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즐거운 나의 집
OOO아파트
기억 속에 존재하는 첫 번째 집이다. 계단식과 복도식이 합쳐져 있는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양쪽에 문이 있었고 문을 열면 복도식 통로가 나왔다. 복도를 따라 두 집이 있었고 복도를 마당같이 사용했다. 요즘 시대에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옆집, 아랫집, 윗집과 교류가 많았다. 그래서 옆집에 놀러 가기도 했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땐 아랫집에서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같은 라인에 같은 반 친구가 있어 자주 그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조금씩 나눠 먹었던 기억도 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냈던 공간.
OO아파트
부모님이 일하시는 곳 근처에 있던 집. 당시 근처에서 가장 큰 대단지 아파트였고 신축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공간이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1-2학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추억 보정 때문일까, 가장 푸른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서였을까 이 집에 머물던 기간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새집, 페인트 냄새를 좋아한다. 아파트 단지 뒤에 산이 있어 심심하면 산을 탔던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렇고 초중고 친구들도 이제는 어렸을 적 동네를 많이 떠났다.
OOOO대학교 기숙사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가서 6개월 살았던 곳이다. 2인 1실이라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 공간을 사용했다. 함께 방을 쓴 친구와 처음에는 서로 생활 패턴이 달라 잘 맞지 않았는데,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굉장히 친해졌다. 복도 사이로 같은 과 사람들이 있어 매일 밤마다 다른 방으로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기숙사 바로 옆에 슈퍼마켓과 운동장이 있어 좋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아침 학생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는 길, 쬐었던 따뜻한 햇볕과 공기가 떠오른다.
OO산 꼭대기 생활관
군 생활을 한 부대가 산 정상에 있었다. 그래서 눈으로 덮인 겨울, 푸른 잎이 나는 봄, 녹음이 짙은 여름, 노랗게 붉게 물든 가을 등 사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살면서 가장 크고 많은 곤충을 본 시기다. 산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야간 근무 서면서 본 반짝이는 야경은 아직도 반짝인다. 가까이서 보면 인생은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이라는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을 할 때 마침 생활관 건물이 새로 지어졌고 당시에는 신문물이었던 전기건조기를 처음 사용해봤던 기억이 난다.
OO아파트
군 생활 중 이사 갔던 집.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집이 이사 가서 어딨는지 모른다는 대답에 서로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중고를 보냈던 집은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이곳은 걸어서 지하철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교통이 좋았다. 근처에 번화가가 있어 약속을 잡을 때도 슬슬 걸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 최근에 옛집에 방문했는데 벽지가 많이 바란 걸 보고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영원한 건 없음을 느꼈다.
OOOOOOOO Place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 지냈던 집. 도심 중앙에서 걸어서 10-15분 되는 곳이었다. 영국 영화를 보면 나오는 전형적인 도심 이층층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옆에 우범지역, 유학생이 가기 꺼려하는 동네 있었다. 그래서 월세가 저렴했다. 방 2개가 있었고, 한 방을 2명이 함께 공유해 사용했다. 한 명과는 대판 싸웠고, 한 명과는 절친이 되어 헤어졌다. 아일랜드는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라 난방은 전기 라디에이터가 전부였는데, 그래서 겨울 아침 벌벌 떨며 우유와 씨리얼을 먹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과 봄을 지냈던 곳. 그래서인지 그때를 떠올리면 쌀쌀함, 우중충한 하늘, 짠한 마음이 든다.
OOO Road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반절을 지날 때쯤, 다른 도시로 이사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가능했지 싶은데, 캐리어와 큰 쇼핑백 2개를 낑낑대며 들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도시를 옮겼다. 서쪽은 동쪽에 비해 날씨가 온화했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머물러서인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따뜻한 기억이 난다. 전원주택 단지였고 집 뒤쪽에 푸른 화단이 있었다. 집 앞에 커다랗고 동그란 나무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예뻐 집을 계약했다. 종종 바닷가를 산책했던 기억이 있다.
OOO 2층 왼쪽 집
게스트하우스를 하려고 구했던 집. 오래된 집이라 강추위에 수도가 종종 얼었다. 수도가 얼면 근처 대학교 화장실에 가서 세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고 그래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사건사고도 많았다. 불이 나서 소화기를 사용해 보기도, 벽에 붙어있는 세면대가 깨지기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도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생 참 많이 했다 싶은 추억이다. 그래도 그 집 덕분에 지금 강릉에 정착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애틋한 기분이 든다.
OO빌 원룸
대학 근처 신도시에 있는 원룸. 이전에 살던 집은 오래된 집이라 단열이 제대로 안 되어 추웠는데, 이 집은 비교적 최근 지어진 건물이라 따뜻해 좋았다. 이전 집은 공간이 커서 방 위주로 난방 했고 샤워하고 방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나 춥게 느껴졌다. 근데 이 집은 원룸이라 샤워하고 나와도 전혀 춥지가 않았다. 주변 건물도 깨끗하고 동네 분위기도 젊어 이사 온 몇 주는 집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근데 행복은 무뎌지는 것이라 그런지 몇 주 지나니 익숙해졌다. 따뜻한 물과 난방이 심야전기를 사용해 신기했다.
OOO
기존에 살던 집 계약을 더 연장할까 말까 고민하다 변화를 선택하며 이사 온 집. 고쳐야 할 것 투성이다. 내 소유의 집이 아니기에 고치는 게 의미 있는 일일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지금의 경험이 도움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얼마나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사이 사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이 집을 떠올릴 때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좋은 추억 많이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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