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강릉 관련 도서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파주 적군묘지부터 통영 용초도 포로수용소까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6.25 전쟁에 대한 대한 이야기. 강릉 부분에는 노암터널(노암동 기찻굴), 송정해변, 강릉버스터미널 3곳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목 :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저자 : 박석진, 신재욱
펴낸곳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제본 형식 : 종이책 무선제본
쪽수 : 335쪽
크기 : 157x210mm
가격 : 18,000원
발행일 : 2022년 1월 4일
ISBN : 979-11-972785-1-8 (03980)
강원
진실규명의 불모지
고성군 쑥고개
속초시 부월리 학살지
강릉시 송정해변, 노암동 기찻굴
홍천군 삼마치고개
강원지역을 답사하며 줄곧 한 생각은 무척 무척 넓다는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 - 하 장소와 다른 장소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강원도의 답사 지역은 가깝게는 수십 킬로미터에서 멀게는 백 킬로미터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학살은 강원지역 전역에서 일어났지만,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그 드러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기억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강원지역은 광역시를 제외한 다른 도에 비해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시천 건수가 가장 적다. 신청이 적다 보니 진실규명이 되었거나 학살 피해자로 추정된 희생자 수도 146명(미신청자 포함)으로 광역자치 단체 중에서 가장 적은 규모이며(이는 다른 도의 단일 사건으로 분류된 대규모 학살 사건과 비교해봐도 훨씬 적은 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각 지역의 유해 매장 추정지에 세운 안내판 수도 단 두 개로 광주광역시를 제외하고 가장 적은 수다.
이와 같은 사실이 강원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실제 민간인의 피해가 적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산지가 많은 강원지역은 인민군의 주 침투 경로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소규모 전투가 많이 벌어졌고, 이에 따라 군인의 들고 나감이 잦았다. 더군다나 현재 강원 북부지역은 대부분 38선 북쪽으로 한국전쟁 이전 북한 영토였기에,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많은 민간인이 적국 영토 출신이라거나 적에게 협력했다는 혐의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접경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가족이 적으로 규정되어 죽은 피해 유족은 다소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았고 진실규명 신청에도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다른 지역은 대규모 학살이 있었을 경우, 같은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유족들 중심으로 유족회가 결성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강원지역에서는 따로 유족회가 결성된 적이 없었다. 피해자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신청해야 했기에 신청 수도 적었으며, 피해의 정도가 다른 지역만큼 가시화되지 못했다. 성공회대학교 강성현 교수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특정 지역의 피해 사실이 과소대표된다면 국가가 직권조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MBC강원영동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숨'>에는 그렇게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강원지역의 한국전쟁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큐의 대부분이 문서 등의 증거가 아니라 실제 주민의 목격담과 증언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은 강원지역이 갖는 특수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우리가 방문한 강원지역의 한국전쟁 장소드 몇 곳 역시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조사하지 않은 곳이었다. 당연히 사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답사를 맡아준 분은 강원지역에서도 학살 피해자를 수장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남해에서 수장당한 시신 일부는 대마도에 가 닿았다고 했는데, 동해에서는 어떤 곳으로 흘러갔을까. 다큐에서 증언을 해준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진실규명 신청 접수를 받는다고 해도 정보 자체를 모르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시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기억 역시 '수장'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강원영동병무청 뒤쪽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북한군에 의해 죽은 반공인사를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학살 현장은 언덕 바로 아래를 통과하는 기찻굴이다. 지금은 기찻굴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간 지대인 강원지역에는 터널이 많다. 한여름이었지만 굴 안은 서늘했다. 말을 할 때마다 목소리가 울렸다.
강릉 노암동의 기찻굴에서 북한군은 반공인사를 학살했다. 단 한 번의 학살만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인민군과 좌익은 우익을, 국군과 우익은 좌익을 번갈아 학살했을 것이다. 굴은 살해를 은폐하기 좋은 장소였다. 전쟁은 사람을 적과 아군으로 가른다.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을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만든다.
대규모 학살은 주로 퇴각할 때 벌어졌다. 급박한 상황에서 연행해 온 사람 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을 것이다. 이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종청소 같은 학살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다.
해설을 맡아준 분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들을 알아가면서부터는 기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할 때면 여러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강릉 송정해변 &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전쟁기 강원지역의 민간인 학살을 조망하는 강원 영동 MBC의 <다큐멘터리: '숨'>에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송정해변도 나온다.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학살이 벌어졌다.
수복 후 강원 전 지역에서 진행된 '부역혐의자 색출로 많은 사람들이 송정해변으로 끌려와 총살당했다.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몇 날이고 트럭에 사람들이 실려왔고 송정해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한다.
지금의 고속버스터미널 자리는 예전에 포한구덩이라는 이름의 저수지였다. 이곳에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10여 명의 학생과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던 이곳의 이야기는 오직 70년 전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남았다.
강원에서의 민간인 학살
강원지역에서도 다른 지역처럼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부역혐의자' 학살 미군 폭격에 의한 학살 등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의 전형이랄 수 있는 방식으로 학살이 일어났다. 전쟁 발발 후 북한과 인접했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보도연맹원 학살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데 비해 부역혐의자 학살이 심했다.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진을 시작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말 경 강원도 북부지역을 탈환했다. 전쟁 전 남한지역의 대부분이 수복되자 이승만 정권은 북한 점령 당시 협력했던 '부역자' 색출과 처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역 유지들을 중 심으로 한 위원회를 조직해 지역의 작은 단위인 동까지 훑으며 '부역자' 심사와 색출을 진행했다. 강원지역에서도 우익 청년단체들이 자의적으로 ‘부역혐의자'를 연행해 감금하고 자의적으로 처단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강원 북부지역 처단자 수, 강원도 경찰국 작성(1970. 1. 7)>
지역 / 희생자수
합계 439명
춘천지역 74명
홍천지역 74명
평창지역 71 명
강릉지역 207명
인제지역 13명
강원지역의 부역혐의자' 학살은 그 양상에 있어 다른 지역과 다소 차이가 있다. 고성, 양양, 속초 등 강원도의 절반 이상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북한이 지배하던 지역이었기에 수복 후 이 지역의 주민들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 10월 말부터 중국군의 참전 후 국군과 유엔군이 퇴각하게 되면서 다시 '부역자' 학살이 일어난다. 속초 부월리에서 한국군이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어와 환영하는 사람들을 집단학살한 '홀치기부대' 사건은 강원도 '부역혐의자' 학살의 특징을 보다 잘 보여준다.
강원지역에서 벌어진 미군 폭격으로 인한 학살은 다른 지역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던 경우가 많다. 적게는 한 가족만 사망한 경우도 있지만 많게는 수천명이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1957년 1월 홍천 삼마치 고개에서 피난 중이던 수천명이 미 공군의 폭격과 기총소사로 학살당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폭격 피해는 당시 미군의 피난민 정책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미군은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에 피난민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 정책을 펼쳤다.
1951년 1월,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은 휘하 부대장에게 모든 주민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더불어 “폭격을 포함해 가격할 책임”을 부여했다. 북한군과 중국군이 미군 폭격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 이동하는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폭격으로 인한 대규모의 민간인 피해는 위와 같은 미군의 공격적인 폭격 및 피난민 대응정책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미군폭격사건 위반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해외에 존재하는 사건기록과 관련 문서를 충분히 입수하지 못해 폭격의 불법성 여부를 규명하지 못했으며, 단지 미국 및 한국 정부가 피난민 보호를 시행하지 못한 점만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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