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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백수혜

강다방 2023. 4. 29. 18:35

 

 

 

 

에세이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백수혜

 

 

재개발 구역 등지에 버려진 식물들을 구조하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의 이야기. 구조한 식물들은 임시 보호 기간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분양되기도 하는데... 곤충반, 채소반, 졸업반 등 우리 주변에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던 도시의 초록 친구들을 이야기를 다룬 책. 책 사이사이 초록 빛깔의 사진들이 담겨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제목 :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저자 : 백수혜
펴낸곳 : (주)사이언스북스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04쪽
크기 : 128x188mm
가격 : 16,000원
발행일 : 2023년 4월 5일
ISBN : 979-11-92908-45-8 (03810)

 

 

 

공덕동 식물유치원 소셜 미디어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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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단지에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는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차례

어서 오세요, 식물유치원에

1 재개발 단지에서의 만남 14
2 그저 최선을 다할 뿐 24
3 식물유치원 개원 28
4 잊지 못할 첫 졸업생 34
5 다육이는 키우기 쉽다면서요 40
6 온라인 식물 친구들 46
7 초록손 친구 52
8 방아, 이웃의 선물 58
9 공덕동 곤충유치원 62
10 식물유치원의 겨울방학 72
11 채소반 친구들 76

 

 

 


나는 집이 그곳에 살 사람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 마음에 드는 집이라도 그곳에 살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지금까지 비용, 위치, 이사 날짜 등 여러 조건을 모두 갖춘 경우는 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 집을 가진다는 생각을 아주 어릴 때도 해본 적이 없다. 이곳저곳 떠돌다가 내가 마음 두는 곳을 내 집이라 여겼고, 집을 꼭 서류로 소유 할 필요 없는,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2021년 6월, 또다시 마음 붙일 곳을 찾아 헤맸다. 그전 해 지방에서 열린 예술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돌아와서일까, 도시의 번듯한 신축 빌라나 깔끔한 오피스텔보다는 지어진 지 오래된 아늑하고 소박한 곳을 찾아다녔다. 한정된 예산에 맞는 곳을 찾아 돌고 돌다 보니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공덕동 재개발 단지 근처에 있는 작은 집을 구하게 되었다. 집을...

 

 

 

 

 

공덕동, 연희동, 노량진 등의 재개발 단지를 돌며 식물을 구조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라든가 방침이 생겼다. 당연하지만 버려진 식물인지 확실히 확인할 것. 재개발 단지엔 때때로 남들보다 늦게 이사 가는 집이 있기 때문에 빈집 앞에 버려진 화분인지 꼭 확인한다. 대체로 버려진 식물은 방치되어 지낸 기간이 눈에 보인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기간을 얼추 가늠 할 수 있달까.

그리고 일년생 식물은 웬만하면 구조하지 않는다. 지금있는 장소에서 적응해 살 날도 많지 않은데, 굳이 무리하게 구조하다 상처를 입히는 것이 더 나쁜 선택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틈새에 뿌리를 깊게 내린 식물은 구조하지 않는다. 아스팔트 틈에서 자라는 식물을 뽑으려다 몇 번이나 뿌리를 뚝 끊어버렸다. 구해주려다 오히려 죽여버린 셈이어서 마음이 쓰렸다. 모든 구조가 성공적일 순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도 영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혹여나 꼭 구조하고...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해 온 식물 중, 이름 모를 다육이들은 차치하고 나무 도막처럼 생긴 식물이 가장 궁금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알로카시아'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친구였다. 사진 속 거대한 모습을 보니 나도 멋들어진 잎사귀를 뽐내는 우람한 모습으로 키우고 싶어졌다. 아스팔트에서 누운 상태로 싹이 나버린 알로카시아를 바로 데려와 물에 담가 세워주니 요상한 'ㄱ'자 형태가 되었다. 잎은 빛을 향해 위로 자랄 것 같지만, 너무 큰 뿌리는 어찌 하나 싶어 찾아보니 잘라줘도 된단다. 깨끗이 닦은 식칼을 들고 과감하게 동강동강 잘랐다. 일단 수경으로 키워볼 요량으로 작은 나무 도막들 하나하나 물을 담 은 유리 종지에 담가놓고 한숨 돌리려고 보니, 손의 느낌이 이 상했다.

아무리 씻어도 수천 개 아니 수만 개의 바늘이 손바닥을 콕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부랴부랴 다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제야 보이는 무시무시한 경고문. “알로카시아는 독성이 있는 천남성과의 식물로 식물액이 몸에 닿으면 안 되니 꼭 장갑을 끼고 만지세요!" 왜 이걸 이제 봤니... 딱히 해결 방법은...

 

 

 

 

 


공덕동 식물유치원은 서울 한가운데 놓여 있다. 잿빛 삭막함을 떨치기엔 역부족인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우리 집을 산과 들처럼 누비는 친구들이 있다. 도시에서 마주치기 쉬운 길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피하느라 사람 눈에는 자주 띄지 않지만 무리 지어 지내는 쥐들, 그리고 족제비도 우리 집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양철지붕이라 방문객들의 발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후다닥 지나 가는 발소리를 들어보면 우리 집 지붕은 어딘가로 향하는 길목인 듯하다. 어떤 동물인가 싶어 궁금해서 기웃거려보지만 막상 마주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야생동물과 눈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마당에 앉아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달이 어느 방향에 어떤 모습으로 떠 있는지 구경하다 보면 핸드폰을 볼 새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옥상에서 우리 집 옥상...

 

 

 

 

 

이웃 할머님들이 키우는 식물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연보랏빛 꽃이 있었다. 이름을 여쭤보니 방아라고 알려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 방아가 우리 집에 어찌 싹을 틔운 것이다. 옆집 할머니도, 앞집 할머니도, 뒷집 할머니도 키우는 방아. 어쩌다 나의 화분까지 왔을까. 바람 따라 날아왔을 수도 있고, 우리 집을 길목 삼아 다니던 고양이나 족제비가 옮기고 갔 을 수도 있다. 이웃들의 방아 화분을 보며 차츰 방아의 매력에 스며들면서도 선뜻 키울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웃이 몰래 두고 간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기분 좋은 깜짝 선물. 뽑았을 때 향이 안 났더라면 그냥 버렸을 텐데 짙은 방아의 향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방아를 키우니 나도 공덕동 이 작은 골목의 진정한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 '너도 이제 이곳에 적응했니? 그렇다면 우리 동네 멤버들의 표식인 방아를 주마!' 하고 족제비 대장이 준 것이라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방아가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그날까지 잘 키워보겠습니다, 대장님!

 

 

 

 

 

그때마다 다시 멋지게 보수하긴 하지만. 모두가 편한 곳에 살면 좋겠건만 사람이나 곤충이나 좋은 곳에 자리 잡기는 참 힘든 일인가 보다.

그닥 선호하지 않지만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은 파리와 모기다. 모기야 워낙 악명이 높으니 말할 것도 없고 파리는 붕붕거리며 잽싸게 날아다니는 것이 꽤나 신경 쓰이는 불청객이다. 게다가 내 몸에 앉으면 괜히 똥이 된 것 같아 기분도 찜찜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짙은 분홍색을 뽐내며 피어난 백일홍에 앉아 있는 대왕 똥파리를 보았다. 파리도 꿀을 먹는다고 들었는데 두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게다가 햇빛을 받아 푸른빛의 몸통이 어찌나 영롱하게 반짝이는지. 묘하게 백일홍의 진분홍과도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그동안 똥파리라 불렀는데 꽃파리 로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이제 내 몸에 파리가 앉으면 나를 백일홍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잘 맞아 항암치료가 성공적이었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씀. 약이 평균 인간 신체에 맞게 만들어지다 보니 다행히도 보통 체질이었던 엄마의 신체에서 효과가 좋았다는 거다. 특이 체질 말고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바로 그 평범함. 난 항상 남과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었는데. 보통 사람이 아닌 색다른, 특이한, 독특한 사람이길 늘 원해왔는데. 그게 보통인 것보다 훨씬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고정관념이 단단히 부서졌다. 평범함도 멋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된 식물들이 그렇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식물이다. 나도 그렇다. 흔한 사람이다...

 

 

 

 

 

식물유치원을 떠나간 식물들을 하나둘 세어보다가 멈췄다. 개원한 지 벌써 3년 차. 100여 명(?)의 친구들을 키워 보냈다. 분명 좋은 순간도 많았지만 아쉬운 이별도 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간간이 SNS나 메시지를 통해 입양한 식물의 안부를 듣기도 한다. 대부분 입양자와 사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다 보니 내가 먼저 연락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입양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어련히 잘 돌봐주시겠거니 믿을 뿐이다. 나보다 더 좋은 집사를 만났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초록별로 떠나보내 연락을 안 하실 수도 있다. 열심히 구조한 내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으 니까. 혹은 굳이 연락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졸업한 친구들의 근황을 알게 되면 행복하고 뿌듯하지만, 왠지 수동적인 자세로 오는 연락만 받을 뿐이었다.

 

 

 

 

 


재개발 단지를 돌아다니며 기웃기웃 구경하다 보면,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진다. 저 집 담장 안의 커다란 대추나무는 혹시 자녀의 탄생을 기념하며 심었을까? 감나무가 있는 저 집은 가을에 고운 주황빛으로 익었을 감들을 기다란 장대로 땄을까? 화분이 많은 이 집은 주인이 식물을 엄청 좋아했나 보다. 능소화로 뒤덮인 담벼락은 여느 벽화보다 아름답고, 장미 덩굴이 장악한 담벼락이 길게 늘어선 골목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짙은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빈집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지금은 떠난 주 민들이 살던 당시 북적이던 마을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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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용지로 162 (옥천동 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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