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커피는 남이 내려준 게 더 맛있다, 최유나
유명 배우를 꿈꾸는 작가의 희망(?) 가득한 카페 운영 에세이. 작가는 배우로 활동하는데, 불안정한 스케줄과 수익을 대비해 안정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카페 운영을 시작한다. 대대손손 먹고 살 수 있을 안정적인 노른자 위치(?)의 카페를 계약하는데... 카페에서 일어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희노애락의 기록. 작가가 언젠가 떡상해 유명 배우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발견했다면 일단 구매해두자.
제목 : 커피는 남이 내려준 게 더 맛있다
저자 : 최유나
펴낸곳 : 인디펍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87쪽
크기 : 120x185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1년 8월 5일
ISBN : 979-11-6756-065-0 (03810)
초짜 커피팔이 모녀의 사계절 현실 동화
커피는 남이 내려준 게 더 맛있다
최유나
혹시나 손님이 들어올까 나를 주방에 남겨놓고는 홀로 번쩍번쩍 의자와 테이블을 들어 올리며 테라스를 정리하고 들어 왔다. 담배 냄새 자욱한 흡연실을 도맡아 치우는 사람도 늘 엄마였다.
이렇듯 고되고 힘든 일은 죄다 해내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가끔 눈치를 보며 작아졌다. 자영업의 막막함 앞에서 찔찔 짜곤 하는, 성질이 못되기만 한 게 아니라 심약하기까지 한 딸 때문이다. 이걸 같이 해보자고 손 내밀었던 지난날이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라는 형태로 찐하게 남아있었다.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서 온 가족을 호령하던 엄마는 그렇게 쭈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카페 일에서만큼은 이러나 저러나 서열이 딸 아래가 되었다.
엄마가 오랜 세월 왕좌를 지킬 때도 우리는 밥 먹듯이...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카페는 여름 장사다. 그건 불변의 법칙이다. 시간을 보내는 용도 말고 오로지 음료를 마시러 카페 가는 일이 거의 없던 나조차도 갈증 때문에 눈에 보이는 매장으로 직진하는 계절. 혹은 따가운 햇볕을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대피소처럼 카페를 찾는 시기이기도 하다. '에어컨이 필요해.... 속으로는 무한히 중얼거리면서 이토록 당연한 신체 반응은 역시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카페는 여름 장사다.
이 건물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이것저것 다양한 카페 음료들...
들어가는 과일의 양을 늘려서라도 부족한 풍미를 꼭꼭 채워 넣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직장인들은 하루 종일 잠을 깨고, 사람을 만나고, 잠깐 바람을 쐬기 위해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먹다 먹다 더는 못 먹을 때쯤 꼭 주스 종류를 찾았다. 누가 봐도 싱싱한 생과일들이 보란 듯 진열장에 놓여있는데, 가격이 천 원쯤 더 싸다고 해서 시럽만 들어가는 과당 주스를 선택 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결제 권한을 손에 쥔 이가 자신의 일행에게 선택지를 권할 때도 그 마음은 똑같이 적용되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각양각색의 과일들을 씻었다. 여름의 맛, 빨간 맛이 궁금할 오늘의 손님을 위해.
자영업자에게 휴무일이란, 진정 휴무를 즐기는 날이 아니라 미처 못다 한 일들을 보충하는 날이다. 예컨대 영업시간에는 건드릴 수 없었던 제빙기도 청소해야 하고, 냉장고 구석에 낀 성에도 종종 깨부숴야 하니까. 일을 다 끝마친 후에는 퇴근하는 대신 몇 안 되는 손님을 맞았다. 이왕 나온 김에 한두 잔이라도 팔고 들어가자는 주인의 마인드가 자연스레 장착된 결과다. 우리처럼 못다 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휴일에도 출근한 비운의 직장인들, 바로 옆 대형마트에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 혹은 빨간 날이 평소보다 더 바쁘고 피곤할 수밖에 없는 마트 직원들이 우리의 주 고객이 되었다.
퇴근길에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들른다. 온라인으로 주문했다가 실패할 가능성이 큰 물품들을 직접 살펴보고 구매하기 위함이다. 철 지난 과일 몇 종류...
체력 하나만은 옛날 옛적부터 굳건하던 엄마도 강도 높은 노동 앞에서 곧 무력해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다리에 쥐가 났는데, 어느 새벽엔 119에 전화를 걸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다. 사색이 된 엄마 옆에서 더 사색이 된 아빠가 엄마의 다리 한쪽을 붙잡은 채 스피커폰에다 외쳤다. "다리에 쥐가 너무 심하게 났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운동선수에게 조치하듯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 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카페 운영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결정 짓던 순간에 우리 남매가 '엄마 고생도 좀 덜하고'라는 마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는 거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모델하우스와 아파트 청약 일정 등을 홍보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카페 노동자의 일일이 얼마나 피로한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손님이 몰리는 특정 시간대'만이 장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간과했다. 그 순간을 위해 전후로 기울여야 할 노력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었다. 손님이 없을 때 편히 쉴 수 있을 거라던 우리의 상상은 그야말로 망상에 불과했다. 엄마는 한 달 만에 체중이 5kg이나 빠졌다. 쉽사리 능숙해지지 않는 카페 업무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손님 때문에 늘 긴장과 불안 상태로 지내서였다. 뭘 좀 먹으라고 하면 입맛 없다는 대답만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이전 사장님에게 인수인계를 받을 때, 평소 식사는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냥 굶어.............” 울먹이듯 답하던 그녀의 표정이 떠올랐다. 연이어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맞느라 삼각김밥 하나를 세 번에 걸쳐 먹던 날 상기된 기억이었다. 그녀의 손목을 칭칭 휘감은 보호대를 목격했던 출근 첫날도 뒤늦게 다시 선명해졌다. 분명히 보았는데도 꽃밭이 된 머릿속에서 살며시 지워졌던 장면이다. 보고 싶은 것만...
두꺼워졌는지 답지 않게 내가 먼저 말을 붙인 날이 있었다.
"힘드시죠?"
그 말이 사장님의 눈물 버튼을 건드릴 줄은. 내가 카페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장님은 같은 자영업자 앞에서 그간의 고단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우린 가족끼리 밥 한 끼도 같이 못 먹어요. 남편이랑 나랑 번갈아 가며 근무해야 돼서. 사람들이 왜 하필 편의점 했냐고 그래. 여긴 거의 창살 없는 감옥이야."
계산대 앞에 서서 한참을 얘기하던 사장님은 이내 눈물이 그렁한 채로 웃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손님들이랑 대화도 한 번씩 하구 그러면 숨통이 좀 트여요." 나는 마음이 아프고 불편해서 도망치듯 인사를 한 뒤에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날은 왠지 편의점에서 사 들고 온 저녁거리 앞에서도 입 맛이 없었다. (얼마 후 편의점 사장님은 자신의 다음 타자를 찾아내어 무사히 창살 없는 감옥을 탈출했다)
사먹어야지' 이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던 때가 속 편하고 좋았다는 소리다. 지하철역에서 이 건물로 이어지는 수많은 골목길 중 하나에만 도합 열 개 넘는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디지털 '시티'나 '단지'도 아니고 해봤자 오피스 건물 달랑 한 개 (그리고 얼마 전에야 완공된 또 다른 오피스 건물 한 개) 있는 곳인데. 여기 어딘가에 각자의 사무실과 적을 둔 직장인들이 곧 수십 수백 개의 카페가 겨냥하는 공통 타깃층이자 수십 수백 명의 자영업자들이 부여잡고 있는 동아줄이다.
그렇게 고만고만한 업장들이 터를 이룬 강줄기(골목길) 에 생태계 교란종이 나타났다. 4천 년 전 존재하던 포유류의 이름을 따온 브랜드명답게 거대한 사이즈의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다. 이전부터 원체 장사가 잘되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을 붙여 달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탈바꿈하더니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단돈 900원에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일일 테지만 주변 상인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손에서 언제부턴가 똑같은 종류의 일회용 컵만 발견...
혹시 당신들의 크레딧 어딘가에
우리도 한 귀퉁이쯤 존재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장르는
성장 영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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