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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Yingchih on Unsplash

 

 

 

무지개와 밤바다, 꼬불꼬불한 산길

 

 

내가 강릉에 사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진 돈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시골뿐이었다. 그래서 도시가 아닌 시골인 강릉 주문진에 정착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고 돈이 많았다면 서울이나 강릉 시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도시를 다녔다. 서울은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제주도는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속초나 동해 등 강원도의 다른 도시들은 행정구역상 대부분이 도시(동 지역)로 되어있어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농어촌지역인 주문진에 왔다.

 

주문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신발과 옷이 젖은 채 힘들게 걷고 있었는데 문득 하늘이 개더니 무지개가 떴다. 그것도 쌍무지개가 떴다. 주문진은 다른 곳과 달리 관광지라는 느낌보다 지역 주민들이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시장에서 장을 보는 모습이 좋았다.

 

강릉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퇴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퇴근 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했다. 밤늦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밤바다를 봤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봤다.

 

강릉에 온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주변은 이제 익숙해졌고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딜 가기 위해 길을 물어보았던 나는 이제 오히려 관광객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전에는 지도를 검색해 탑승했던 버스도 이제는 검색 없이 척척 탈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어두운 밤, 강릉에 있는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에서 별을 보고 내려온 적이 있다. 꼬불꼬불하고 거친 길을 내려오며 강릉은 참 거칠고 척박한 땅이었구나 느꼈다. 강릉의 자연환경은 음식 문화에도 나타난다. 강릉 지역의 음식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과 감자로 만든 막국수, 감자옹심이 등의 음식이 많다. 또한 국물 우려낼 재료가 많지 않아 고추장과 된장으로 국물을 내 장칼국수 끓여 먹었다.

 

옛날 강릉 사람들은 서울로 가기 위해 대관령을 넘어야 했다. 산을 넘는 동안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맞서 싸워야 했고 운이 나쁘면 때로 호랑이를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강릉선 KTX의 개통으로 2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강릉은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해야 했다. 폭설이 내려 도로가 막히면 대관령에 차를 놔두고 4-5시간을 걸어 강릉으로 돌아왔다. 강릉은 나가기도 힘들고 들어오기도 힘든 고립되고 소외된 땅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릉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보듬고 품어주는 땅이 되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세워질 때,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는 강릉에 있는 오대산 소금강에서 신라의 재건을 도모했다. 한 때 강릉(명주군)이었다가 지금은 양양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하조대는 고려 시대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혁명을 준비한 곳이다. 유토피아 율도국을 꿈꾸며 홍길동전을 쓴 시대의 이단아 허균 역시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강릉 앞바다로 나갔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 주문진은 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성장했다. 항구 주변 언덕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로 빼곡하게 집이 지어졌다. 사람들은 강릉이라는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갔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강릉의 산과 바다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었고 보듬어주었다.

 

서울이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폐쇄적인 도시라면, 강릉은 폐쇄적이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도시인 것 같다. 서울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강릉의 험난한 고개 대관령은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이다. 때때로 무섭고 거칠게 변하는 동해 바다 역시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강릉은 얼핏 보기에 거칠고 폐쇄적이지만, 모두를 보듬고 감싸주는 힘이 있다.

 

내가 강릉에 사는 이유는 주문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봤던 쌍무지개와 퇴사를 앞두고 봤던 밤바다, 별을 보고 내려올 때 만났던 험난한 산길, 척박한 땅에서 자란 막국수와 감자옹심이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떠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지친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강릉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지금껏 그래왔듯 강릉의 산과 바다가 여러분들의 고민과 꿈을 너그럽게 감싸주고 묵묵히 보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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