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그림책] 유기식물, 조혜경

강다방 2024. 2. 18. 19:11

 

 

 

 

 

독립출판물, 에세이
유기식물 - 버려진 반려식물 이야기, 조혜경

 

 

누구나 한 번쯤 길가에서 마주쳤을 버려진 식물들을 기록하고 그린 책. 강다방 이야기공장에도 스트릿 출신 식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는데요, 식물 코너에서 이 책과 함께 초록 친구들을 만나보세요!

* 주의 : 길에서 버려진 식물을 구조할 때는 혹시나 주인이 있는 식물일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강다방 앞에 놓아두었던 화분도 여러 개 사라졌어요 🤣

 

 

 

제목 : 유기식물 - 버려진 반려식물 이야기
저자 : 조혜경
펴낸곳 : 원컴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97쪽
크기 : 190x190mm
가격 : 16,000원
발행일 : 2023년 5월 29일
ISBN : 979-11-982843-7-2 (03810)

 


조혜경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ysunnyhs/

 

 

 

 

 


마음이 바빠서였을까.
새 집에 어울리지 않아서일까,
이사 트럭이 훌쩍 떠나고 나면 선택받지 못한 식물이 남아있다.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는 일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
흔하고 반복적인 풍경 속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어떤 것은 남겨진다.
아니, 가벼이 버려진다.
다 그런 거, 별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리를 잃고 밖으로 내몰린 식물의 일상은 무너지고 서서히 사라질 텐데...

이사나 인테리어 공사가 많아지는 계절에는 반려식물이 자주 버려진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식물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안 쓰는 플라스틱 물통을 찾아 물을 가득 채웠다.
그 안에 조심스럽게 담아 놓으니
힘없이 늘어진 이파리에 점점 생기가 돌았다.

'생김새가 좀 독특하네. 이름이 뭘까?'
휴대폰을 찾아 검색창을 열었다.

'인삼 벤자민'
처음 듣는 이름이다.

벤자민 고무나무와 인삼 고무나무를 접목한 개량종이라는데
'단호박 까르보나라' '김치 햄버거'처럼 생각지 못했던 조합이랄까.
잘 자라고 모양 좋아 보이려고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뜻대로 만들고 맘대로 버렸네. 참 그렇다.

 

 

 

 

 

 

 

오늘은

네 모습을 그려야겠다.

인삼 벤자민.

 

 

 

 

 

 


마을의 골목, 오래된 나무처럼
한 동네 사람들이 같이 바라보고 함께 기억하는 것들이다.
동네 미루나무도 그런 존재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과 감정의 자리를 남겨 주었으니 말이다.

많이 고맙고 때때로 그립다.

 

 

 

 

 

 

 


팀장님을 보자마자 마음이 앞선 모양이다.
인사도 없이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저 나무 보셨어요?"

팀장님이 택배 상자를 흘끗 건너다보며 조용히 몇 마디 하셨다.
“비싼 돈 주고 산 것을 왜 저렇게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살려놓으면 누가 또 가져갈 거예요."

그 말이 맞다.
돈을 주고 산 식물.
식물 역시 사람이 소유하는 물건의 일부였으니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으로 나눠지고
쓸모가 없다면 미련 없이 버려졌을 것이다.

 

 

 

 

 

 


잠시 그들의 생애를 상상하고 생김새를 찬찬히 살핀다.

생명이 사라져가는 식물에는
딱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색들이 어려 있다.
물기 없이 말라 가면서도 노랑과 초록색이 오래 남아있고
갑자기 보라나 자주색 점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양한 색 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결국은 흰색이나 갈색으로 변해간다.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색을 다 놓아준다.

그 모습을 그리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잘가'라는 인사였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꽃과 식물로 가득한 비밀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주인은 마담 프루스트,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와 마들렌을 대접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 숨어있는 상처와
마주하게 한다.

울고 웃고 찡그리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다.
잘못된 과거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억이 자리 잡는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제야 생각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뿐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식물을 그리고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직업도 아니다.
식물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바라보기만 좋아하는 내가 식물을 그려도 될까.
자꾸 망설여지고 계속 의문이 생겼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려고 앉았는데 기분이 이상한 거다.
왜 버려진 것인지 궁금하다가 어쩐지 조금 슬퍼진다.
'그럴 수 있지. 뭐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어. 흔한 일이잖아.
그렇기는 한데... 이건 잔인한 풍경이야.'

 

 

 

 

 

 

 


아직 생명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산세베리아를 급하게 물병에 옮겨 놓았다.
때를 놓쳐 버린 것인지 다시 살아나지는 않았다.

마르고 텁텁한 갈색으로 변해갔다.
하나, 둘 색이 날아가고 반짝이던 빛은 사라진다.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지고 있는 산세베리아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생명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훌쩍 떠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중의적 시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식물 스스로
소멸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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