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Aldebaran S
게스트하우스라는 우주
게스트하우스 영업을 종료한지 3년이 지났다.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면 뭘 해야할지 고민하던 나는, 회사에 취업했고 다시 회사를 나와 지금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게스트하우스를 했던 강릉에 지금도 계속 머물고 있다.
2년마다 새로운 지역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옮겨다니려 했다. 2년 동안 강원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했다면, 2년 뒤에는 경상도, 또 2년 뒤에는 전라도로 옮기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릉을 떠나지 못 했고 지금은 강릉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3년 넘게 지도에 등록되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쉽게 삭제하지 못했다. 클릭 한 번으로 게스트하우스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고, 더 이상 게스트하우스냐고 묻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텐데도 매장 정보를 삭제 할 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업체 정보에 남겨진 손님들의 리뷰가 사라지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나의 추억과 시간도 사라질 것 같았다. 당시에는 불안하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 인생 어느때보다 치열했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동안 몇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책을 내는거였다. 하지만 기억이 추억으로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한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흐릿해졌을 때 글쓰기를 시작해본다. 과거의 기억들이 이제는 적당히 숙성되고 미화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흔히 게스트하우스를 낭만적인 곳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손님의 입장에서 놀러갔을 때의 이야기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숙박업은 기본적으로 공간 임대업, 식음료업, 서비스업 등 여러 분야가 복합되어 있어 신경쓸 것이 많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아무것도 몰랐기 떄문이지 않나 싶다.
게스트하우스는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나이도, 직업도, 지역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사라진다. 때때로 케미 잘 맞는 사람들과 만나면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기도 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이라는 말처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사람 하나하나가 별, 우주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암흑 같은 블랙홀을 만난적도 있었다.
글 쓰는게 무서웠다. 기억과 느낌이라는 것은 주관적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기도 한다. 내가 쓰는 글이 행여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한 번 인쇄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평생 만들어진 책을 두고 이불팡팡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책 속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소하고 의미 없는 글이라도 그것을 모으고 엮어내면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수 있고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배웠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그러니까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냥 내가 쓰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보려한다.
2년마다 지역을 바꿔가며 이동하는 게스트하우스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패했다. 하지만 그 과정 중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배웠고, 이렇게 글로 엮어낸 걸 보면 꼭 실패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이 글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우주처럼 또 다른 우주로 다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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