후회 없이 도망치는 완벽한 방법(이 있을 리가) 108
이름은 없고요, 직업은 실험 중입니다 114

나가며 120

 

 

 

 


회사를 다닐 때 제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몸을 쓸어보면 형태를 잡아주는 피부가 느껴졌고, 그 안에 출렁거리는 오장육부가 있는 게 분명했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보는 저의 모습은 흐릿하게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원치 않는 전화를 받으며 눈을 비빌 때마다, 언제든지 호출될 수 있도록 저의 몸을 매일 회사로 실어 나를 때마다, 우울증과 경계성 성격 장애를 사정없이 물고 뜯는 자극들에 에워싸질 때마다 저를 조금씩 잃어버렸던 것만 같습니다.

물론 회사는 저를 그렇게 대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저를 가두는 대신 입에 풀칠도 할 수 있고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는 돈과 명함도 주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누구를 탓 할 것도 없이 제가 제 발로 나와야만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입사한 지 일 년 남짓했을 때 깨달았습니다. 일 년 오 개월 만에 지워지던 나를 꺼내어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놓자, 평일 오후의 햇살 아래 부서질 듯 연약했던 몸의 경계가 점차 모습을 갖추어 반짝였습니다. 전보다도 훨씬 더 크게 숨을 쉴 수 있었고, 형체를 찾은 저의 몸 곳곳 에 싱그러운 공기가 스몄습니다. 아, 살아있는 것만 같아.

 

 

 

 

 

드디어 저를 갉아먹는 모든 걸 죽이는 데에 성공한 것만 같아 기뻤습니다.

그 착각에서 깨어나기까지는 회사에 몸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할 일도, 갈 곳도 없어지자 전보다 더욱 심한 우울에 절어 살기도 했고, 생계에 쫓겨 조직 밖 노동자로서 초라한 데뷔를 한 뒤 아주 오랫동안 손가락만 빨았으니까요.

그렇게 이 년 남짓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저의 직업의 이름은 컨설턴트에서 작가로, 또 출판사 대표로 여러 번 바뀌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덕분에 저 자신이 전보다는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마다 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썼기 때문입니다. 매일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도중 마음이 무너지면 언제든지 쉴 수 있고, 저에게 너그러운 사람들만 골라서 만날 수 있도록 까다롭고 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무슨 일을 견디거나 견딜 수 없는지 배웠습니다.

여전히 벌이는 아쉽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런데도...

 

 

 

 

 

이상적인 회사원
- 제 일 아닌데요
- 싫어용
- 퇴근했는데요?
- 넹

현실적인 회사원
- 넵 알겠습니다
- 넵 넵
- 넵 물론이죠!
- 죄송합니다...

 

 

 

 

 

결국 그날은 무급휴가를 쓰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편도 4만 원 정도 나오는 거리라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았다. 돌아봐야 하는 날이 그저 하루 뿐일까. 모니터 앞에 앉았을 뿐인데 바닥이 꺼지는 것처럼 불안이 잠식하던 날, 화장실에 숨어 운 티를 내지 않고 눈물을 닦는 방법을 검색해본 날,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통근 버스를 보며 몸을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순간을 떠올렸다.

병을 감추고 사는 건 능숙했기에 앞으로도 계속할 자신이 없던 건 아니었다. 집과 회사에서 서로 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건 정신질환이 없는 사회인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이니 특별히 억울한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남들도 다 그러고 사니까, 버티자. 그게 직장인들이 자조적으로 되뇌는 삶의 방식 아닌가.

 

 

 

 

 


이 역시 윗사람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냐고 되묻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겠지만, 혹시 몰라서 다시 한번 사고실험을 해보았다. 내가 모시던 상무님이었으면 푸근하게 허허 웃으며 이렇게 답해주었을 것이다. "그것까지 알아야 내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할 말이 없었다. 억대 연봉에 걸맞은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이 똑바로 일하기 위해 그 자료가 필요하다는데, 내가 불필요하다고 맘대로 판단해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보고자료 를 만들어오라는 소리를 들어도 짜증이 치밀지언정 억울할 수 없었다. 그래, 나보다 회사 더 오래 다닌 사람이 이게 필요하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

 

 

 

 


지금까지 내가 회사 이름으로 보낸 몇 개의 이메일로 수만 톤의 카고가 배에 실리고, 수천만 원의 돈이 회사로 입금되었다. 하지만 그 물건도 돈도 나의 것이 아니었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진동을 놓치지 않도록 베개 아래에 핸드폰을 넣어놓고 자다가, 그래도 못 일어날까 봐 새벽 한 시에 울리는 알람을 맞추는 건 난데 말이다.

그렇다면 난 대체 누구를 위해, 뭘 하는 걸까.

 

 

 

 

 


실려 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두려운 마음에 점심때 마다 부지런히 산책했지만, 오후 회의에 참석하려면 헐레 벌떡 경보로 걷다가 10분 만에 돌아와야 했다. 비슷한 시간 동안 흡입하는 구내식당 점심만큼이나 나의 운동도 인스턴트에 불과했다.

직장 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비단 책상에 묶여 있는 8시간뿐이랴. 하루가 멀다고 답답하거나 억울한 지시가 내려오고, 거기에 열 받은 누군가가 전화기 너머로 폭언을 퍼부으면 나는 속으로 두 배의 욕을 씨부렁거렸다. 사옥에 무당이 점집을 차렸다면 장사가 참 잘 되었을 텐데. 쾌속 이직을 기원하는 부적, 혹은 상사의 형체를 한 저주 인형을 사주하려는 자들의 억누른 독기가 가득하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점집 대신 심리상담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으레 사옥에 입점한 업체가 그러하듯 회사와 제휴를 맺어 몇 번의 상담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퇴사하고 싶지만 명함은 갖고 싶어

이렇게 거창하게 고민해놓고 사표를 던지기까지 왜 일 년 넘게 걸렸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일단 나도 세상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돈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부터 시원하게 밝히겠다. 그래서 팀장님께 어떻게 퇴사 의사를 밝혀야 할지 내적 리허설을 하다가도, 몇 달 전에 받은 전세자금대출과 밥과 간식을 기대하는 네 마리 고양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퇴사 후 어떻게 먹고 살지,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동안 얼마 큼의 돈이 필요한지 계산해보고 그걸 모으느라 퇴사가 늦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내가 회사를 떠나길 망설이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소속이 사라지는 순간, 나 자신을 평범하게...

 

 

 

 

 


“머리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씩씩하고 싹싹하고. 그런 너를 지금 만난 게 참 다행이야."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바보같이 헤실거렸지만 속으 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자식,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덥석 미래를 약속하다니. 가방끈만 길고 생각보다 멍청한 놈일지도 몰라.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향해 차근차근 밟아 올라 온 사람들은 신기하리만큼 원하는 게 비슷하다.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얻어 돈을 착실하게 모으고, 그걸 열심히 굴려서 목돈을 만든 뒤, 이미 늦었다는 소리를 듣기 전에 후다닥 결혼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배우자와 힘을 합쳐 수도권 신도시의 24평형 아파트를 사거나, 보다 작은 전셋집을 육아가 가능할 정도의 평수로 업그레이드한 뒤에 아이를 숨풍숨풍 낳는다. 먹고 살기 팍팍해져서 이런 단계를 밟는 나이가 조금씩 많아지긴 했어도 이렇게 사는 게 성공, 아니 평균이라고 받아들여지는건 여전하다.

 

 

 

 


그렇게 심각하게 말을 해. 앞으로 재발하지 않는다면 난 상관없는걸."

그렇게 뻔뻔하게 조건부 사랑을 선언하고는 안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폭력에 시달렸다는데, 그런 과거를 칼로 도려낸 듯 깨끗이 단절시키고 지금은 '완치' 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감수성과 상상력이 겨우 거기까지만 닿는 사람과 나는 사랑도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자리에서 헤어짐을 결심할 만큼 강단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이해시키고 싶어 나의 아픔에 대해 더 길게, 더 자세히 설명하길 반복했다. 그럴수록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걸음씩 도망쳤고, 거기에 욱한 나는 이런 모습까지 사랑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바득바득 집착하기 시작했다. 받지 못할 걸 아는 사랑과 이해를 갈구하며 나 자신을 시꺼멓게 태운 끝에 남은 건, 네가 부담스러우니 헤어지자는 문자 한 통이었다.

 

 

 

 

부적격판정

경제력 : 하
가족관계 : 최하
멘탈도... 측정 불가한 최하수준이군.

결혼적령기 진입 후 연애 상대로 부적격 판정
다시 태어나세요

... 야... 너두...?
어...?

이것도 인연인데 너를 더 알아가고 싶어
응 도태된 찐따 사절~
뭐래 거울보셈

 

 

 

 

 

주변에 천천히 소식을 알리면서 나에게는 '퇴사 예정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다. 나는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내가 그저 '근로자 1'일 때와는 너무 많은 것이 순식간에 달라져 놀라웠다. 평소 왕래가 없던 입사 동기들이 줄줄이 커피타임을 신청하더니 자신의 비밀스러운 퇴사 계획을 털어놓았고, 나도 덩달아 신나서 나의 준비 과정을 세세히 공유해주었다. 더 이상 같이 일하지 않을 사람이라서 그런지 나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솔직한 감상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항상 최악을 예상하던 탓에 나를 진짜로 좋게 봐주신 분들의 칭찬을 흘려보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했고, 아무리 신입이라도 나처럼 업무를 주는 대로 다 받는 건 무식하니까 앞으로는 적당히 쳐내며 일하라는 당부도 들었다. 아쉬움 가득한 배웅이자 애정 어린 조언이 었다.

퇴사하며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던 것이 또 하나 있다. 임무를 내팽개치고 탈주하는 입장에서 나의 배설물과 함께 남겨진 팀원들에게 아주 미안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너무도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근로자 1'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직장인 놈들 코를 누러줄테다
너네보다 돈도 더 잘 버는데
주2일 출근 워케이션 안식월 모두 누리는 프리랜서가 될거야

N년 후
자영업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한 푼 만 보태주십쇼
홈택스 사용법 가르쳐주실 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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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용지로 162 (옥천동 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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