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강릉 주문진/강릉 관광 명소

[주문진]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다방 2022. 3. 20. 19:07

 

 

 

 

[주문진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건축과 삶 투어에 참여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몇 달이 지난 시점이고, 골목을 걸으며 구두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강릉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투어를 직접 참여하는 것도 추천한다.


[신청안내-꿈꾸는 사임당 예술터] 건축투어 참여자 모집

https://www.gncaf.or.kr/contents.asp?page=128&kind=2&IDX=4320

 

[신청안내-꿈꾸는 사임당 예술터] 건축투어 참여자 모집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건축과 삶 투어 참여자를 모집합니다!4개권역 (명주, 옥천, 노암, 주문진)코스당 최대 15명 선착순 모집!!!신청방법 - 아래의 신청 권역을 클릭해주세요!♥명주♥♥옥

www.gncaf.or.kr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등대 주위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삶의 터

주문진 - 솔 건축사사무소 전태휴 건축사

 

건축과 삶 투어의 마지막 지역은 강릉 북쪽 마을 주문진이다. 주문진은 강다방에게 더욱 특별한 곳이다. 강릉에 처음 와서 살았던 동네가 주문진이었다. 지금의 강다방이 있게 해준 이제는 사라졌지만,  강다방 게스트하우스도 주문진에 있었다. 주문진에 살아서 투어의 내용을 다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2-3년 가까이 주문진에 살면서 가보지 않은 곳도 있었고 모르는 내용도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2021 건축사투어-주문진 지도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zC7d0V5-H2dGc-r6jys6M0tL_GZCRlbB&ll=37.89713477535106%2C128.83034594999998&z=17 

 

2021 건축사투어-주문진 - Google 내 지도

2021 건축사투어-주문진

www.google.com

 

 

 

 

 

 

 

주문진 건축과 삶 투어는 주문진 등대에서 시작했다. 건축구조물은 철근콘크리트, 목구조, 조적조 등이 있는데, 주문진 등대는 조적조 건축물이다. 조적조는 점토벽돌로 지은 건축물을 의미한다. 등대 외벽은 덧발라져있어 벽돌 구조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바닷가에는 조개가 많은데 조개로 넣어 건축물을 만들면 쉘구조라고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지금의 38선이 생기기 전, 주문진은 강릉 최북단 지역이었다. 주문진 위쪽 양양부터 북한이었는데, 양양 속초 사람들이 주문진으로 내려와 통일이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당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에는 이미 집이 있었고, 피난민들은 등대 주변 구릉지에 집을 지었다.

 

 

 

 

 

 

 

주문진등대

주문진등대가 위치한 주문진읍 주문리는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으로 주무을이라 하다가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문리라 칭하였다. 주문진항은 부산~원산 간 항로의 중간기항지가 되면서 여객선과 화물선이 입항하기 시작하였으며, 1927년 6월에 본격적인 개항장이 되었다. 항내 수 면적이 21m² 크기인 연안항으로 예전엔 오징어, 명태, 꽁치, 무연탄, 경유 등이 주로 반입되고, 규사가 주로 반출되는 등 동해안 유수의 어업 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었다. 강원도 중부지역은 특별히 발달된 항구가 없어 다른 지역에 비해 등대가 늦게 설치된 편인데 주문진등대는 1918년 3월 20일(조선총독부고시 61호) 강원도에서는 첫 번쨰로 세워졌다.

백원형연와조로 건조된 이 등대의 등탑은 최대 직경 3m, 높이 10m로 외벽엔 백색의 석회 모르타르가 칠해져 있다. 이러한 벽돌식구조의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건축의 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해방 이전 조선총독부가 세운 탓에 일본식 건축양식을 사용했다. 등대 출입구 상부에는 일제 상징인 벚꽃이 조각돼있고 6·25때 총탄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등대 불빛은 15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37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 폭풍우나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공기압축기 즉 에어사이렌을 통해 60초마다 한 번씩 5초 동안 긴 고동소리를 울리는데, 이 소리가 선박에 가 닿는 거리는 3마일(5.5km) 해상이다.

등대 개방 시간
하절기 06:00~18:00
동절기 07:00~18:00 

 

 

 

 

주문진 등대 앞에는 공원과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조성되어 있어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1-2시간 바다를 보며 멍때리기 좋은 곳이다.

 

 

 

 

주문진 등대는 1918년에 강원도에서는 첫 번쨰로 세워진 등대이다. 벽돌로 쌓아올린 구조로 건조되어 국내 등대 건축학적 가치도 매우 뛰어나다. 2002년 등대종합정비를 실시하여 해양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동해일출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적재의 명소이며 언덕위에서 긴 세월동안 어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뿌려 주고 있다.

 

 

 

 

등대를 떠나 마을로 내려갔다. 빗물이 흐르는 길을 파이프로 만들었다. 이 집 주인은 금손인듯하다.

 

 

 

 

계란 나무도 만났다. 나무에서 계란이 열리다니!

 

 

 

 

강다방이 주문진에서 살 때는 못 보던 갈매기들도 이사왔다.

 

 

 

 

주문진 등대가 있는 새뜰마을은 도시재생중 가장 소규모인 주거환경개선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주문진 등대 주변 근처에는 아직도 집 안에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최소한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을 만들어줬다.

 

강다방이 주문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기위해 집을 알아 볼 때, 등대 마을에 있는 집을 본 적이 있었다. 집 값이 저렴한 이유는 토지 경계나 구분이 정확하지 않았고, 토지 주인과 집 주인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저렴했었다. 드디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격대의 집이 나왔다고 기뻐했는데, 결국 다른 지역의 집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비닐들. 이런거 보면 사람들이 참 똑똑하다.

 

 

 

 

주문진 성황당

조선시대 이곳 바닷가에서 진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당시 현감은 여인의 미색을 탐했으나 여인은 현감의 청을 거절하고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렸다. 이후부터 동해안 일대에는 흉어와 질병이 반복되었다. 조선시대 광해군 6년(1613년)에 강릉부사로 재임한 정성계는 그와 같은 사연을 듣고 여인의 사당을 짓고 명복을 빌어주니 어촌에는 다시 안녕과 풍어가 깃들었다는 유래이다.

그 후 마을 주민들은 강릉부사가 죽은 후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다가 1910년 지금의 위치(주문리 267-7번지)로 옮겨 세웠으며, 1954년 7월에 개축하면서 앞쪽의 기둥 4개를 더 세웠고 서낭당 앞 40m 지점에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이라고 쓴 석비가 작은 성황당이다.

성황당 가운데 방문을 열면 벽에 물고기, 문어, 소라 성게와 해초가 그려진 벽화가 있으며, 제단 안쪽 중앙에 성황신, 토지신, 어역신과 그 옆 왼쪽 벽에는 장군상이, 마루 오른편 벽에는 선녀상이 있고, 성황당은 3위신은 왼쪽(바다 쪽)이 용왕신, 가운데가 우복 정경세, 오른쪽이 진이 여신이며, 어린아이는 유복자의 화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주문리 어촌계 주관으로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제는 음력 3월 9일, 9월 9일 자정에 해마다 두 번 제사를 지내고, 풍어와 안전조업을 염원하는 풍어제는 3년에 한 번씩 음력 9월 9일 지낸다. 제사에 펼쳐지는 16거리 동해안 별신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의 가호로 지정되어 있다.

 

 

 

 

 

 

큰 성황당 내부는 문이 닫혀 있었다. 어촌 마을에서 성황당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어촌 마을에는 개척교회가 정착하기 굉장히 힘든 곳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몇 년 전 성황당 아래 12층 건물이 들어서려고 했으나, 경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성황당, 서낭당에는 보통 나무가 있는데 주문진 성황당에는 나무가 없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 보면 건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주문진 성황당은 어촌에 있는 성황당중 규모가 큰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기도 하면 아들 잘 낳는다는 걸로 유명하다고(?) 말씀하셨다. 성황당 건물 아래 부분을 보면 나무 기둥을 돌들이 받치고 있다. 습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닷가라 바람이 굉장히 쎈데 보통 한옥은 기와와 지붕의 무게로 바람에 건물이 무너지거나 날아가지 않게 한다고 했다.

 

성황당에도 성별이 있는데, 어촌마을에 있는 성황당은 남여 성황당을 근처에 둔다고 했다. 일반 사람들은 위쪽에 있는 기와집 성황당만 보고 지나치는데, 아래로 내려가면 비석으로 만들어진 여성황당이 있었다.

 

 

 

 

성황당에서 바라보는 주문진항

 

 

 

 

큰성황당 아래 길로 내려가면 있는 작은 성황당.

 

 

 

 

성황당 옆은 새뜰마을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원이 있었다.

 

 

주문진 등대 새뜰마을

이 지역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성황당과 1918년 강원도 최초의 등대가 설치된 지역으로써,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 1, 5, 7리에 위치하며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시대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우리시에서는 2015년 국토부 공모사업으로 4년여간 지역 생활인프라 시설 확충 및 안전사고 우려지역, 노후 가옥 등을 정비하며 주문진 등대 새뜰마을을 조성하였습니다.

 

 

 

 

주문진 등대 근처 마을 집들은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집이 지어졌는데, 바다로 나간 남편을 보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공간을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확장한 시설물들

 

 

 

 

마을 언덕 아래 입구에는 위까지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가지 못 해 쓰레기 배출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곳이 멀기 때문에 어떤 집에서는 아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식 이층건축물을 만났다. 주문진 곳에는 과거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지금 주문진은 강릉시에 속해있지만, 과거 한 때에는 강릉시와 주문진읍이 별도로 존재했다. 일본이 들어오면서 주문진항을 개발했다. 그래서 강릉보다 주문진의 도시 규모가 더 컸다. 일제강점기가 더 길었다면 지금의 강릉은 강릉이 아닌 주문진이 되었을 수 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등대마을에서 내려와 불당골길로 이동했다. 볼당골길로 가는 도중 양양 꼬댕이를 지났다. 꼬댕이는 고개라는 의미의 강원도 사투리다. 불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절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남사당패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점집이 모여있었다는 이야기도, 남자의 생식기 모양의 지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주문진 등대마을이 피난민 위주로 구성된 마을이었다면, 불당골 쪽은 후발 정착민들, 오징어와 명태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투어를 안내해주신 가이드이자 새뜰마을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분께서는 이곳에서 한 어머니를 만났는데, 정선 산촌에서 주문진으로 결혼하려 오신 분이라고 했다. 산에는 먹을게 부족했는데 주문진에는 먹을게 많다고 해서 주문진으로 시집 왔고, 남편이 누군지도 모른채 달랑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 주문진에 왔다고 이야기 했다.

 

 

 

 

불당골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시대에 봐도 규모가 커보이는 평화장 여관이 나왔다. 주문진에서 몇 년 살았지만 이러한 곳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문이 닫혀있어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말로는 여관 안은 건물 가운데 정원(중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당골길 골목 풍경들

 

 

 

 

불당골길 안으로 들어가는 길, 대문이 엄청 큰 집을 만났다. 지금은 대문으로 사용하지 않고 어구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이 높은 이유는 말이나 가마가 들어가기 위해 높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문은 양반의 권위이자 상징이라고 했다.

 

 

 

 

불당골길은 도로가 굉장히 비좁기 때문에 차가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주민들의 숙원사업은 소방도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강릉시에서는 폐가를 매입해 소방도로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옛날 느낌 물씬 나는 간판. 요즘 사람들은 철학원이 뭐하는 곳인지 모를 것이다.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 주영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주영초등학교는 1940년대 개교했다. 어업에 종사하는 부모들의 자녀가 주로 입학했다. 1960년대에는 한 해 입학생이 3,000명이었는데, 2021년에는 18명으로 줄었다.

 

 

 

 

 

 

주문진답게 벽화에 물고기를 그려놓았다.

 

 

 

 

풀멍하고 있는 고양이

 

 

 

 

중국집 앞에 자리잡고 있는 고양이들. 4차선 도로가 있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타일을 건물 외벽에 부착한 집. 푸른색 타일을 사용한 건물이 많았던 포르투갈이 떠올랐다.

 

 

 

 

건축사 투어의 끝은 등대꼬댕이 건물 앞에서 종료되었다.

 

 

 

 

 

+ 강릉 주문진 등대마을, 불골당길과 관련된 더 많은 글들

 

[다같이 돌자 동네 열 바퀴] 주문진 이야기(등대마을 편), 강릉시도시재생지원센터

https://gursc.org/contents.asp?page=430&kind=2&IDX=2835 

 

[다같이 돌자 동네 열 바퀴] 주문진 이야기(등대마을 편)

안녕하세요!8월 12일(수)에는 다돌동으로 주문진 등대마을을 탐방했는데요,사업추진위원단과 담당 공무원 모두 16명 집결하여 등대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탐방코스는 주문진등대 ? 등대2길 ? 등

gursc.org

 

 

[다같이 돌자 동네 열 바퀴] 주문진 이야기(불당골 편), 강릉시도시재생지원센터

https://gursc.org/contents.asp?page=430&kind=2&IDX=2836 

 

[다같이 돌자 동네 열 바퀴] 주문진 이야기(불당골 편)

안녕하세요!9월 4일(금)에는 다돌동으로 주문진 등대마을 불당골을 탐방했는데요,사업추진위원단과 담당 공무원 모두 17명 집결하여 등대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탐방코스는 주문2리 노인회관

gursc.org

 

 

+ 강릉 건축사 투어와 관련된 더 많은 글들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의 중심에서 만나는 1,000년 건축사

https://kangdbang.tistory.com/955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kangdbang.tistory.com

 

[옥천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랜드마크의 도시 옥천동 일대

https://kangdbang.tistory.com/956

 

[옥천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옥천동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kangdbang.tistory.com

 

 

[노암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남대천의 남쪽을 말하다​

https://kangdbang.tistory.com/967

 

[노암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노암동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kangdbang.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