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내 인생의 마지막 내일로 여행
6일차 : 경주 ▶ 안동
다음날 아침 일찍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안동입니다. 안동은 많이 들어봤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도시입니다. 강다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 많은 분들이 여행지로 안동을 추천해주셨습니다. 특히 많은 외국인들이 강릉 다음 도시로 안동을 선택했고, 강릉에 오기 전 안동을 거쳐왔습니다. 안동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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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기차로 전국일주 - 내일로 여행 5일차 부산 ▶ 경주
기차를 타고 안동역에 도착했습니다. 한자로 크지막하게 적혀있는 안동역 간판이 인상적입니다. 안동역 앞에는 노래 안동역 앞에서 가사를 비석으로 세워놨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안동역에서라는 노래는 꽤 유명한 노래인 것 같습니다.
안동역에서, 나무위키
namu.wiki/w/%EC%95%88%EB%8F%99%EC%97%AD%EC%97%90%EC%84%9C
‘안동역에서’ 국민가요로 떴다, 경북일보
각종 음원차트 1위…역사에응 애틋한 사랑 이야기 ‘벚나무 연리지’도 눈길
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1768
안동역 화장실 문은 안동을 대표하는 하회탈이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을 표시해주고 있습니다.
2020년 3월부터 기존 부산 부전역에서 출발해 강릉까지 오던 무궁화호 기차가 동해역까지만 운행됩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 글을 적으며 알게된 사실인데 안동역은 2020년 12월 운흥동에서 송현동 안동버스터미널 앞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블로그 여행기에서 보는 안동역은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지금은 과거가 된 안동역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안동역,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EC%95%88%EB%8F%99%EC%97%AD
안동역,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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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 옆 관광안내센터에서 내일로 혜택 쿠폰과 안동 주요 관광지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받았습니다. 내일로 이용자가 안동 지역 숙박업소에서 숙박할 경우, 최대 2만원이 할인 됩니다.
안동에서 하루를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고타야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안동 외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고려했으나 다음날 새벽에 기차를 타야해서 안동역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습니다. 안동에서는 1세대(?) 게스트하우스라고 불리는 꽤 유명한 곳입니다. 고타야는 신라시대에 안동의 이름입니다. 지금의 서울이 과거 한양, 강릉이 하슬라로 불렸던 것 처럼 말이죠.
고타야 게스트하우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택이나 모텔 건물이 아닌 원룸/빌라 건물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방마다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고타야 게스트하우스는 도미토리 1인 기준 당시 2만원이 안 되었기 때문에 안동역에서 제공하는 내일로 혜택을 사용해 무료로 하루 숙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입실 시간 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짐을 맡겨 놓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찜닭이나 간고등어도 좋지만 혼자서 먹기에는 부담스러웠고 가격도 비쌌습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시는 직원분의 추천을 받아 동네 사람들이 가는 푸짐하고 가성비 좋은 분식집에 갔습니다. 라면 돈까스 세트를 호로록했습니다. 역시 라면과 돈까스는 후회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안동의 원도심 번화가도 많은 매장들이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지방 읍내의 조건 중 하나인,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롯데리아가 비어있어 놀랐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병산서원입니다. 안동시내에서 병산서원까지 가는 버스는 약 3시간에 1대씩, 하루에 단 3회만 운행됩니다.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까지 1-2시간이 남아 근처 맛집을 검색했습니다. 마침 안동을 대표하는 빵집(?) 맘모스베이커리가 근처에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빵들. 방금 밥을 먹었지만 맛을 보기 위해 빵과 커피를 시켰습니다. 한참을 빵집에서 시간을 보낸 뒤,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이름은 교보생명. 강릉 시내에도 교보생명 건물이 있고, 버스 정류장 이름도 교보생명입니다. 교보생명은 부동산 투자를 잘 하는 기업인 것 같습니다. 도시의 중심가가 어디인지 알고 싶다면 교보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안동 시내버스 246번은 교보생명 건너편 정류장을 출발해 하회마을까지 운행됩니다. 그중 몇몇 버스는 병산서원을 경유해 하회마을로 갑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246번 버스가 나타나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간 멍하니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버스 타려고 2-3시간을 기다렸는데... 다음 버스는 1시간 뒤에 병산서원이 아닌 하회마을까지만 갑니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는 도보로 약 1시간이 걸리고 택시는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안동에서 생각해둔 여행지는 오로지 병산서원 하나였습니다. 병산서원을 포기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고민했는데, 숙소의 입실 가능 시간까지도 약 2시간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급히 계획을 수정해 안동의 다른 관광지를 가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안동 시내가 아닌 외곽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참고로 안동의 면적은 서울의 3배입니다. 카페에 가서 시간을 떼우자니 이미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와 진짜... 안동... 버스 하나로 여행 만족도가, 안동에 대한 호감이 뚝 떨어졌습니다.
안동 버스 246, 나무위키
namu.wiki/w/%EC%95%88%EB%8F%99%20%EB%B2%84%EC%8A%A4%20246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교보생명 맞은편 버스 정류장은 안동 시내버스의 종점/기점과 같은 버스 정류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산서원까지 가는 246번 버스는 버스 시간 전부터 버스 정류장 뒤쪽 도로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 정류장 앞골목에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뒷쪽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버스 기사님은 출발 시간 전 부터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태웠기 때문에 출발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다음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입구에 내려 병산서원까지 걸어가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안동에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았고, 안동에 오더라도 병산서원을 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1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 뒤,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어제 경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세상 참 좁습니다. 아니면 우리나라 여행지가 고만고만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하회마을이 아니라 병산서원이기 때문에,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의 갈림길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병산서원까지는 3.3km입니다. 택시를 불러도 잡히지 않습니다. 지도에서 길찾기를 했을 때, 산을 넘으면 더 가깝다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지만,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고 지난 번 울릉도에서 산을 타다가 조난 당할뻔 한 기억이 떠올라 안전하게 산을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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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으로 가는 길 너머에는 낙동강이 있었습니다. 태백에서 시작된 물은 안동을 거쳐 부산으로 갑니다. 예전에 태백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았던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이 떠올랐습니다. 태백에서 이곳을 거쳐 부산까지 낙동강이 이어진다는게 참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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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관람시간을 오후 6시까지로 알고 출발했는데, 동절기라 5시까지만 운영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거 신이납니다. 1시간을 걸어 병산서원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으면 이번 내일로 여행 중 최악의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영업 종료 시간 전 도착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는 집을 떠나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걸까요...
병산서원을 향해 뛰고 있는데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촉박하지만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옛날 선비들도 이런 풍경을 보며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을 걸었겠죠?
어락정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조선 중기의 효자 안동인 김세상이 지은 정자다. 김세상은 대사간 보백당 김계행의 손자로 풍산현 사지리에 살았다. 그는 이름난 효자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도 집에 오지 않고 3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를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를 하늘이 내린 효자라 불렀다. 이 정자의 당호인 어락은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깎아지는 절벽 위에 잡은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작고 소박한 건물이다.
이제 병산서원까지는 2km만 더 가면 됩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봅니다.
갈길이 먼데 또 다시 펼쳐진 멋진 풍경에 또 다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제 정말 다 왔습니다. 고작 1km 남았습니다.
드디어 500m. 버스에 내려 걸어왔던 길은 허허벌판이라 무서웠는데, 주변에 건물들이 나타나니 안심이 됩니다.
드디어 도착한 병산서원. 병산서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참 멋졌습니다. 버스를 놓치고, 3km가 넘는 길을 걸어오면서 느낀 짜증과 화를 한 순간에 풀리게했습니다. 거기다 해질무렵이라 조명빨까지 버프 받았습니다. 이건 반칙인데... 엉엉 ㅠㅠ
동양화, 수묵화에 나오는 풍경이 직접 눈앞에 있어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한다면 공부가 절로 될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지금 제가 보고 있는 풍경을 봤을 상상을 하니 뭉클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목표로 공부했을까요?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병산서원 홈페이지
병산서원,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EC%95%88%EB%8F%99_%EB%B3%91%EC%82%B0%EC%84%9C%EC%9B%90
만대루
Mandaeru Pavilion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 공간이다. 200여 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Mandaeru is a complex for rest, lectures, and study. It is large enough to accommodate two hundred people. This magnificent building has unique beauty : it is unlike any other Confucian academy. The wooden pillars on the lower floor with natural bends, foundation of natural stones, starcases made of single logs, and crossbeams in the shaep of winding rivers seem to evince the philosopy of the Koreans long ago that even building was part of nature. The nae of this pavilion was derived from a quotation of a poem by Du Fu, a prominent poet of Tan China : 'Blue cliff is goo to see in the evening.' As its name implies, the scenery of the Nakdong River and Mt. Byeongsan from the upper floor of this pavilion is spectacualr.
버스를 놓치고 해질무렵 병산서원에 도착한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병산서원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해질무렵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풍광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잠시 뒤 풍광에 취해 엄청나게 찍은 사진들이 나오니 놀라지마세요.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넋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다 다시 돌아갈 길이 생각났습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숙소까지 밤새 걸어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병산서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이제 없기 때문에 하회마을까지 이동 후 버스를 타야합니다. 옛날 선조들도 짚신을 신고 산과 강을 넘었겠지하며 다시 걸음을 시작합니다.
광영지
Gwangyeongji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물길을 끌어 들여 만든 '천원지방' 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천원지방'은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 원리로 조상들의 우주관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두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심양성을 근본으로 하여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Between Mandaeru and Bokryemun, a pond was made by taking waters from ouside in the shape of 'Cheongwonjibang'. 'Cheongwonjibang' is the traditional principle ancients used to make ponds, showing symbolically their view to the universe. In the middle of a rectangular pond which signifies the earth, there is a round isle which signifies the sky. Though the size of the pond is not large, this is a garden in a seowon for students to make the endless endeavor to their academical success based on 'Susimyangseong' (cultivating one's mind and developing a personality).
병산서원을 떠나려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정원을 마주쳤습니다. 정원 안에 하늘과 땅 우주를 표현하다니. 나중에 제가 집을 지을 일이 있다면 병산서원에 있는 광영지처럼 하늘과 땅을 담은 정원을 만들어야 겠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이끼들
병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과 하회마을의 일부입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한국의 서원
heritage.unesco.or.kr/%ED%95%9C%EA%B5%AD%EC%9D%98-%EC%84%9C%EC%9B%90/
유네스코 홈페이지,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한국의 서원,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C%9D%98_%EC%84%9C%EC%9B%90
안동 하회마을,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EC%95%88%EB%8F%99_%ED%95%98%ED%9A%8C%EB%A7%88%EC%9D%84
하회구곡 (제1곡) 병산
하회구곡의 제1곡 병산은 병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룔(1542~1607)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서원으로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낙동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낙동강 근원 있는 물이 동쪽에서 흘러내리고
병풍바위의 우뚝한 절벽이 그 안을 에워쌌네
구름 낀 병산에 서원 서니 강이 섬처럼 둘러
일곡이라 이름난 터에 버드나무 나부끼누나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 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이고, 입교당의 서쪽 뒤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이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가 있고,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이 있다. 열려 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진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뺴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
Byeongsan Seowon
Byeongsan seowon is a Confucian academy founded in 1575 by Ryu Seong-ryong (1542-1607), a highly esteemed Confucian scholar who served as Prime Minister under King Seonjo, the 14th monarch of Joseon. Ryu Seong-ryong passed away in 1607, and his followers built a shrine here in 1614 to house his tablet to pay tribute to him.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shrine, Byeongsan seowon became a formal Confucian academy with educational facilities for scholarly inquiry and education of the younger generation and a shrine for memorial services. In 1863, King Cheoljong bestowed a hanging board on this seowon inscribed by the king's own hand with the four characters "Byeongsan seowon" Thenceforth known by this name, Byeongsan seowon was one of the royally chartered private academies. In 1871, Daewongun, father of King Gojong, shuttered all but forty-seven private academies across the country. Byeongsan seowon was one of the forty-seven. Bongnyemun gate, the main entrance, leads to Mandaeru pavilion and Ipgyodang, a lecture hall with dormitories called dongjae to the right and seojae to the left. To the rear of dongjae stands Gojiksa, a residence for the academy caretaker. The building to the rear of Ipgyodang to the west is Jangpangak, a storage space for wooden printing blocks and relics. The stairs to the rear of lpgyodang to the east lead to Naesammun, which is the gate to Jondeoksa shrine. To the east of Naesammun is Jeonsacheong, the house where preparations for sacrificial rites are done.Byeongsan seowon is considered a model of architecture from the heyday of Confucian academies. It is well preserved and was built to be in harmony with the beautiful natural surroundings.
안동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하회마을로 가야합니다. 하회마을까지는 고작 4km 밖에 안 됩니다. 하하하. 신납니다.
벌써 100m나 왔습니다. 이제 3.9km 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이 신난다.
오랜만에 흙길을 걸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감이 느껴집니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표시입니다. 해파랑길 길 안내 표시인데 안동에도 해파랑길이 이어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길이 산으로 향하는걸까요... 혹시 모르니 응급상황시 신고할 번호를 찍어둡니다.
점점 더 가파라지는 길. 어느새 화산 중간에 와있습니다.
또 다시 사진 찰칵
심상치 않은 발자국도 보입니다. 호랑이는 아니겠지요...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100%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왜 옛날 사람들이 이곳에 학교를 세웠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낙동강, 안도현
저물녘 나는 낙동강에 나가
보았다, 흰 옷자락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 오래 정든 하늘과 물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 때, 강은
눈앞에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어느 날의 신열처럼 뜨겁게,
어둠이 강의 끝 부분을 지우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번져오고 있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그러나 그물을 빠져 달아난 한 뼘 미끄러운 힘으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치는 은어떼들
나는 놓치고, 내 살아온 만큼 저물어 가는
외로운 세상의 강안에서
문득 피가 따뜻해지는 손을 펼치면
빈 손바닥에 살아 출렁이는 강물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빨리 산 속을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산적이나 호랑이가 나올 것 같습니다. 잠시 온 길을 돌아봅니다.
낙동강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허도령과 하회탈 이야기
먼 옛날, 하회마을에 원인모를 화재가 자주 나고 전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사는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지금의 재앙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12개의 탈을 만들어 그것을 쓰고 신을 즐겁게 하면 재앙이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탈을 만들 때까지 누구도 들여다보게 해서는 안된다."는 금기도 일러주었다.
허도령은 다음 낣루터 탈막을 짓고 금줄을 친 후, 탈을 깎기 싲가하였다. 그러나 허도령을 사모하던 김씨처녀가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 문구멍을 뚫고 탈 깎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되었고, 김씨처녀 또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만들고 있던 "이매" 탈은 턱을 만들지 못한 채 죽음으로 인해 지금까지 터깅 없는 탈로 전해오고 있다.
안동 화산은 붉은색 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옛날 학교다닐 때 저런 돌을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설마... 산이 붉어서 화산은 아닌거겠죠?
드디어 하회 마을이 보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봅니다.
마을 뒷편에 묘지가 있었습니다. 도시가 커지며 묘지는 도시 외곽으로 이동했지만, 과거 삶과 죽음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제 도시에서 죽음은 단정하게 지어진 병원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회마을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제는 책과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초가집을 실제 볼 수 있었습니다.
하회마을
이 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재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형국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들의 집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외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의 놀이인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인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온전히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 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Hahoe Village
Hahoe is the village from which the Ryu family originated and where its members have lived together for 600 years. It is a place where tile-roofed and straw-roofed houses have been quite well preserved for a long time. This village is especially well known as the birth place of Ryu Unryong and Ryu Sengryong. They were brothers: the former was a great Confucian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the latter was prime minister during the period of the Japanese Invasion (from 1592 to 1598) called Imjinwaeran.
The Nakdong River flows around the village in an S shape, which gave the village its name (ha means river and hoe means turning around). Some say Hahoe resembles two connected spirals called taeguek, and others see it as a lotus flower floating on the water, or a boatgliding on the river. Such geographical factors make it a very good place to live, as people thought so since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Mt. Hwa, which originates from the Taebaek and is 327 meters high, is located in the eastern part of the village. Low hills of the mountain are stretched to the western parts of the village. On the highest area of the village stands a 600-year-old zelkova tree. As it is said that the god-dess Samsin resides in it, the tree is called Sam sindang. With the great tree at the center, the houses face the river in various directions, in contrast to most houses in Korea that face south or southeast. Also, a unique characteristic is that straw-roofed houses are placed in a cir-cular form around tile-roofed houses.
Hahoe has conserved the Byeolsingut Mask Dance Play performed by the general public, and the Seonyujulbul Nori-an activity enjoyed by the nobility called yangban, that includes fireworks and riding boats. Many other cultural heritages can also be found here. They clearly show traditional lifestyles and architecture of Koreans.
지금봐도 멋진 대문의 집들입니다.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시내로 나갈 버스 타는 곳을 찾았습니다. 하회마을을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버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주변을 급하게 둘러봤습니다.
하회, 신도청 (안동 246번 버스) 시간표
교보생명 건너편 출발
06:20, 07:30*, 08:50, 10:00, 11:00*, 12:30, 13:20, 14:20*, 15:20, 16:10, 17:20, 18:20
* 병산서원 경유, 하회마을 왕복경유
하회마을 출발
07:20, 08:50, 10:10*, 11:05, 12:35*, 13:40, 14:40, 15:50*, 16:30, 17:15, 18:20, 19:10
* 병산서원 경유, 하회마을 왕복경유
예상 소요 시간
하회마을 > (구)기차역 약 50분
하회마을 > 버스터미널 약 30분
하회마을 > 병산서원 약 10분
하늘이 어두워지고 관광객들이 떠나자 마을에 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하회마을은 고양이 마을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보고 싶습니다.
고양이를 따라가봤습니다. 고양이는 공터 너머로 사라졌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또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고양이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공용공간에는 보드게임과 만화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제공되는 조식도 미리 준비 되어있군요.
늦은 저녁을 먹으러 안동 시내로 나갔습니다. 안동 원도심, 중앙 문화의 거리는 번화가이지만 한산했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의 저녁은 햄버거. 햄버거 집에서 어제 경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하회마을 가는 버스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한 번 더 만났습니다. 신기한 인연입니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 저녁을 먹고 뭔가 하고 싶었지만, 오늘 병산사원까지, 병산서원에서 또 하회마을까지 무리해서 걸었기 때문에 바로 잠에 듭니다. 내일 아침 8시 전에 첫차를 타고 강릉에 가야 합니다. 과연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무사히 강릉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
[여행기] 기차로 전국일주 - 내일로 여행 7일차 안동 ▶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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