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입학사정관의 계절, 김보미
제목 : 입학사정관의 계절
저자 : 김보미
펴낸곳 : 더봄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75쪽
크기 : 130x200mm
가격 : 13,000원
발행일 : 2022년 7월 1일
ISBN : 979-11-970884-1-4 (03810)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의 에세이.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자.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은데,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소중하다. 강다방 이야기공장에서 이 책을 판매하는데, 어느 날 손님이 우연히 강다방에 방문했다 자신이 지원했던 학교의 입학사정관임을 알아보고 구매해갔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는 책이다.
작가 김보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ustwrite_kim/
입학사정관의 계절
From spring to winter
김보미
김보미
2010년-2019년 국내 대학 입학처 입학사정관으로 일하고 오만가지 고민 끝에 '퇴사하겠습니다!'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3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와서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은 입학사정관도 아니고 입학처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기에 입학사정관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헐렁하고 냉담하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걷는 하루』를 썼습니다.
차례
입학사정관의 계절을 시작하며 6
봄
지난겨울을 톺아보고 맞이하는, 봄 12
꽃 피는 봄이 오면 전국 팔도 23
입학사정관은 왜 고등학교에 방문할까 32
입학사정관, 누구세요 43
대한민국 시관(試官) 57
여름
공부하기 싫은 건 누구나 매한가지 70
우유 하나도 깐깐하게 고르는 세상 78
누가 대학에 가는 것인지 87
입학처에 필요한 또 다른 덕목 94
아득할 것 같은 추운 겨울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봄이 온다. 봄이 되면 꽁꽁 언 땅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꽃나무에 움이 튼다. 만물이 소생하듯 학교의 봄은 이상하리만큼 더욱 푸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 대학의 봄은 그중 제일 활기찬 모습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 대학생들로 가득한 교정을 걷고 있노라면, 대학을 졸업한 지 언제였나 가물가물한 나에게도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10-11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 한쪽만 조명이 안 들어오나 싶을 정도로 시커먼 남학생들,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모하며 집중하는 학생들, 밥 먹고 나른한 시간에 만나면 졸음을 이기려고 뒤편에 서서 듣는 학생들,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 어쨌든 수업 안 하니까 좋아서 마냥 즐 거운 학생들까지 아주 다양하다.
설명회가 끝나면 쪼르르 나와서 부끄럽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세상 고민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쭈뼛쭈뼛 질문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진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친구들이 다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질문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가끔 너무 똘똘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고,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것과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입시지옥에 살고 있는 요즘의 고3 학생과 다른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건강한 마음과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설명회란 것에 스스로 참 뿌듯해진다. 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입학사정관제에서 학생부종합 전형이라는 제도적 탈바꿈을 하면서 수험생 당사자, 수험생의 학부모, 그리고 고교 현장의 교사를 포함한 대입 관계자들은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예전보다는 잘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입학사정관이라는 직업을 파격적으로 알린 것은 JTBC에서 방영된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일 것이다. 대입을 위한 교육, 성공을 위한 대입에서 가장 나약하게 흔들리는 사람들을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캐릭터로 입학사정관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해당 캐릭터는 전(前) 입학사정관이자 현(現) 사교육 기관 컨설턴트인데, 캐릭터의 특성상 이전 경력을 내세워 사교육의 중심에서 더 잔혹하게 입시판을 악용하는 것만 강조된 셈이다. 물론 드라마의 플롯에 긴장감을...
전문직이라고 하는 의료, 법, 교육 분야의 일들은 이직이 참 수월하다. 발령에 따른 이직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병원을 옮기는 일, 교사가 학교를 옮기는 일, 입학사정관이 대학을 옮기는 일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이 대학에서 학생 선발을 하다가 사교육 기관으로 이직하기를 원한다면 3년이라는 제한을 둔다.
「고등교육법」 제34조의3(입학사정관의 취업 등 제한) 입학사정관은 퇴직한 날 이후 3년 동안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 습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학원을 설립하거나 이에 취업을 할 수 없으며,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입시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설립하거나 이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교육공무원법」 제5조에 따른 인사위원회 또는 「사립학교법」 제53조의 3에 따른 교원인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본조신설 2012. 1. 26.]
교사가 학교에서 사교육 기관으로 이직을 할 때 제한이 있던가. 판검사가 퇴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할 때 제한이 있던가. 물론 공익과 선의를 추구하는 일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업태로...
받게 될 것이고, 대학 밖에서도 그 전문성에 대한 의심을 조금은 거두게 할 것이다.
누군가는 '전문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소멸직'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전문직이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전문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전문직이어서 해야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더욱 많다. 그런데 그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가 아닌 이상, 이 고등교육기관을 다 열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쯤 학부모들 사이에 화제가 되던 서글픈 농담이 있 다. '아이가 어릴 때는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싶어서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였는데, 학교에 보내보니 천재는 아닌 것 같아서 서울우유로 바꿨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니 서울대는 못 갈 것 같아서 연세우유로 바꿨다. 막상 고등학교에 보내보니 건국대라도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국우유로 바꿨다. 그러다 고3이 되어보니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도 가길 바라는 마음에 저지방 우유로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에 막상 가보니 인생 별거 없고 행복하게만 살기 바라며 빙그레 우유로 바꿨다.'라는 이야기이다. 대학 만능주의와 대학 학위가 사회이동의 사다리로 작용하던 세대의 자조가 섞인 농담이 아닐까 싶다.
대입이라는 것은 너무 갑자기 크게 다가오는데다가 도통 모르겠기만 한 블랙홀 같은 것이다.
입학처에 걸려오는 전화는 매일 적게는 몇십 통, 많은 날은 몇백 통 정도이다. 대부분의 전화 문의는 매우 간단한 질의이거나, 매우 당황스러운 요청이다. 이를테면 모집 요강만 읽어 보면 모두가 단번에 알 수 있는 단편적인 내용을 묻거나, 합격 가능성을 예측해달라는 무리한 요청이거나, 대입 제도에 대한 불만사항을 토로하거나, 개인적인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어떤 문의 전화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나에게 모든 걸 설명해라, 어떤 문의 전화는 모집 요강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시간도 없으니 지금 당장 설명해라는 식이다.
동전을 넣고 원하는 음료를 뽑아먹는 자판기처럼 뚝딱뚝딱 답을 해주길 원하는 수화기 너머의 사람과 콜센터처럼 간단한...
요즘 모든 일의 주체가 지원자인지 지원자의 부모인지 헷갈리는 상황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가령 하루에 입학처로 걸려 오는 전화가 100통이라고 가정을 한다면(사실 특정 기간에는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모든 전화가 통화 중일 때가 태반이다), 그중 80통은 학부모가 전화를 거는 상황이다.
“제가 F 전형을 지원할 건데, ...... 이 서류랑 그 서류는 어떻게 제출하는 건가요?"
"어머니가 지원하시는 건 아니죠?"
“아뇨, 아이는 학교 갔으니까, 내가 전화했지요. 자기소개서에 어쩌고저쩌고 내용을 써도 되나요?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그 뜨거웠던 여름은 어느새 지나가고 이제는 제법 친해진 친구들끼리 강의 시간표를 맞추어 몰려다닌다. 학생회관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소리도 들리고, 학생 식당은 다시 줄을 서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입학처는 가을이 되면 봄과 여름내 밖으로 돌아다녔던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학교 안에서, 사무실 안에서 해야 하 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하늘보다 컴퓨터 화면을 더 오랫동안 마주하는 시기가, 가족보다 입학처 구성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기가 돌아왔다.
어느새 종이 서류가 아닌 데이터로 가득한 서류가 물밀듯이 들어온다. 밤하늘의 별의 개수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약 3천여 개이고,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전체에 흩어져 있는 별의 개수는 수천억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크고 작음이 다르고 빛과 색, 자리한 좌표까지 너무나도 다른 별들 사이에서 우리 대학에 맞는 별을 고르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시작된다.
서류 접수 마감 다음 날, 입학처 사무실 앞쪽에서 낯선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전형 기간이 되면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입학처에서는 출근길에 마주친 낯선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 의심을 가득하고 있다. 알고 보니, 전날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지원자의 학교 교사였다. 기한 내에 추천서를 제출하지 못하여, 출력본을 들고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에게 가지는 미안함, 미안함으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자괴감, 후회스러움, 죄스러움 이런 감정들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류를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교사가 어제 하룻저녁 보냈을 시간은 감히 다른 사람이 짐 작할 수도 없다. 추천서는 필수서류이므로 제출하지 못한 경우, 서류 미제출 처리되어 평가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불합격 되는 것이다. 학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송사에 휘말 릴 수도 있다. 부모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 우리 아이의 추천서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나. 우리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가.
한 명의 교사가 담임하는 학급은 25명 남짓의 학생으로...
이 학생들이 수시전형 6개의 카드를 모두 지원한다고 했을 때, 6개의 전형이 모두 추천서를 제출하는 전형이라고 가정한다면, 150개의 추천서가 작성되어야 한다. 물론 반 학생들이 모두 담임교사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지도 교사, 교과 담당 교사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는 즉, 담당 하고 있는 교과목에 따라서 다른 반 학생들이 다른 학급 담임 교사에게 추천서를 부탁하기도 한다는 말이 된다.
물론 한 학생의 추천서가 대학별로 모두 다르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형별로도 꼭 다르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원하는 대학별로, 전형별로, 학과별로 조금씩 수정을 할 것이다. 한 번의 대입을 통해 교사가 작성해야 하는 추천서는 적어도 5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럼 학생에게도 부담되고 교사에게도 부담되는 이 서류, 추천서를 왜 대학에서는 요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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