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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

강다방 2023. 8. 9. 19:46

 

 

 

사진: UnsplashAlexander Grey

 

 

 

[두물결 글쓰기 모임]

무질서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

 


가을의 시작 입추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더웠는데, 며칠 뒤에 올 태풍 때문인지 아님 가을의 시작을 알기는 절기가 되어서인지 밤이 제법 선선해졌다. 친구가 대만을 여행하고 다녀 온 뒤, 선물로 준 맥주 한 캔도 땄다. 대만 맥주는 나중에 특별한 날 먹어으려고 놔뒀는데 미루고 미루다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선물은 받은 건 작년 추운 겨울이었고, 지금은 해가 바뀌어 가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캔 맥주처럼 소중해서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뒀다 오히려 망가지고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며칠 전에는 아시는 분의 부탁을 받아 에어비앤비 집 청소를 하고 왔다. 투숙객이 사용한 수건과 이불을 세탁기에 돌리고,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했다.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해 밖으로 배출했다. 청소가 끝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서니 나중에 하려고 모아둔 빨랫거리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들이 보였다. 나중에 정리하려고 놔뒀던 물건들도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정작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 청소를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청소를 하지 않고 있구나, 나에게는 참 무심하구나 싶었다.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주는 거의 매일을 회사에 출근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은 무질서하게 이것저것들로 쌓이게 되었고, 한 쪽에는 분리수거하려고 모아둔 쓰레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 마신 맥주처럼 어떤 것들은 시간이 훌쩍 지나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오늘은 왠지 청소를 하고 집에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청소기를 돌리고 집안을 정리하고 모아둔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했다.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도 했다.

어렸을 때 병원을 배경으로 의사들이 나오는 미국 드라마를 봤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한 번은 주인공의 집이 화면에 나왔다. 쓰레기 처리장처럼 바닥에 빨래와 쓰레기가 뒹굴었고 주인공은 한 번 입은 옷을 빨지 않고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 그걸 보고 저 정도로 열심히 살아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나중에 크면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다른 중요한 일들에게 밀렸다.

세상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변수들로 가득하다. 특별한 날 먹으려고 했던 맥주는 지나고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있었고, 청소가 끝난 에어비앤비는 다른 손님이 다녀간 뒤 다시 정리하고 청소해야 할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드라마의 다른 주인공은 다음 시즌에 암에 걸려 죽는 내용으로 드라마를 떠났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은 내가 노력해도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은 우리가 노력한만큼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모를 때, 바쁜 시간을 보낼 때 오히려 시간을 내어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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