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동네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1년 가을, 강릉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강다방도 건축과 삶 투어에 참여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몇 달이 지난 시점이고, 골목을 걸으며 구두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강릉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투어를 직접 참여하는 것도 추천한다.
[신청안내-꿈꾸는 사임당 예술터] 건축투어 참여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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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강릉지역건축사와 함께 걷는 건축과 삶 투어
강릉의 중심에서 만나는 1,000년 건축사
명주동 - 건축사무소 예인 최이선 건축사
명주동 투어의 시작점은 명주예술마당이다. 명주예술마당은 강릉문화재단이 있는 건물로 과거에는 명주초등학교로 사용됐다. 그러나 원도심의 쇠퇴와 학생수의 감소로 학교가 폐교되었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재는 전시와 공연, 교육 등이 이뤄지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명주예술마당 하얀색 부분이 본래 초등학교 건물이다. 2층 한 편에는 옛날 명주초등학교 물건과 사진들도 볼 수 있게 전시해놓았다.
2021 건축사투어-명주동 지도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dDnn6M28BbtSqSL-SkTJ_UtROVP8WmFr&ll=37.75071022761902%2C128.8923845574097&z=16
통일신라시대 강릉의 이름은 명주(溟州)였다. 명주동에는 통일신라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명주동은 1940년대에 도시계획이 이루어졌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는데 그래서 명주동에는 일본풍의 건물(적산가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명주동에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시청 역할을 했던 관아도 위치해있다. 서울로 치면 경복궁 옆 동네 서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명주예술마당, 강릉문화재단
https://www.gncaf.or.kr/contents.asp?page=340
명주동, 강릉관광
https://www.gn.go.kr/tour/sub01_02_02.do
명주예술마당에서 나와 삼거리 식당 앞으로 갔다. 삼거리 식당 옆 골목길로 과거에는 개울이 흘렀으나 현재는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 개울은 성산에서부터 흘러 이곳까지 이어졌다. 골목에 있는 담벼락에는 옛날 물이 흘렀던걸 보여주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명주도이 개발 된 후 만들어진 강릉의 또 다른 원도심 포남동은 1980년대 이후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80년대 이후 건축물만 볼 수 있으나, 명주동은 일제강점기와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 건물들이 골고루 섞여있다.
이 골목이 바로 삼거리식당 왼편 길이다. 이 길을 따라 물이 흘렀다고 전해진다.
삼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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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방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지붕. 적산가옥(敵産家屋) 적이 만든, 적이 남겨놓은이라는 뜻이다. 근처 건물들을 보면 나무로 덧대거나 활용한 구조물이 많은데, 옛날에는 나무가 귀하고 건축자재가 부족해 건물을 허물고 남은 자재를 재활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워낙 풍족한 시대가 되었지만 부수는게 일반적인 일이 되었지만, 옛날 사람들은 재료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빨래를 했다고 한다. 물길이 다니던 수로 벽 옆을 그냥 덮어버려 길이 생겼다.
달걀처럼 생긴 열매가 있는 계란 나무
골목골목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명주동 골목은 강릉시 차원에서 엄청 밀고 있는 동네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옛날 스타일의 타일. 기술이 발전해서 오히려 사라지고 퇴화되는 것들이 있다.
강릉읍성 성벽 흔적. 옛날에는 모두가 살기 힘들어서 성벽 위에도 집을 짓고 살았다고... 성벽 돌을 보면 일반적인 화강암과 달리 대체적으로 붉은데 강릉의 돌들은 철분이 많아 붉은 색을 띈다고 했다.
일본식 집을 수리해 운영하고 있는 카페. 강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유명 카페 중 하나다.
오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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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업하지 않고 빈 건물로 닫혀있지만 옛날 이곳은 강릉 지역에서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쌍화탕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강릉의 현황이 오고 갔다고, 강릉시 시장이나 명주군(과거 강릉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군, 현재는 강릉시와 통합됨) 군수 등이 부임하면 이곳에 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청탑다방 근처는 과거 강릉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청탑다방 길 건너 지금의 영동요리제과제빵학원 건물은 과거 강릉극장 자리였고, 그 옆 건물 대성칼라 사진관 앞은 강원여객 버스가 정차하는 터미널이었다. 지금은 홍제동에 버스터미널이 있지만, 90년대에는 강릉역 옆 교동 (지금의 구터미널 주차장)에 버스터미널이, 그 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각 운수회사마다 터미널이 있었다.
현재 대도호부관아 자리에는 90년대 우체국이 있었고, 우체국이 있기 전에는 시민관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다. 지금 한국은행 건물 자리에는 명주군청이, 관아 안쪽에는 교육청과 강릉시청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릉시청 신청사를 짓기 위해 지금의 대도호부관아 자리 땅을 파는데 유물이 나와 시청은 현재 홍제동 쪽으로 이사갔다고 들었다.
모텔 옆에 강릉읍성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다.
칠사당으로 왔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에 있는 건물들 중 칠사당과 임영관 삼문을 빼고는 모두 복원된 건물들이다. 칠사당은 조선시대 농사, 병무, 세금, 재판 등 7가지 업무를 보던 곳으로, 매년 강릉단오제에서 강릉시민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쌀로 막걸리(신주)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로 치면 타종을 치는 종각 같은 느낌이랄까. 칠사당은 일제강점기에는 관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칠사당 지붕 아래를 보면 물고기 모양과 그 위에 연꽃 모양이 있는데, 물고기는 잘 때도 눈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과거 목재로 만든 건물은 화재에 굉장히 취약했는데 연꽃은 불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칠사당 처마 밑을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다. 한옥은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습기에 굉장히 취약하고 저 부분 추녀부터 썩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못이 굉장히 귀하고 비싸서 나무로만 집을 지었다고 했다.
강릉 대도호부관아에서는 매일 문화관광 해설 안내도 진행된다.
강릉 대도호부관아,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203880000&pageNo=1_1_2_0
강릉대도호부관아, 강릉관광
https://www.gn.go.kr/tour/prog/lod/Sights/S0202/sub02_03_03/view.do?cid=8380&orderBy=B&pageIndex=1
콩떡처럼 생긴 돌담벽...
강릉 임영관 삼문은 고려시대 건축 양식이고, 좀 전에 봤던 칠사당은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럼 삼문 바로 뒤에 있는 임영관은 어느 시대의 건축물일까? 정답은 조선시대이다. 삼문과 임영관을 보면 비슷한듯 다른 느낌을 받는다. 삼문은 색칠이 되어있지 않지만 기둥도 높고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여 웅장한데, 이는 고려가 불교 국가였고 이상과 관념을 중요시여겨 건물에도 자연스럽게 그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했다. 삼문은 베흘림 기둥 양식 건물이다.
반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정확히 말하면 현대에 복원된 건물이다) 임영관은 단청이 색칠되어 있어보이지만 삼문보다 더 높이도 낮고, 지붕 아래 조각도 단조로운 편이다. 이는 유교와 성리학, 실증주의가 발달한 조선 시대의 특성이 건축물에도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영관은 과거 학교와 경찰서로 사용되었다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복원되었다. 현재 임영관 자리는 과거 경찰서 자리로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땅을 팠는데 주춧돌이 나와서 현재의 임영관으로 복원되었다. 임영관에 사용되었던 나무는 강릉 남대천 남쪽 남산에 정자로 재활용되었다. 그 만큼 옛날에는 나무가 귀했기 때문이라고...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삼문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건 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릉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인데, 고대사와 비교하여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과 기록은 부족한 것같다. 칠사당이나 임영관, 삼문 등 모두 고대에 관련된 내용은 자세하게 나와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1900년대 후반의 기록은 사실상 전무하다. 언젠가 기억은 사라질텐데 개인의 기억과 추측에 의존해야하는게 아쉬웠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줬음 좋겠다. 그래서 늦게나마 이 글을 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강릉 임영관 삼문,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200510000&pageNo__=5_2_1_0&pageNo=1_1_2_0
+ 강릉시정홍보지 강릉플러스에 중앙동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있어 내용을 추가해본다
50년 전 촬영한 현 강릉대도호부 관아 부근
1. 옛 강릉경찰서 : 1945년 개서 후 1985년 현 포남동 신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
2. 임영관 삼문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 문으로 가우언도 내 건축물 중 유일한 국보다.
3. 옛 강릉시 청사 : 2001년 현 홍제동 신청사로 옮길 때까지 이곳 명주동에 있었다.
4. 옛 강릉우체국 : 1982년까지 이곳에 있다가 1983년 이미 폐관한 바로 옆 시민관 자리까지 확장 신축했고, 이후 2015년 현 포남동 신청사로 이전했다.
5. 옛 시민관 : 1960년대 중반에 개관한 후 1980년대 초까지 각종 행사, 영화 상영, 공연 등 강릉시민의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6. 옛 명주농협(현 NH농협 강릉시지부) : 1960년대 후반 설립된 후 50여 년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7. 임당동 성당 : 50년대 성당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등록문화재 제457호다.
8. 옛 명주군청 : 1978년 교동 청사(현 모루도서관)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1980년 한국은행이 들어섰다.
9. 강원여객 건물과 승하차장 : 1921년 창립 후 1964년 강릉으로 이전했다. 이 건물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다.
출처 : 강릉시청 시정홍보 강릉소식지 강릉플러스 2022년 3월호
https://www.gn.go.kr/www/selectBbsNttList.do?bbsNo=809&key=4668
색은 입혀져있지만 삼문에 비해 비교적 단조롭고 정형화되어 있는 임영관. 건물 자체의 높이도 삼문에 비해 더 작다.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직접 현장에 방문하면 두 건물의 다름이 보인다.
강릉 임영관지,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https://museum.gwnu.ac.kr/museum/25874/subview.do
임영관 뒷문을 나오면 임당성당이 보인다. 임당성당은 195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동일한 시기에 강릉 북쪽 마을 주문진 성당도 함께 지어졌다. 당시에는 강릉 시내보다 주문진이 더 잘 살아서 이곳 임당동 성당보다 주문진 성당이 더 먼저 지어졌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과거에는 강릉 남쪽 옥계에도 성당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시멘트 공장이 있어 옥계도 굉장히 많은 사람이 살던 동네였다. 이렇게 보면 사람도 그렇고 기업도, 도시도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것 같다.
임당동 성당
https://kangdbang.tistory.com/303
임영관 근처는 문화재보전지구로 일정 거리 이내는 2층 이상 건물을 못 짓는다. 그래서인지 낡은 건물들이 많다. 과거 임영관 근처는 관청이 있는 동네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국은행 관사였던 건물. 담벼락이 높았고, 보안이 심해 주변 동네 사람들오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강릉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있는 곳이다.
근처에는 과거 강릉 기상청이 있던 자리도 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차장 한편에는 무인기상대가 계속 운영되고 있다. 주차장 자리에서 서쪽을 보면 태백산맥이 잘 보인다. 기상청이 대전동 과학산업단지로 이전하면서 명주동에 있는 기상 관측장비들도 철거하려고 했으나 과학산업단지는 바다의 기운이 강해 태백산맥에서 넘어오는 기후를 제대로 관측하지 못했고, 서로 다른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그냥 놔뒀다는 이야기도 있다.
강릉시 기상관측소
https://kangdbang.tistory.com/406
마지막 목적지는 용강동 서부시장이다. 용강동 서부시장은 1980년대에 신축된 시장으로 지금의 강릉 중앙시장처럼 지하에서는 수산물을 팔았다. 1층은 소매점, 2층은 술집과 음식점이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빈 상가는 주로 강릉 고등학교 동창회 사무실로 채워져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주상복합 건물이 많이 지어졌는데, 강릉에 있는 서부시장과 동부시장, 중앙시장 모두 이 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용강동 서부시장 일대는 현대차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부시장, 강릉관광
https://www.gn.go.kr/tour/prog/lod/Sights/S0304/sub02_04_05/view.do?cid=8097&orderBy=B&pageIndex=1
강릉시·현대차그룹, 낙후된 서부시장 도시 환경 개선,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00708129100062
서부시장은 여러번 왔었는데 옥상까지 올라갈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다. 서부시장의 매력은 2층 위에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같은 아파트가 나온다!
원래 코스는 아니지만, 출발지였던 명주예술마당으로 돌아가는 길 지금은 사라진 화교 학교도 만났다. 학교는 지금 만물상, 경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통 화교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을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교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초기 화교들은 대만 사람들이다. 화교 학교 입구에는 대만 국기 로고가 그려져 있다. 주변에는 중국 느낌의 지붕 집도 많다. 지금 생각해보니 명주동에는 오래된 중국집이 많은데 화교 학교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어느 때보다 과거, 옛날, 예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 글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통해 강릉의 과거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길, 과거를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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