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그림 에세이
작별의 날들, 설인하
제목 : 작별의 날들
저자 : 설인하
펴낸곳 : Vice Versa (비체 베르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89쪽
크기 : 110x165mm
가격 : 15,000원
발행일 : 2023년 3월 16일
ISBN : 979-11-982425-0-1 (02800)
반려조를 떠나보내고 쓴 펫로스(Pet Loss) 기록. 13년간 함께 생활한 반려조와의 첫만남, 일상의 즐거움, 이별의 순간, 이별 후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책 초반은 재미있고 귀여운데 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이별의 순간이 다가와 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슬프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책.
작가, 출판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arinaa_writer/
https://www.instagram.com/viceversa_book/
너는 언제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굳이 말은 필요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땐
그저 눈을 들여다보면 되었으니까.
네가 세상을 떠난 지금 나는 이 글을 쓴다.
비록 새인 너와 깊이 교감하며
함께 살았던 나의 삶을 그 누구로부터
이해도, 공감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저 나의 소중한 친구인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새랑 살아요
「새랑 살아요.」
내 SNS 프로필에 기재된 저 문장을 보면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묻곤 했다.
"새하고도 교감이 되나요?"
새는 머리가 나빠서 인간과 교감이 불가능하고, 반려동물로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도 너와 함께 살아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Tiny Wonder Boy
너는 정말로 작았다. 몸무게는 고작20g 남짓에 뇌의 크기는 내 엄지 손톱의 반만큼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때로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그러했다. 나는 매일 네가 주는 놀라움 속에서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살아왔다. 그러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뇌의 물리적인 크기와 생각의 크기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성격
너는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꽤 다혈질이었다.
처음 널 봤을 때, 눈꼬리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그 매서운 눈매를 보고, 깨달았어야 했는데.
멸치 대가리
멸치만 보면 번개같이 채간다.
"나를 귀찮게 하면 안 되지.
그런데 또 아예 잊으면 안 되지!"
(정말 어쩌라는 것인지!)
경계모드 발동!
낮은 포복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너를 서울 한구석에 위치한 특수동물 전문매장에서 데려왔다. 문조 아이를 찾는다는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어디선가 아크릴 상자를 하나 꺼내 왔다. 거기에 네가 혼자 있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동기들은 전부 입양이 완료되었고, 네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딱 한 마리라고 했다.
온갖 파충류와 새들, 다람쥐 등이 한꺼번에 내는 온갖 시끄러운 소리 한가운데서, 아크릴 상자 안의 너는 조용히 내 눈을 마주쳐왔다.
마치 그동안 자신을 이 어수선한 공간에서 꺼내 줄 누군가를 기다려 왔다는 듯이.
가볍고 따뜻한 너의 몸이 내 손 위에서 숨을 쉬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빠르게 적응 완료 ♡
사람들은 내가 너를 집안에서 자유롭게 날려서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물었다.
"똥은 어떡해요? 새는 똥 못 가리지 않아요?"
사실 그런 것은 내게 전혀 상관없었다. 나는 오히려 청소할 때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데서 너의 똥을 발견하고 치우며 그곳에서 보냈을 너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어차피 나라는 인간과 함꼐 산다는 이유로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너라면, 집안에서만이라도 맘껏 여기저기 위풍당당하게 날아다닐 수 있었으면 했다.
가끔은 이런 장난도 쳤지.
목욕 후 남은 물기로
머리털을 세워주었다.
Like a Child
우리의 삶은 각자의 영역에서 상대적이다. 내가 길고 느린 삶을 사는 동안 너는 부지런히 짧고 빠른 삶을 살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엎질러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내가 너를 돌봐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네가 나를 돌봐주는 것 같았다. 네가 나의 평균 수명을 훌쩍 넘겨 내곁에서 오래오래 살아주었던 것도 어쩌면 우리의 역전된 관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10살을 넘긴 시점부터 매번 새롭게 한 해를 넘길 때마다 너는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간아. 네가 이렇게 외롭고 짠하니 내 너를 어여쁘고 불쌍히 여겨 너랑 딱 한 해만, 한 해만 더 같이 살아주기로 했다."
모든 생명에는 결국 끝이 있고, 모든 만난 것들은 헤어져야 하고, 마지막에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종국에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삶, 그것에는 그다지 별다른 것이 없고, 마지막 순간엔 오로지 기억만이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최대한 단순하게, 행복한 기억들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평생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따. 그러나 네가 떠난 뒤에 난 그것이 외로운 삶을 살았던 자의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따. 그것은 소중한 존재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죽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너를 이리 먼제 보내고 나니 죽는 것이 그다지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죽은 너머에 나를 기다리는 소중한 뭔가가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어쩌면 너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미리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먼저 가서 날 기다려주려고. 살면서 이 지구상의 생명체 모두에게 한 번쯤은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일을 내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녕, 잘 가.
사느라 고생했어.
우리 이제 꿈속에서 만나자.
생의 13년을 함께한
반려조를 떠나보내고 쓴 펫로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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