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완벽하지 않을거란 믿음

강다방 2023. 11. 1. 17:39

 

 

 

사진: UnsplashValentin Antonini

 

 


해야 할 것들을 빼곡하게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렸다. 메모지를 찾으려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 몇 개는 생각났고, 대부분은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될 텐데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모지에 적혀있던 것들은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을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일주일이 지나도 다 하지 못할 것들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바쁘다는 착각과 이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기만족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누군가 메모지를 발견해 읽으면 창피할 텐데 큰일이다. 어딘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사라졌길 기도해본다.

디테일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한 끗 차이,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소하고 이상한 순간에 집착할 때가 있다. 그냥 넘어가도 크게 상관없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 계속 생각난다. 그래서 굳이 중요하지 않아도 기어코 그걸 하고 만다. 뭐든 과하면 안 좋다고, 때로는 적당히 마무리 짓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그냥 넘어가지 못해 다른 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잘 하고 싶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잘하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잘 시작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그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장점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자 힘들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매장 임대차 계약을 한 지 2년이 지났다. 책방을 시작할 때 꼭 지키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책방에 들어오는 모든 책을 읽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럼에도 2년 동안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지금 보면 참 기특하다.

관계에 있어서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픈 경향이 크다. 강다방을 운영한지 1년 쯤 됐을 때, 한 동안 서점별로 공급하는 도서 가격을 다르게 하는 작가와 출판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곳에 더 저렴하게 책을 공급하고, 강다방에는 더 비싼 가격으로 책을 공급하는 경우를 알게 되어 많이 서운했다. 책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은연중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었다.

손님들 역시 누군가는 특별할 것 없는 강다방을 분수에 넘치게 응원해주고 사랑해줬다. 그리고 누군가는 하찮게, 별 볼일 없이 대했다. 사람이 10명이 있다면, 그 중 7명은 내가 뭘 하든 나에게 무관심하고, 그 중 2명은 좋아해주고, 1명은 무조건 나를 싫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좋은 공간이 되고 싶었고,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면 괴로워했다. 지난 2년이란 시간 동안, 항상 멋지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자나며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운영하는 강다방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공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힘을 빼고 조금은 여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열정이 사라지고 노련함이 생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점을 수긍하고,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멀리 가기 위해 힘 빼는 연습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짧고 굵고 빠르게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가기 위해서는 힘을 빼고 천천히 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수십 년을 걸어야 하는 경기다. 그러니 조금은 더 여유롭고 너그럽고 인간적인 강다방이 되어야겠다.

가끔 끝을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라진다. 삶은 항상 여름 같고 푸를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가을이 찾아오고 울창했던 잎은 모두 떨어진다. 그러니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아야지. 우리는 원래 모자란 존재이고 그 부족한 점이 흠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흠이라면 또 어쩔 것인가. 그대로 맏아드려야지 뭐. 불가능한 이상을 꿈꾸며 현실에 맞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지.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것이 완벽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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