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화창한 한여름의 시작을 앞두고 읽기 좋은 책. 여름 한국어학원, 한여름 국어학원으로 헷갈릴 수 있지만, 여름한 국어학원이다. 강다방은 학원을 꽤나 다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다녔던 예전에 다녔던 학원과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학교나 학원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수업 시간에 진도 말고 딴 이야기를 듣는 때였는데, 그때 들었던 재미있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책이다.
제목 : 여름한 국어학원
저자 : 변진한
펴낸곳 : 깨소금 출판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19쪽
크기 : 125x188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2년 10월 24일
ISBN : 979-11-980389-1-3 (03810)
작가 소셜 미디어 계정
https://twitter.com/story337
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깨소금 출판사
변진한
학원 강사로 12년 일하다 잠시 쉼표를 찍고,
다음 문장을 생각하는 중
- 이 책의 표지 제목은 강원도 교육청의 '강원교육모두, 본문은 을유문화사의 '을유1945, 네이버의 '나눔스퀘어,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명조'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서체를 제작 및 배포해 주신 업체 및 관계 기관에 감사드립니다.
여름한 국어학원
00 프롤로그 _7
01 스물엔 스물의 벚꽃 _9
02 매화 전구 _16
03 글 치는 사람 _19
04 별 같은 시절 _26
05 우연에 대하여 _37
06 황제 노래방 _43
07 여름이었다 _46
08 물놀이 _49
09 코로나가 대유행이던 시절 _52
10 정답은, 정답이 없다는 것 _54
11 아이를 기다리는 간절함 _65
12 어른으로 번져 가는 것 _68
13 좋은 일 _71
14 가을은 참 괜찮은 계절 _72
15 이사_75
16 수능 한파 _81
17 윤종신, 첫 콘서트 _91
18 《숨어 있는 것들》 _97 '원더풀 라디오_100
20 연애시대_104
21 처음과 끝 _108
99 에필로그 _118
00 프롤로그
<여름한 국어학원>은 서초동의 오래된 건물 2층에서 내가 꾸려가던 작은 국어학원의 이름이다. '여름'은 ‘열매’, ‘하다’는 '많다'의 옛말이어서, '여름한'은 ‘열매가 많은' 정도의 뜻이라 할 수 있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이름으로 짓겠다."며 며칠을 고민해서 만든 이름 인데, "한여름 국어학원이죠?"라든지 "여름 한국어학원 맞나요?"하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2016년 개원하여 2022년 폐원했다.
어쩌다 보니 1인 학원에서 원장이란 직함을 달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 시절을 포함해 12년 정도 일을 하다 쉼표를 찍고 돌아보니...
01 스물엔 스물의 벚꽃
"선생님은 꿈이 무엇이셨어요?"
강사 시절 더러 받곤 했던 질문인데 늘 한마디로 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릴 때 꿈이 무엇이 었는데 지금은 우리 앞에 앉아 학원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느냐는 것 같기도 하고, 가고 싶은 대학은 있지만 정작 꿈은 없는 K-고딩의 진지한 질문 같기도 했다. 하지만 대답이 어려웠던 중요한 이유는 실제 나에게 꿈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꿈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좀처럼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꿈은 잘 모르겠는데, 하고 싶은 일은 많았어."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는데, 그렇게 마음이 떠있다 싶으면 간식 싸 가지고 가서 사진도 찍고 두어 시간 놀다 와.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벚꽃은 내년에 도 피긴 피겠지만, 그건 스무 살의 벚꽃이야. 열아홉의 벚꽃은 열아홉에만 피는 거야. 내년에 올해의 벚꽃을 볼 수는 없어. 단, 엄마께 내가 이런 말을 했 다고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해도 항의 전화 한번 받은 일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벚꽃놀이를 가지 않았거나...
"선생님, 이거 맞긴 했는데... 근데 왜 '카드로 결제하다'가 '긁다'의 의미로 추가됐을까요?"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아니어서, 왜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를 생각하니 이유는 단순했다. 요즘 어린 학생들은 카드를 단말기에 긁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나, 봤어도 흔한 장면이 아니다 보니 그 의미가 추가된 이유를 곧바로 연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어린 시절엔 부모가 결제를 했을 것이고, 이젠 대부분 IC 카드이다 보니,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카드를 긁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 든 이유를 말해 주면, 그래도 긁는 걸 본 적은 있었다는 듯 "아하~"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과 이야기...
2021년 6월 11일
변망고 씨랑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 아빠, 나는 빠삐요.
- 지민아, 이건 빠삐요가 아니라 빠삐코야.
- 아빠가 어떻게 알아?
- 이거 아빠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
- 그럼 지민이는 그거 안 먹을래.
- 왜?
- 응, 왜냐면, 유치원에서 날짜 오래된 건 먹으면 안 된댔
어.
우리 가족의 한 시절이 별처럼 빛날 수 있었음을, 우리 집이 웃음으로 찰랑거리는 날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가만히 책을 읽던 딸내미가 말했다.
- 아빠, 친척끼리는 서로 싸우고 죽일 수도 있대.
- 지민아, 혹시......, 천적 아니야?
아이가 여덟 살쯤 되니 잠투정을 한다든지,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있다든지... 이런저런 일들로 아빠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장면이 많아진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 우리도 처음엔 공부는 잘할 필요 없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빌었지만, 이제는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을 내는 부모가 되어 간다. 그러다 가끔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들에 관한 아픈 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다시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기도를 하는 뻔뻔한 부모가 되어 가는 것이다.
7년 전의 그 부부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을까. 힘든 시기는 짧게 지나고, 그들의 아이가 지금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되어 엄마 아빠를 기쁘게도 힘들...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땐 화장을 안 해도 예쁘대요."
요즘 어른들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 보다.
물론 누구나 이때의 '예쁘다'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땐 자주 생각했다.
너희들이 봄이구나,
지금은 비록 입시에 찌들어 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마흔이 될 무렵엔 이런 생각을 했다.
한 80까지 산다면... 나도 이제 늦여름이겠구나.
마흔하나에도 마흔둘에도 생각했다.
평균 수명이 좀 늘었으니
그래도 아직은 늦여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학원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되었지만, 회사원들도 가슴 속에 사표 하나는 늘 품고 다닌다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그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결정은 다분히 우발적이었 고, 이행은 충분히 신속했다.
건물주에게 2월 초에 나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도 편지를 썼다. 12월 마지막 주 수업, 반마다 폐원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수업 말미 십분은 네 시간 내내 비문학 수업하는 것보다 힘들고 길었다. 아이들의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변명을 해도 결국 아이들을 팽개치고 도망가는 것으로 보일까 봐.
끝까지 1인 학원으로 운영했다. 사람을 써서 운영하지 않으면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끝내 따르지 못했다. 모름지기 원장이면 가르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운영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한참 모자란 원장이었다.
나태해질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수업이나 자료 준비에, 그리고 아이들을 대할 때 최선을 다하려 했다. 1등급을 받았다는 전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으며 함께 기뻐한 아이도 있지만, 수능 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어진 아이들도 있다. 진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친구들 사이의 고민을...
길은 또 다른 시작에 닿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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