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헤어질 결심

강다방 2025. 1. 1. 17:15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현재의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일어날 것.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부모님이 계시는, 내가 학교를 다니고 사회초년생 생활을 했던 인천 집에 왔다. 보통은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는데 이번은 차를 몰고 집에 왔다.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기 전, 새해 맞이 방 한켠에 쌓아놓았던 짐을 정리했다. 몇몇 짐은 차에 싣었다.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있던 고등학교 교과서, 졸업하고 난 뒤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전공 교재, 첫 회사 다닐 때 사용하던 그 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휴대용 가습기를 만났다. 당시에는 소중해 모아두었던 신문과 자료들은 시간이 흐르며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정보가 되었다. 그렇게 몇몇은 과감하게 버렸고 몇몇은 내년으로 헤어질 결심을 미뤘다.

책상 한 편에는 8년 전 강릉 이주를 준비하며 보았던 책자들이 꽂혀있었다. 강릉에 정착하지 못하면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놓아둔 짐들이었다. 평소 잊고 지냈던, 8년 전 즈음이 생각났다. 그 때는 강릉에 정착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짐을 그대로 두고 집을 떠났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이사한 집이다. 이사 당일 나는 군 복무중이었고, 우스갯 소리로 휴가 나와도 집이 이사가서 어딘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새하얗던 벽지는 누렇게 변해있었다.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자료들, 누렇게 변한 벽지를 보고 세상은 느리지만 계속해서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강릉에 이주한지 8년차, 책방을 시작한지 4년차로 접어든 시기, 보다 확실히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를 고민해본다.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한 때 아끼고 집착했던 것들로부터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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