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내 인생의 마지막 내일로 여행
5일차 : 부산 ▶ 경주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제공되는 간단한 아침을 먹으러 거실로 갔습니다. 식빵과 계란, 주스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다른 방에 묵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했는데, 이미 퇴실한 상태였습니다. 에어비앤비는 편하고 좋지만 혼자 여행 할 때는 심심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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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기차로 전국일주 - 내일로 여행 4일차 목포 ▶ 부산
아침에 보는 부산 시내는 밤에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숙소에서 나와 부산 부전역으로 향합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주입니다.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기차는 비교적 자주 다니기 때문에 근처를 구경하고 경주로 넘어가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서울에서만 볼 수 있었던, 강릉에서는 볼 수 없어던 전동 킥보드가 부산에도 있었습니다.
부전역으로 가는 길 근처에 가볼만한 곳이 있나 검색하다 커피박물관을 발견했습니다. 커피도시 강릉에서 온 여행자답게 커피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거리도 멀지 않았고, 입장료도 무료였습니다. 강릉에서 운영되던 여러 커피박물관들과는 어떤점이 다를지도 궁금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특정 관광지를 찾아 그 지역을 방문했다면, 요즘은 특정 지역을 선택해 주변에 있는 곳들을 즉흥적으로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와 숙소를 정해놓고 그 근처를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식입니다. 그러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공원이 보이면 공원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합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 했던 곳들을 만나서인지 이러한 방법은 꽤나 만족도가 높습니다.
부산커피박물관
* 2020년 7월 기준, 장소 임대 기간 종료로 장기 휴관
커피의 시작
샤리에 (카메룬)
2009년 초중반에 발견된 품종. 프랑스의 앙드레 샤리에가 발견했다고 해서 샤리에라고 불린다. 카메룬에서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카페인이 없다고 한다. 디카페인 커피와는 다르다. 디카페인 커피는 일반 원두에 카페인을 줄이는(대략 98~99%) 과정을 거친 것이고, 샤리에는 아예 처음부터 카페인이 없다.
리베리카 (아프리카)
로부스타와 아라비카에 밀린 품종. 열매 크기는 셋 중엣어 가장 크다. '커피 3대 품종'이니 하는 이론을 이야기 할 때나 등장하지 실제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두 품종에 비해 맛과 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산량이 극히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라비카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고원)
커피벨트 중에서도 해발 800m 이상의 고산지, 고원에서 주로 생산되는 고급 품종 커피를 통틀어 아라비카라고 한다. 고급 품종 치고는 아라비카 품종의 생산량이 전체 60%를 차지한다.
재배 및 증식 기술이 국외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관리되었지만 유럽으로 묘목이 이동하면서 상업적으로 유용한 식물로 인정받았고, 이내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과 그들의 식민지에도 옮겨 재배 되었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일부 커피산지에서는 커피 생두의 등급을 SHB(Strictly Hard Bean), HB(Hard Bean)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로부스타 (동남아시아)
주로 고도가 600m 이하인 낮은 지역에서 나오는 커피들이다ㅣ. 해발이 낮은 지역의 기온이 높아서 커피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 품종을 재배한다. 로부스타(Robusta)의 Robust라는 말 자체가 튼튼하다는 뜻.
카페인 함량이 아라비카에 비해 놓은 편이다. 아라비카는 평균 카페인 함량이 1.2%~1.4%이지만 로부스타는 평균 2.0~2.2%다.
로부스타는 재배가 쉽고 대량 수확이 가능해 생산원가가 저렴하며, 커피의 질감이 좋다. 하지만 맛이 쓰고 향도 밋밋해 설탕을 감미하여 쓴맛을 감소 시켜 인스턴트 커피로 즐기기도 한다.
아라부스타 (남아메리카, 교배종)
부드러운 맛과 향을 가지는 아라비카와 높은 생산량과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의 장점만을 모아서 교배시킨 교배종이다. 이렇게 재배된 아라부스타는 커피의 품질과 병충해에 대한 저항 개선은 물론 가뭄에 대한 저항성까지 가진다고 한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출입문은 닫혀있었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운영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문 열기 몇 분 전이었습니다. 운영시간 확인해보길 잘했습니다. 박물관이 문을 열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합니다.
부산 커피박물관 윗층에는 앉아서 햇볕을 쬘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의자와 초록초록한 바닥, 천막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강다방 게스트하우스도 나중에 옥상이나 마당이 생긴다면 저런식으로 꾸며봐야겠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햇볕을 쬐니 참 좋았습니다.
강릉에 있는 커피박물관과 비교하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별도의 입장료가 없어 누구나 부담없이 방문 할 수 있었고, 전시품과 설명 등도 알찼습니다. 부산 커피박물관은 2020년 7월부터 임대 장소 계약 만료로 장기 휴관 중인데 하루 빨리 다시 재개관하여 운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커피의 역사
한국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인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커피가 시작된다. 일년간의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한 고종은 커피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달달하면서도 쓴 커피에 고종은 매료되었다. 당시 커피는 뜨거운 물에 커피가루와 설탕을 넣어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커피는 한국으로 들어와 고종 등 소수의 사람들이 서양고전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다과를 즐기게 되었다.
이후 1930년대는 원두커피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퍼졌으며, 1950년부터는 명동 중심으로 인스턴트 커피와 국산차 등을 주로 '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지하실이나 건물의 2층 등 여러 공간이 개설되었다.
여러가지 방향으로 한국 커피는 진화하다 1970년대 초반 '동서식품'에 의해서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다. 외국에선 원두커피가 주종을 이루었지만 편의성과 마케팅에 의해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커피를 볶는 요리사들, 로스터
커피를 볶는다는건 요리와 같고, 요리사들의 고민은 로스터들의 고민과도 같다. 수십가지의 성분을 가진 생두를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불을 이용한 로스팅이나 열을 이용한 로스팅이나 이 두가지를 합친 방법의 로스팅 중 가장 좋은 로스팅 방법을 찾는 노력의 시작은 수백년전부터 시작되었다.
1. 반열풍식
버너의 위치는 직화식과 비슷하지만 전도와 복사, 열풍까지 모두 이용하여 실린더에 열이 전달되는 방식.
장점 전도와 복사, 열풍까지 열을 고루 사용할 수 있어 고른 로스팅이 가능하며 기기 다루기 쉽다.
실제 계측기로 측정해 보면 다른 로스터에 비해 콩의 로스팅 정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콩 각각의 고유 개성을 살리는 로스팅이 어려우며 뚜렷한 향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2. 직화식
그물망처럼 구멍이 뚤린 실린더에 직접적인 불이 전달되는 방식.
직화식은 직접적인 열에 의해서 콩을 볶기 때문에 능숙하지 않은 로스터에겐 꺼려지는 로스터이다.
확실한 향미와 개성이 나타나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불균일한 로스팅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로스터이다.
3. 열풍식
드럼 주위의 전도와 복사, 열풍을 이용해 콩을 익히는 방식.
주로 대류를 이용해 열을 콩에 전달하기 때문에 콩 전체에 열을 전달하기 용이하며 고른 로스팅이 가능하다.
공기의 흐름과 함께 이물질이나 실버스킨이 같이 빠져나가 좀 더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대기를 데우기 때문에 당장 버너를 끄더라도 대기의 열이 내려가기까지 수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불끄는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몇몇 박물관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한데 부산 커피박물관에서는 자유롭게 사진 촬영이 가능해서 더 좋았습니다.
커피의 어원
커피(Coffee)는 커피콩을 볶아 가루로 만든 것을 물이나 증기로 우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음료이다. 전설에 따르면 늦어도 9세기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랍어 'Qahwah'는 포도주라는 의미도 있다. 이는 커피에 들어있는 성분이 와인(포도주)와 유사한 각성효과가 있어 이렇게 붙여졌따고 한다 가화(Gahwah) 또는 카화(Qahwah)라고 불리우다 유럽 등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각자 그들의 언어로 바뀌어 갔다.
한국어 단어 '커피'는 영어에서 유래된 말이며 한자로 가배라고 쓰고, 서양에서 들어온 탕약이라는 뜻으로 '양탕국'등으로 불리었다.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는 표현 'Coffee Break'는 1952년, '커피포트'라는 용어는 1705년에 처음 쓰였다.
부산 커피박물관 관람을 마치고나니 커피 한 잔이 간절하게 생각났습니다. 아쉽지만 커피박물관 내에서는 커피를 판매하지 않았고, 커피박물관에 계시는 관장님께 근처 카페를 추천 받았습니다.
카페 가는 길에 만난 곰돌이 인형.
커피박물관 근처에는 카페 거리가 있었고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 카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페를 선택한 이유는 크지 않은 특색있는 작은 카페였고, 무엇보다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인테리어의 완성은 고양이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이브브류어리 역시 강다방 게스트하우스처럼 간판이 없었습니다. 간판 없이 운영하는 곳은 내공이 대단한 곳들입니다 (자화자찬입니다)
가끔 만나도 아무말 없이도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에는 기쁘고 즐거울 때가 있는가 하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다. 즐겁고 행복할 때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는 하루가 일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행복과 고통은 원래 한쌍이다. 신은 공평해서 고통 뒤에는 언제나 행복이 따라오게 만들었다.
사장님께서 전기를 공부하셨는지, 내부 전기 배선이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잘 정리 되어있었습니다. 전선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차마 전선을 만지지 못 했습니다. 겁이 많은 강다방입니다.
드디어 나온 커피. 나이브브류어스에서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에 대한 정보를 커피와 함께 건네줬습니다. 어느 나라의 커피인지, 어느 지역 어느 농장에서 재배된 커피인지, 해발고도와 가공방법, 맛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좋았습니다.
커피를 마신 뒤, 이번에는 카페 사장님께 밥집을 추천 받아 주변 밥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목적지 근처에 있던 수수하지만 굉장해! 맛집인지 가게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다방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였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목적지. 이곳 역시 지역 주민들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일락말락 작은 간판 하나만이 있었습니다. 가게 안은 지역 직장인,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수제 등심 돈까스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4,500원이었고 맛도 괜찮았습니다. 주변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찾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밥은 특이하게 돈까스 한 편에 함께 주거나 공기밥으로 주지 않고 접시에 얇게 펴서 제공되었습니다.
밥을 먹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골목길 한편에는 사용을 마치고 버려진 밥솥이 있었습니다. 모양을 보니 폭발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쓰임을 다하고 폭발해버린 밥통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합니다.
부산 전포 커피 거리에 왔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강릉 커피거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부산의 도로는 운전을 안하는 보행자가 느끼기에도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다들 너무 급하고 거칠게 운전하는게 느껴졌습니다. 부산에서는 오토바이가 횡단보도로 다녔고, 오토바이가 사람을 피해가는게 아닌 사람이 오토바이를 피해가야 했습니다. 부산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항상 안전 운전 부탁드립니다.
전포카페거리, 트립어드바이저
www.tripadvisor.co.kr/Attraction_Review-g297884-d15686844-Reviews-Jeonpo_Cafe_Street-Busan.html
알록달록했던 부산 전포 커피거리. 커피거리를 나타내듯 길가에는 커피콩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다가 있는 강릉의 커피거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부산의 겨울은 참 따뜻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번다면 겨울은 따뜻한 남쪽에서 살고 싶습니다.
부산 다음 도시는 경주입니다. 기차를 타러 부전역에 가기 전, 근처에 있는 부산시민공원에 들려 공원 한 바퀴를 걸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부산시민공원은 기억(Memory), 문화(Culture), 즐거움(Pleasure), 자연(Nature), 참여(Participation) 5개 활동주제로 조성되었습니다.
부산의 심장부를 대표하는 새로운 공공 경관과 치유와 침적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축적의 장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최첨단 공원으로 공원조성 면적은 473,911㎡ 이며, 그중 공원 중앙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하야리아 잔디광장 면적은 약 40,000㎡(축구장 6배)입니다.
공원 내에는 97종 85만여 그루(교목 은행나무등 46종 9,937 그루, 관목 43종 844,314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으며 공원역사관, 공원안내소, 부전천(2.5㎞), 전포천(2.5㎞), 분수(4개소), 광장(6개소), 어린이놀이시설(9개소) 등과 주차장(902면),카페(3개소), 편의점(2개소), 화장실(22개소)등의 편의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은 부산 시민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세계적인 명품 공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부산시설공단 홈페이지
부산시민공원,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EB%B6%80%EC%82%B0%EC%8B%9C%EB%AF%BC%EA%B3%B5%EC%9B%90
부산시민공원, 나무위키
namu.wiki/w/%EB%B6%80%EC%82%B0%EC%8B%9C%EB%AF%BC%EA%B3%B5%EC%9B%90
부산시민공원을 지키는 비둘기들. 누구든 비둘기를 건들면 X되는겁니다. 비둘기 무리 사이를 지나 호수 건너편으로 가니 잉어 먹이 자판기가 있었습니다.
보도블럭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있지만, 이미 비둘기들의 공격을 받아 몇몇 패널은 부수어져있었습니다.
흔적극장 (구 명칭 : 영화관)
이 건물은 미군들의 위락과 사병교육을 위해 한국전쟁 시기에 세워진 영화관이었다. 초기에는 '할리데이 영화관(Holiday Theater)'이라 불리다가 1980년대에는 '경마장 영화관(Paddock Theater)이라 불렀다. 미국 현지 개봉 영화들을 직수입해 상영하였다. 영화관 출입이 가능했던 일부 부산 사람들에게는 미국 문화를 접하는 또 하나의 문화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영화관 입구만 남아 있으며 야외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놀이터에 들어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싶었지만, 어린이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놀이터가 넘나 재미있어 보입니다.
향기의 숲
하야리아부대 안에 자라던 가이즈카 향나무를 옮겨 심어 신선한 향기의 숲을 만들었습니다.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향나무 숲을 걸으면서 옛 기억과 함께 휴식을 취해보세요.
칠성사이다에서 설치판 분리수거 통입니다. 분리수거를 하면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 같습니다. 강다방이 있는 동네에도 이런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의 기둥
하야리아 부대 안에 남아있던 나무 전봇대를 재활용하여 태양광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부대의 흔적과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부산 시내 한 가운데 어떻게 넓은 공원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부산시민공원은 미군이 사용하던 하야리아 부대 부지를 반환받아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부대에 있던 건물을 단순히 부수고 철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원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고 재사용한 점이 참 좋았습니다.
마두관세음보살 표시석
마두관세음보살은 마두관음, 마두대사, 마두명왕이라고도 한다. 모습은 말머리를 하고 있는 보살로 사방 마귀를 굴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짐승을 교화하고 다스려 이롭게 한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마소 등 가축의 건강, 안전을 비는 뜻에서 돌에 마두관음을 새기기도 하였다. 이 표지석은 경마대회 때 마주와 기주가 참석하여 말에 대한 위령, 공양제를 올려 병사한 말의 영령을 위로하고 사고나 질병을 피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본 석불은 오래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 안에 있다가 2002년에 문화유적조사 실시를 통해 확인 되었으며 2006년 미군 기지 폐쇄로 부산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민공원 터에 남아있던 표시석
부산시민공원은 해방 후 캠프 하야리아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서면경마장과 일본군 임시군속훈련소가 들어선 자리이다. 이 표지석은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육'자 표지석은 뒷면에 글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일본군 임시 군속훈련소 당시 표시석으로 보인다. 미현지, 사쯔마 표시석은 개항 이후 부산에 진출한 일본인이 범전동 일대에 자신의 땅을 확보한 후 그 경계를 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새겨 세운 것으로 보인다.
'육'자 표시석은 캠프 하야리아 부지 내에 있었느나, 일본인명 표시석은 범전동 본동마을(지금은 공원에 편입) 일대에 돌아다니다 공원 조성 과정에서 주민의 신고로 수집하였다.
공원 한편에는 역사관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역사관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범전리 일대의 농지는 대부분 일본인 자본가의 손에 들어갔다. 1920년대 일본의 경기호황에 따른 위락시설의 하나로 1930년에 준공된 서면경마장은 일본인 중산층의 오락활성화, 마권 수익, 조선총독부의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건리뵈었다. 한편 일제는 필요한 경우 경마장을 군용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이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에 따른 기마부대 설치, 1941년 태평양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제72병참경비대 설치, 1942년 임시군속훈련소 설치 등을 통해 잘 나타난다. 그후 해방이 될떄까지 이 부지는 군수품 야적장으로 쓰였다.
잃어버린 땅, 잃어버린 기억
일제강점기 1910-1945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의 자원, 수탈당했던 것들이 지도에 그려져있습니다.
도아형세도해
소화 12년(1937)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의 부록으로 제작된 지도로 동아시아 각국의 군비 상태와 주요 생산물, 특산물 등이 표시
주한미군기지 현황
Restricted Area
No Trespassing
제한구역 접근엄금
미군주둔기 1945-2006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선언과 함께 점령군의 자격으로 한국에 입성한 미군은 38선을 경계로 남한 지역의 군정을 실시하였다. 한국 사람들은 외모와 언어 그리고 문화가 전혀 다른 낯선 이방인들을 해방군으로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친일파 척결, 식량 및 경제정책, 신탁통치 방안 등 현안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였고, 결국 한국 문제가 UN에 상정되어 1948년 남한 단독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하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미군은 연합국으로 다시 참전하였고 부산기지사령부 '캠프 하야리아'를 설치파여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하야리아와 부산의 공존은 1945년 주둔 이후 2006년 기지 폐쇄까지 60년간 지속되었다. 캠프 하야리아는 군사기능 수행을 위한 독립적 공간이었으나 부산과 오랜 세월 애환을 같이 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역할도 했다.
부산시민공원 안에는 호수도 있었습니다. 서울 용산과 인천 부평에도 최근 반환되는 미군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을 잘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관을 나와 기차를 타러 부전역으로 향합니다.
다시 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목적지 경주로 가는 기차를 탑니다.
부산에는 수도권 지하철에서는 보지 못한 진한 파랑색 전철이 있었습니다.
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대학생이였을 때 경주역에 와본적이 있었는데 크게 바뀐게 없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우선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갔습니다.
오늘 숙소는 경주 시내에 위치한 두바퀴게스트하우스입니다. 가격이 저렴했고, 고양이가 있다는 말에 냉킁 예약했습니다.
두바퀴게스트하우스 1층에는 안내와 부엌이 있고 지하1층으로 나려가면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공용 공간이 있었습니다. 공용공간에는 책과 쇼파도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다소 시설이 낙후되었다고 느낄수도 있지만, 두바퀴게스트하우스는 7일간의 내일로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좋았던 숙소였습니다. 게스트하우스 본질에 충실한, 제가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된 이유를 다시금 떠오르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돈이 되진 않겠지만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갑니다. 근처 경주중앙시장에 갔지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경주는 관광지라 그런지 생각보다 먹을 만한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혼자 밥먹을 수 있는 곳이 1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저녁은 면요리 .잔치국수와 만두 세트를 시켰습니다. 세트로 시키면 저렴할 줄 알았는데 그냥 만두를 시키는 것과 가격이 같았습니다. 국수만으로는 남는게 없어 여러가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메뉴를 추가한 것 같습니다. 이곳처럼 요즘 게스트하우스들도 숙박만으로는 수익이 남지 않아, 파티나 투어 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해 운영 하는 곳이 많습니다.
저녁을 먹고
왕릉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를 볼 때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생각납니다. 경주는 학교 바로 앞에 왕릉이 있었습니다. 왕릉을 보니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묘지를 마을 주변 잘 보이는 곳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은 한 마을에서 공존했는데, 산업화와 도시 개발로 묘지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일상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죽음에 대한 태도
s-space.snu.ac.kr/bitstream/10371/79476/1/11.2.207.pdf
경주에서 뜨고 있다는 황리단길을 방문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밤이라서 잘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실망이 컸습니다. 지역주민들은 다니지 않는 세트장 모형 같았습니다. 몇몇 한옥을 빼면 이곳이 경주인지 서울인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황리단길에서 맘에 드는 공간 하나를 찾았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어서어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 모순 중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일
잊지 않음으로 인해
잊혀지지 않기 위한 일
/ 기록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다면 안되잖니.
어떠한 것들은 평생 너를 붙잡아 둘떄도 있어.
하지만 기억하렴.
우리의 마음과 몸은 한번만 주어진다는 것을.
지금 당장은 슬픔이 넘치고 고통스러울거야.
그걸 무시하지마.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 슬픔을 그대로 느껴보도록 하렴"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황리단길
황남동 포석로 일대의 “황남 큰길” 이라 불리던 골목길로, 전통한옥 스타일의 카페나 식당, 사진관등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의 많이 찾는 곳이다.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은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진 단어로 “황남동의 경리단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황리단길은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이며, 인근의 첨성대, 대릉원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경주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황리단길, 경주문화관광
www.gyeongju.go.kr/tour/page.do?mnu_uid=2490&
경주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의 모든것, 대한민국구석구석
내일이면 이제 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나면 뭘 할지 고민하려고 했는데, 정작 고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사장님과 손님들이 모여 술 한 잔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게스트하우스와 달리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항상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입장에 있다가 손님의 입장이 되어보니, 강다방에 오셨던 손님들도 이런 느낌을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봅니다. 거울이라는 물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타인을 통해서 내 모습이 보이고, 타인에게 하는 말이 결국은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구나 하는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바퀴게스트하우스에 있는 낯가림 심한 고양이 가따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다시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느라 피곤했을텐데, 사장님이 부엌에 나와 사람들을 맞아주시는 걸보고 감동이었고 찡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입장이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기 전 가따의 환심을 사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다음 도시 안동으로 가기 위해 경주역에 갔는데, 기존 강릉역까지 운행되던 부산 부전 출발 무궁화호가 이제 동해역까지만 운행한다는 안내가 붙어있었습니다. 언젠가 강릉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 부전까지 가보려 했는데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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