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지키고 싶은 세계

강다방 2024. 12. 19. 12:57

 

 

 

 

사진: UnsplashNoah Buscher
 

 

 

지키고 싶은 세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을 연결하고 있다는 안내가 몇 분째 이어졌다. 현재 연결할 수 있는 상담원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기다리겠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버튼을 몇 차례 눌렀다. 곧이어 통화량이 많아 다시 걸어달라는 안내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다음 날 전화해도 상담원과 통화할 수 없었고 나는 통화를 포기했다. 세상은 발전했지만 정작 사람과 통화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온라인으로 포럼을 들었다. 포럼이 시작되자 포스터에서 본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포스터에 있던 사진은 AI로 보정된(이라 쓰고 새롭게 만들어진) 사진이었다. 속았다. 특강을 진행한 강사는 AI를 이용하면 쉽고 빠르게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연이어 등장한 포럼의 강사들은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그리고 중간중간 자신의 쓴 책을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본질이나 가치보다는 기술, 테크닉, 편법을 이야기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에 갔다. 종종 들렸던 푸드코트에 들려 밥을 먹었다. 돈까스와 찌개를 세트로 묶어 저렴하게 팔던 한식집은 대부분 사라졌고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음식점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집으로 가는 길, 종종 들렸던 분식집은 저가 커피 전문점으로, 친구들과 만날 때 약속 장소였던 지하 대형 서점은 다이소와 헬스장으로 바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새벽마다 나갔던 어학원은  임대 문의가 붙어있었다. 해외여행 전, 환전하러 갔던 추억의 은행은 사라져 몇 년째 공실로 방치되어 있었다.

고객센터의 상담원이 사라진 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일 것이다. AI로 생성된 얼굴과 테크닉은 강사가 말한 것 처럼 쉽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겠지. 푸드코트의 많은 한식집이 사라진 건, 한식은 손이 많이 가지만 수익이 남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서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이소와 헬스장으로 바뀐 것도 현 시대 더 우선시 되는 것들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는데 세상은 우리를 자극하고 각성하고 도파민을 뿜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차는 것 같아 슬퍼졌다.


옛날 산업혁명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를 부수며 저항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자동차를 악마의 발명품이라 부르며 무서워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지가 기록되는 사진은 과거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좋든 싫든 세상의 변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사라지는 상담원, AI로 생성된 이미지, 밥 먹을 수 있는 식당 대신 카페로 변해가는 동네 풍경 역시 씁쓸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책방도 마찬가지다. 몇몇 사람들은 책방에서 책 이외의 다른 것을 파는 걸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출판사에서 굿즈를 제작해 끼워 파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책방은 책 이외에도 팔 수 있는 것은 뭐든 판다. 책만 팔아서는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 고객센터, 가짜로 만들어진 사진, 사라진 밥집을 보며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하는 곳은 책이라는 본질 외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것 같아 모순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슬퍼졌다.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하겠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거라 믿고 싶다.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변화 속에서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게 중요한거라고. 마차 대신 등장한 자동차는 사람들을 더 빠르고 편하게 이동시키는 본질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밥집이 사라지고 생긴 카페는 밥 먹을 시간 조차 없는 현대인에게 잠깐의 쉼을 제공하는 역할이,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다른 일에 집중 할 수 있게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 지키고 싶은 의미와 가치, 세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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