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모든 사람이 너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

강다방 2024. 3. 5. 17:19

 

 

 

 

 

[두물결 글쓰기 모임]
모든 사람이 너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
그리고 너 역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어


퇴근 시간을 훌쩍 지난, 밤 9시. 나는 왜 쉬는 날인데도 매장에 나와 있는 것일까? 그것도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서. 오늘은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렇구나. 그럼 그렇지...?) 늦은 밤 뭐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은 강다방에 나와 문을 수리했다. 몇 달 전 부터 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는데 뜨거운 물 속에 있는 개구리처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오늘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문을 수리하러 와주신 사장님은 투머치토커였다. 문을 다 고쳐주고 난 뒤, 한참을 떠들다 가셨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참 위로 되었다.

문을 수리하러 와주신 사장님은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 강다방을 위해 이런저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사실 요즘 강다방은 영업일에는 손님이 없는 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문 수리도 일부러 휴무일에 나와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해서 힘들다는 질문에 사장님은 힘들게 하는 사람을 쳐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손님만 받으라고. 흔히 사람들은 단골 손님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동시에 손님 역시 단골 업장에 더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하는 일을 20년 넘게 했다는 말에 어떻게 그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래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쉬는 날에도 영업요일 동안 못 한 일을 하고 있고, 영업시간을 훌쩍 지난 시간에도 오는 연락에 답변하고 있다고 요즘 고민을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끊어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연락해 왔을 때 촉이 좋지 않은 사람의 일을 맡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가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요즘 좀 지친 상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하다 보니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고 있다. 남들은 일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서 투정 부릴 수도 없었고 그런 내가 초심을 잃은 걸까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둥바둥하는 과정 중 나는 없어지고 있었다.

간혹 배달 앱 고객 후기에 급발진 답글을 다는 사장님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처음에는 저 사장님들은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마 한명 두명, 하루 이틀 힘든 일들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치 툭 건들면 터져버릴 것 같은 물풍선처럼 말이다. 지금 나의 모습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중학교 때 막 부임한 신임 선생님이 있었다. 서툴렀지만 열정 가득하고 착한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을 만만하게 봤고 때로는 선을 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해가 거듭할 수록 선생님은 흑화했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이 단단해지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그래서 속으로 응원했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고 나와 맞길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영화라 생각하고 나쁜놈 배역 자리를 하나씩 만들어 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번에 네 놈이구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음을 다잡아도 종종 다시 화나고 짜증나겠지만 내 삶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나는 막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의 시기를 지나 흑화되고 있는, 조금은 노련하고 멋진 사장이 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 조금 멋있는 것 같기도...? 아무쪼록 지치지 않기를, 방황하고 삐뚤어지더라도 다시 돌아 올 수 있기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잃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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