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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보다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강다방 2024. 1. 10. 13:30

 

 

 

 

 

소설
소설보다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2024년 첫 책 소개는 믿고 읽는 <소설 보다> 시리즈. 소설보다 시리즈는 매 계절, 젊고 개성 넘치는 3편의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책으로, 가격은 무려 3,500원, 무게도 커피 한 잔보다 가벼운 174g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3-2024>에는 이상과 현실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고등학교 교사, 신이 자신에게 떠난 박수무당, 친구와 갈등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소녀,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소설이 끝난 뒤, 작가와 인터뷰가 적혀있어 영화를 다 보고 감독과 대화를 하는 재미가 있다.

3편의 소설과 함께 춥지만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셔도 좋지만,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시면 더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제목 : 소설 보다 겨울 2023
저자 :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82쪽
크기 : 114x188mm
가격 : 3,500원
발행일 : 2023년 12월 07일
ISBN : 978-89-320-4234-3 (03810)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 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수년 전 수업 시간이었다. 시였는지 소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능 대비 교재에 수록된 70년대, 혹은 60년대 작품이었다. 권력의 억압에 훼손된 개인의 자유를 형상화하며 반성과 실천을 독려하는............ 식의 설명을 마쳤을 때 맨 앞줄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도 민주화 운동 했어요?"

곽은 학생이 박정희 정권 때 무엇을 해보았느냐고 묻는 건 아니며, 늦춰 잡아 전두환, 그러니까 80년...

 

 

 

 

 


대쯤을 상상한 거라고 가정했다. 그 시대에 자신이 한 일이 있다면 하나, '태어나는 일'이었다. 곽은 자기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지, 학생이 근현대사 연표 학습을 게을리한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지루한 수업 분위기가 전환되길 기대하며 분유나 기저귀 같은 단어가 포함된 유머로 대답했다. 주름 개선 화장품 2종을 추가해 피부 관리 루틴을 체계화했다. 가끔 혼자 재치 있는 대답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독립 운동을 했냐고 묻지 그래요?" 같은 말. 미시사를 포함한 세 권의 역사서를 읽고 '인간이란 자기가 살지 않은 과거는 뭉뚱그리는 관성이 있다'라고 메모했다. 세대론은 의심스러운 도구였지만 젊은 사회학자의 저서는 고교생들의 심성 구조를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마흔이 된 지금, 곽은 '동시대'라는 단어에 소유...

 

 

 

 

 

 


곽은 교육 과정표를 꺼내 봤고 맹점을 발견했다.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과목을 조합하다 보면 3학년 때 '미적분'과 '진로영어', 그리고 '고전읽기'를 저울질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은 이공계 진학을 선호하는 분위기라 대개 미적분으로 모였을 것이다. 대학 학과명에 '글로벌'이 붙은지 오래였고, 근래에는 '세계시민' 같은 키워드도 인기이므로 인문사회계 진학 희망자에게는 '진로영어’가 유망해 보일 수 있었다. 즉 '고전읽기'에는, 고전을 읽고 싶다기보다 다른 걸 하기 싫은 학생들이 모이기 쉬웠다. 희망 진로 또는 지망 전공을 밝히는 칸에 내심 기대했던 문학이나 사회학은 한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뷰티 매니저, 게임 크리에이터, 실용 음악 보컬...... 절반 이상은 '모름'이거나 빈칸이었다. 독서 욕구나 이해력을 지레 짐작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고전읽기는 일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인간이...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연을 물을지 고민하는 곽을 두고 학생은 목덜미를 긁으며 베개를 들고 교실을 떠났다. 곽은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를 밤마다 거리로 내모는 사회가 새삼 무서웠다. 각자의 삶에서 이 수업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차라리 50분의 숙면이 더 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을 교실에 가두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 아닐까. 엎드린 이 학생, 그리고 저 학생도, 억압적인 제도 교육에 대하여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바틀비처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그러니까 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깨어 있는 학생들 중 다수도 수업을 외면했다. 고전읽기는 수능 과목이 아니었다. 절대평가 과목이라 상당수의 대학은 내신 성적에 산입하지도 않았다. 담당 교사가 기술하는 특기 사항은 종합 전형에 지원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선택할 수 있는 다음
패를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는 법과 제도, 언론의 힘도 포함된다.

"자기 전교조는 아니더라고?"

그 말을 듣고 곽은 조합에 가입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민원으로부터 보호받으려면 조직이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전교조와 교총 등 모든 교원 조직 가입을 거절했던 이유를 돌아보고 있을 때 교장이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 전교조 교사, 수업 중 마르크스 읽혀. 이런 기사라도 나 봐. 작살난다."

기사에 달릴 댓글이 눈에 선했다. 전교조가 사상 교육으로 학생들을 세뇌하며 공교육의 저반을 흔들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고, 곽...

 

 

 

 

 


에 목매는 경우에만 지옥이므로, 다수는 여전히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고,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곽은 모두 각자의 스무 살을 향해 나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다가올 무렵, 은재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년 동안 전교 1등 한 명만을 추천 전형으로 간신히 서울대에 보냈는데, 모처럼 은재까지 합격생이 두 명이 되어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추천이 아니라 일반 전형으로 합격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1학년 때 부터 은재가 참여한 수업, 동아리, 교내 프로그램 등...

 

 

 

 

 


이 합격 요인으로 검토되며 고전읽기 수업도 재조명 되었다. 민원 사건은 은재가 교내에서 입방아에 올랐던 최근의, 어쩌면 유일한 사건이었으므로 동료들은 지나가며 한마디씩 곽을 추켜세웠다.

"이제 애들 다 『공산당 선언』 읽히고, 머리에 빨간 띠도 매줘야 되는 거 아냐? 하하하."

3학년부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교내 독서 인증 프로그램의 공식 추천 도서 목록이 업데이트되며 『자본론』의 2차 저작과 마르크스 평전 한 권이 추가되었 다. 연구부장의 부탁으로 곽은 교내 전교원 연수에서 '전공별 심화 독서 플랫폼 과목으로서의 고전읽기'라는 제목으로 15분 분량의 발표를 했다. 담임교사들이 우수한 학생에게 고전읽기 선택을 더 권하게 될지 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한편으로 곽은 모든 호들갑에 거리를 두고 싶었다. 여전히 '서울대 몇 명 보냈는지'로만 학교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역사회나 거기에 휘둘리는 관리자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다. 은재는...

 

 

 

 

 


김기태 픽션이 어떤 집단적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 싶을 때, 부적응자나 추방자를 중심인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하신 '학교와 문제아' 구도 역시 비슷한 전략이지요. 작가들은 수상한 사회를 은유하는 공간으로서 학교를 애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정말 무서운 건, '적응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지간하면 적응시켜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자도 교실에서 쫓아내지 않지요. 학교는 그들에게 '자는 학생'이라는 역할을 마련해줍니다. 상대평가 체계는 그들이 '깔아줘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질서란 그 정도로 정교해서, 저는 탈주자를 안이하게 상상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남부럽지 않게 적응한 인물들로부터 문제에 접근해보려고 했 습니다.

은재는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서 본인도 원하고 타인도 납득할 만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자체...

 

 

 

 

 

 


<소설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문지문학상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됩니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문학을 가장 빠르게 소개하며 독자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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