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강릉 주문진/강릉 관광 명소

[노암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다방 2022. 3. 8. 16:20

 

 

 

 

[노암동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건축과 삶 투어에 참여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몇 달이 지난 시점이고, 골목을 걸으며 구두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강릉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투어를 직접 참여하는 것도 추천한다.


[신청안내-꿈꾸는 사임당 예술터] 건축투어 참여자 모집

https://www.gncaf.or.kr/contents.asp?page=128&kind=2&IDX=4320

 

[신청안내-꿈꾸는 사임당 예술터] 건축투어 참여자 모집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건축과 삶 투어 참여자를 모집합니다!4개권역 (명주, 옥천, 노암, 주문진)코스당 최대 15명 선착순 모집!!!신청방법 - 아래의 신청 권역을 클릭해주세요!♥명주♥♥옥

www.gncaf.or.kr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남대천의 남쪽을 말하다

노암동 - 김영래 건축사사무소 김영래 건축사

 

건축과 삶 투어의 3번째 지역은 노암동이었다. 노암동은 강릉 사람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동네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강릉에 살면서도 노암동으로 넘어갈 일은 많지 않다. 서울에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며 도시를 나누듯, 강릉은 남대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며 남과 북을 나눈다.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풍수지리의 명당인 것에 반해, 강 건너 남쪽은 조선시대부터 풍수지리에서 큰 비중이 있는 지형이 아니였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강 근처 양지 바른 곳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노암동에 터전을 자리 잡았다.

 

 

 

 

2021 건축사투어-노암동 지도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dQ83G6V6DCY3MmK8UDmmAHtIVbRNdOKi&ll=37.748690788428085%2C128.9019601&z=16 

 

2021 건축사투어-노암동 - Google 내 지도

2021 건축사투어-노암동

www.google.com

 

 

 

 

 

 

 

노암동 건축과 삶 투어는 단오문화관(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앞에서 시작했다. 단오문화관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세워진 시설이다. 매년 강릉단오제가 이곳과 근처 남대천변을 따라 열린다. 단오문화관이 들어서기 전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고, 농상전(강릉농업고와 강릉상업고의 축구 경기)이 열렸다고 했다.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https://www.gn.go.kr/dano/index.do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GANGNEUNG DANOJE 천년의 어울림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www.gn.go.kr

 

강릉단오제, 유네스코와 유산

https://heritage.unesco.or.kr/%EA%B0%95%EB%A6%89%EB%8B%A8%EC%98%A4%EC%A0%9C/

 

강릉단오제

제목 : 강릉단오제 설명 : © Ahn, kwang-Seon 상세정보 목록 :  대표목록 국가 :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등재연도 : 2005년 강릉단오제는 단옷날을 전후하여 펼쳐지는 강릉 지방의 향토 제례 의식

heritage.unesco.or.kr

 

강릉 정기전(축구 농상전)

https://namu.wiki/w/%EA%B0%95%EB%A6%89%20%EC%A0%95%EA%B8%B0%EC%A0%84

 

 

 

 

 

노암동에는 남산이 있다.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의 남산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 가장 흔한 산 이름 중 하나이다.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도시 안의 좋은 기운은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바깥 나쁜 기운은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강릉에 ㅇ씨는 남산은 벚꽃나무가 많아, 매년 봄이 되면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남산공원 정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위령비가 있다. 위령비에는 청년 222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노암동은 구릉지가 많아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요충지였다. 원래는 다른 비석들도 있었는데 현재 비석들을 제외하고 정동진 가는 길에 있는 통일공원으로 옮겼다.

 

 

한청 순국동지위령탑 연혁

 

이곳에 세워진 탑은 6.25 동란지 괴뢰군과 적수공권과 싸우다 희생된 대한청년단원의 고귀한 애국사상과 거룩한 멸공정신을 기리며 그들의 영령을 길이 추모하기 위하여 동지들의 정성을 뫃아 1954년 10월에 건립한것이며 탑서편에 명단비를 세우고 이비에 연혁을 세겨 후세에 전하는바이다.

 

1978. 12. 10.

한청순국동지위령탑보존위원회

 

 

 

 

남산 정상에는 오성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단층 팔작지붕으로 불교나 고급주택에 많이 사용하는 지붕 형태다. 오성정은 지난번 명주동 투어에서 봤던 임영관을 철거하면서 나온 나무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부수고 버리는게 흔한 시대지만, 옛날에는 건축자재가 굉장히 귀했기 때문에 철거 후에도 건축 자래를 재사용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https://kangdbang.tistory.com/955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kangdbang.tistory.com

 

 

 

 

노암동은 1970년대, 1980년대 개발된 도심이다. 그래서 오래된 주택이 많다. 옛날에는 집 본채와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노암동은 언덕이 많다. 언덕을 깎으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근처에 공군 비행장이 있고 고도제한이 있어 재개발이 사실상 힘든 동네라고 들었다. 돈이 되면 재개발이 진행되고, 돈이 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암동은 자본의 논리에 비껴난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노암동은 오래전에 차가 흔하지 않을 때 조성된 주택가이기 때문에 길이 굉장히 좁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차가 없었고 그래서 주차장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암동은 아직도 차가 지나가거나 주차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강릉시에서는 담장 허물기 사업을 진행했고, 골목을 넓혔다. 담장 허물기 사업을 할 때 문제가 되었던 건 바로 주택가라 그런지 많은 도둑이 있었는데, 담장을 허물며 골목 곳곳에 CCTV도 함께 설치되었다.

 

 

 

 

옛날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방앗간. 지금은 방앗간 주변이 주택가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신일방앗간 주변에 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방앗간이 생겼다. 과거에는 근처 임계장의사 사거리가 노암동의 중심이자 번화가, 주 도로라고 이야기 들었다.

 

 

 

 

 

 

노암 신화아파트 근처로 이동했다. 마침 투어를 진행주신 건축사님이 어렸을적 이 근처에서 살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자신의 어렸을적 시절을 이야기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지금은 카페 자리에 미용실이 있었고, 2층에는 PC방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다니던 PC방이라 기억을 하신다고 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강다방도 어렸을적 자란 동네에 가봐야겠다. 미용실과 PC방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 것 처럼 도시도 인간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게 아닌가 싶다.

 

 

 

 

강릉의 다른 동네와 다르게 노암동에는 사진처럼 쓰레기 배출 장소가 많은 편이다. 차가 많지 않은 시절 만들어진 동네이다보니 골목이 좁아 쓰레기차가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을 많이 만들어았. 또한 노암동에는 담장이나 집에 보라색, 파란색 등 특이한 색깔이 칠해져 있는 집이 많은데, 학생들이 길을 헤메지 말라는 의미에사 각각 구별이 가능한 색을 사용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강릉고등학교는 초당동에 위치해있지만, 예전에는 강릉고가 용강동과 노암동에 위치해있었다. 강릉고의 이전과 함께 노암동에는 자연스럽게 마을이 생겼다. 지금의 신화아파트는 원래 언덕이었다. 언덕을 따라 한국전쟁 이후, 재건한다는 의미하는 재건마을이 있었는데, 언덕을 깍아 아파트를 만들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과거 느낌의 글씨체. 노암동은 변화에 비껴나 1980년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게 좋았다.

 

 

 

 

 

동네 구석구석에는 짜투리 땅을 이용한 텃밭도 있었다. 참 부지런하다.

 

 

 

 

모든 건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수가 발생한다. 그래서 노암동을 걷다보면 옥상에 지붕 설치한 곳들이 많다. 방수페인트 우레탄 등을 사용할 수 도 있지만, 지붕을 씌우는게 가장 경제적이고 오래가는 방수 방법이라고 들었다. 이전 투어 명주동도 그렇고 집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1980년대 건물에 2000년대 건축 양식이 추가된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노암동의 이정표이자 중심이라는 원약국. 노가니길 주변은 원래 논밭이었는데, 주변에서 원약국이 가장 처음으로 지어졌다고 들었다. 그래서 노암동 사람들은 원약국이라고 하면 어딘지 안다. 강릉고가 노암동으로 이사하며 주변에 마을이 생긴 것처럼, 남대천 쪽 잠수교부터 한라아파트 부근도 노암초등학교(현재는 강릉교육지원청)가 생기면서 주택이 들어섰다. 노암초등학교는 한 번더 자리를 옮겨 노암동 남쪽으로 이동했고, 옛 노암초등학교 건물은 현재 강원도 강릉교육지원청으로 사용되고 있따. 과거에는 2번 버스가 노가니길을 따라 운행되었다.

 

 

 

 

 

 

다음 목적지 김윤기 가옥으로 가는 길에서 향나무를 만났다.

 


향나무(시보호수)
이 향나무는 옛날부터 마을 주민의 휴식처 역할을 했던 정자목으로,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가슴높이 부위가 용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용트림나무라고도 부른다. 1780년 조선 정조임금 당시 세도가 홍국영이 방귀전리의 형을 받고 강릉에 내려와 1년여를 보내며 근심과 애환을 같이 했고, 1781년 4월 5일 사망하는 날까지 그의 흔적을 같이하며 향나무도 속이 탔던것 같다. 왼쪽의 살구나무는 향나무가 바람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김익남(김윤기의 아들)이 1961년에 식재하였다.

 

 

 

 

향나무 앞에 있는 정자. 이 곳 정자에는 화투 등 도박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는데, 동네분들이 화투를 치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아서 안내문을 부착했다고 들었다.

 

 

 

 

강릉 김윤기 가옥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58호
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노가니길 55-11

이 가옥은 안채를 중심으로 우측에 사랑채, 좌측에 참방이 있고 참방에 이어서 'ㄱ'자 배치 형태의 동별당이 있다. 안채의 정면에 행랑채가 있어 'ㅁ'자 배치가 되며, 행랑채 마당을 건너 문간채가 있는 70칸이 넘는 대가를 형성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약 400년 전이라 전하고 있으나, 본채에 강희 53년 갑오(1714년)명이 있어 280년 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들이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는 장대석 두겁대 기단을 쌓고 네모난 초석위에 기둥을 세우고 ㄱ전면에 마루를 두었으며, 대청마루에서 이어진 마루들이 각 방으로의 통로 구실을 하면서 전체를 연결시키고 있다.

참방 뒤편의 동별당은 자식들이 분가하기 전 1~2년 동안 집안의 생활습관을 익히기 위해 사용된 장소이며 'ㄱ'자 배치의 팔작기와 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안채와 마주하여 마루바닥으로 된 3칸의 광과 방으로 구성된 행랑채가 있으며, 대문간채는 솟을 대문을 중심으로 곳간, 행랑방,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강릉에서 선교장 다음으로 규모가 큰 집으로 6.25때는 학교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정조 떄 홍국영이 유배된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김윤기네 집은 강릉에서 엄청난 부자였다고 전해진다. 김윤기 가옥에서 보이는 모든 땅이 김윤기네 땅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윤기 가옥 주변에는 공영주차장이 많은데, 김윤기 가문에서 강릉시에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준 곳들이다. 김윤기 가옥 문 앞에는 돌을 깎은 주춧돌이 있다. 옛날에는 주춧돌을 깍는 건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어 진짜 부자들만 주춧돌을 깍아 사용했다고 들었다.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내부를 구경할 수 없느데, 이 날은 운 좋게 집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김윤기 가옥을 떠나 다시 마을로 이동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자란 나무일 것이다.

 

 

 

 

투어의 시작점 근처 한라아파트 부근과 노가니길 동네는 비슷하지만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한라아파트 부근 동네가 먼저 조성되었고, 이후에 노가니길 근처가 조성되어 노가니길 동네의 도로가 좀 더 넓고 격자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시에는 신도시였다. 노가니길 주택가는 과거 태백에서 강릉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낸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노암동의 노암(魯岩)은 노나라노(魯)와 바위암()을 사용한다. 노나라는 공자가 살던 나라였다. 노암동은 공자가 태어난 곳과 물길 방향이 같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변에 조성 당시 유명 학군이 있어서 동네 이름이 노암동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구축 아파트가 되었지만, 한라아파트가 처음 입주했을 때는 당시 최고 시설의 아파트였을 것이다.

 

 

 

 

이 동네는 옛날 새마을 운동할 때 만들어진 마을로 동네 이름이 부흥마을이 되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곳은 예전에 슈퍼가 있었던 자리이다. 평상 같은 곳에 동네 사람들이 앉아 수다를 떨었다고 이야기 했다. 투어에 참여했던 참가자의 할머니가 과거 근처에 살아 이곳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는건 좀 슬프다.

 

 

 

 

노암동에는 요즘에는 좀 처럼 보기 힘든 우물도 있었다. 요즘에는 상하수도가 잘 되어있어 실제 이용하는 것 같진 않았다.

 

 

 

 

짜투리 공간을 이용해 대파를 심었다. 이런걸 보면 참 귀여우면서 뭉클하다.

 

 

 

 

강릉의 또 다른 부자라고 알려져있는 최근배 가옥(강릉 동은 고택)에 도착했다. 기와집, 부자들이 살던 집 말고 일반 사람들이 살던 집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몇몇은 좀 남겨뒀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강릉 동은 고택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5호

강릉 동은 고택은 1916년에 지어졌다. 주위보다 조금 높은 산등성이에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튼 ㅁ자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사괴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있으며, 전면 5칸, 측면 2칸이고, 겹도리*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좌측에 다락이 달린 부엌이 있고, 이어서 앞쪽에는 툇마루가 붙어 있는 안방과 방 2칸이 있으며, 뒤쪽에는 뒷방과 마루 2칸이 있다. 안채 마루는 여자들이 여름철에 주로 사용하는 곳으로 사랑채에서의 시선을 차단하고 사랑채와 독립되게 뒤편에 두었다. 사랑채는 행랑방과 사랑방, 사랑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방에는 벽장과 신발장이 있다. 행랑방은 일꾼들이 거쳐하던 곳이며 사랑대청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우방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마당에는 곳간채 등이 있다. 이 가옥은 단아하고 소박하며,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근대적인 요소가 첨가되어 나타나 있다.

 

 

 

 

멧돌이 있던 자리. 요즘 아이들은 멧돌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투어의 마지막 장소 노암터널에 도착했다. 노암터널은 원래 기차가 다니던 터널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강릉선 KTX가 개통됐다. KTX 철로 공사를 하며 기존 지상으로 깔려있던 강릉시내 철로를 지화화했고, 원래있던 철길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처음 계획에서는 강릉역이 기존 위치가 아닌 강릉시 외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강릉시민들의 반발로 기차가 원래 강릉역이 있던 시내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의 접근성 좋은 강릉역이 탄생하게 되었다. 만약 강릉역이 지금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생겼다면 지금과 같은 강릉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노암터널의 길이가 짧아 끝에서 끝이 보인다. 그래서 다른 터널과는 달리 별로 무섭지 않다. 저녁과 주말에는 운동이나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이 많다.

 

 

 

 

 

 

 

노암터널은 월화거리까지 이어져있다. 월화거리 가는길에 만난 멋진 한옥.

 

 

 

 

꽃댕강나무가 심어져있다.

 

 

 

 

월화정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면 중앙시장으로 갈 수 있다. 월화정에는 설화가 있다. 옛날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강릉으로 발령 온 무월랑이 있었다. 무월랑은 강릉에서 살면서 연화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무월랑은 다시 경주로 돌아가야 했고 연화와 헤어진다. 무월랑이 경주로 떠난 뒤, 연화는 잉어에게 무월랑에 대한 그리움을 쓴 편지를 건넨다. 그리고 몇 일 뒤,  경주에서 잉어를 발견한 무월랑이 연화가 쓴 편지를 발견하고 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월화정 설화, 강릉시청

https://www.gn.go.kr/www/contents.do?key=1690 

 

월화정 설화 - 강릉시청

<!-- 다시 시작되는 천년의 사랑 "천년 전 '무월랑'과 '연화'의 사랑은 월화거리에서 지금 당신과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시작된다." 등장인물 소개 연화 신라시대 강릉 토호의 딸, 17세 연화 대학생

www.gn.go.kr

 

 

 

 

 

 

강릉 사람들이 잠수교라고 부르는 곳이다. 노암동에서 강릉 시내로 넘어갈 때 이 다리를 건넌다.

 

앞에서 무월랑과 연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는건데... 강다방 이야기공장에는 익명 편지 펜팔 보내기와 1년 후 가는 편지를 쓸 수 있다. 물론 다들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머쓱머쓱)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강다방 이야기공장 홍보로 끝나는 건축과 삶 투어 노암동편 끝!

 

 

 

+ 강릉 건축사 투어와 관련된 더 많은 글들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의 중심에서 만나는 1,000년 건축사

https://kangdbang.tistory.com/955

 

[명주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kangdbang.tistory.com

 

 

[옥천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랜드마크의 도시 옥천동 일대

https://kangdbang.tistory.com/956

 

[옥천동]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옥천동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kangdbang.tistory.com

 

 

[주문진]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등대 주위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삶의 터

https://kangdbang.tistory.com/969

 

[주문진]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주문진편] 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kangdbang.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