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결 글쓰기 모임]
영원할 것 같았던 뜨거운 여름,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
며칠째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목은 타는듯했고 가래 때문인지 잠에든지 몇 분이 지나면 기침이 나와 잠에서 깼다. 뜬눈으로 밤새운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알게 되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 몸에서 열이 나고 가래가 나오는 것은 내 몸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증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욕도 사라졌다. 유일한 낙이 먹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배가 홀쭉 들어갔다. 강제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다. 살과 함께 근육도 함께 빠지고 있어 슬펐다.
해 질 무렵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았다. 이 집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이런 장면은 처음이었다. 해 질 무렵 집에 있는 순간이 몇 없었다. 이리도 아름다운 광경을 지금껏 알지 못했다니 아픈 덕분에 그냥 모르고 지나갔을 주변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아픈 동안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는 우선순위에 밀렸던 일찍 잠들기, 휴식하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순위로 바뀌었다.
3~4주를 쉬지 않고 일했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 있는데 그날도 영업일에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처리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퇴근 후 밤 기차를 타고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늦은 밤 도착해 다음 날 밤 다시 집으로 돌아온 24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다. 몸에게 주는 쉼도 필요했지만, 마음의 쉼이 더 간절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해서였을까 몸에 탈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여러 장소를 들렸다. 특색있던 편집샵은 친절하고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같은 업종으로서 수익을 내고 공간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남 걱정도 팔자, 내 앞길이나 걱정하는 게 맞지만, 다른 곳에 가면 지금 내가 고민하는 질문에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정답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래서 슬펐다.
누군가 이야기해 줬던 독립서점도 다녀왔다. 통로를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사진만 찍고 정작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만지고 펼쳐봐 헤진 책들, 정작 구매할 수 있는 책 재고는 없는 것을 보고 마음이 시렸다. 책방지기는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는 커녕 별도의 공간에서 자기 할 일 하기 바빠 보였다. 나의 모습이 저 모습이겠다 싶어 뜨끔했고 슬펐다.
여행을 통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서일까 여행을 다녀온 뒤 몸이 아팠다. 몸을 회복하는 동안, 책 한 권을 읽었다. 주인공은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묘사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읽고 끝났을텐데, 몸이 아프고 난 뒤여서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죽기 전까지 남은 기간 뭘 할까?
한때 잘나가던 대기업의 정리해고 뉴스를 보았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 동료와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나는 ‘영원한 게 없네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영원할 것처럼 살죠'라고 답했다. 난 그동안 늘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던 게 아닐까. 우리는 무한하지 않은 유한한 존재인데, 나는 하루 24시간을 36시간, 48시간인 것처럼 낭비하며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살았던 것 같다.
영원할 것 같았던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해답을 찾지 못한 여행, 잠시 멈춰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픔, 우리 모두 언젠가 마주하게 될 죽음,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할 것처럼 사는 사람들. 여름의 끝에서 유한한 시간과 삶에 대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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