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감정을 파는 소년, 김수정
사랑과 행복, 슬픔과 증오 등 감정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신림동 어느 주택가 골목 끝, 감정을 사고파는 수상한 가게가 있는데... 단편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쉽게 읽을 수 있고, 다 읽고 나면 이야기가 다시 하나로 이어져 색다른 재미가 있다. 표지에 청소년 소설이라고 적혀있는데, 어른들이 읽어도 재밌고 훌륭한 소설이다. <감정을 파는 소년>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후속작 <기회를 파는 소녀>도 읽어보자. 엄청난 복선이 숨어있다.
제목 : 감정을 파는 소년
저자 : 김수정
펴낸곳 : 행복한나무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92쪽
크기 : 150x210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1년 12월 25일
ISBN : 979-11-88758-40-1 (43810)
가게로 돌아온 민성은 한참 유리병에 담긴 행복을 바라보았다.
"다른 감정들은 전부 색이 있는데, 어떻게 행복은 아무런 색이 없지?"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빛은 섞으면 섞을수록 흰색이 되잖아. 감정도 마찬가지인 거겠지.”
"희로애락이 전부 섞이면 물처럼 투명해진다?"
"나도 행복을 추출한 건 처음이라 이건 보관 방법조차 모르겠어."
"그냥 실온에 두면 되는 거 아냐?”
"일단 당분간 지켜봐야겠어."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민성은 가게를 열지 않았다. 아니 출근은 했으나, 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민성은 매일같이 가게에 나와 한참 공을 들여 행복을 분석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행복에는 희로애락이 전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연우 누나의 슬픔처럼 분리가 쉽지 않았다. 민성이 어떻게든 감정을 분리하려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그것은 한 움큼의 또 다른...
늘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건 정우의 몫이었다. 민성은 이번에도 손님을 한 번 흘끗 쳐다만 본 뒤 다시 묵묵히 컵을 닦았다.
“여그서 내 행복을 좀 팔려고 하는디.......”
"행복이요?"
행복을 팔러 온 손님의 방문은 개업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정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을....... 저희가 매입 할 수는 있는데............. 아니 굳이 왜 행복을.......”
컵을 다 닦은 민성은 바테이블로 다가가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저희 엔지니어한테 할머니 손을 좀 내밀어 주시겠어요?"
"이렇게 하면 되는겨?"
할머니는 쭈글쭈글한 손을 민성에게 내밀었다. 민성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행복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민성은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랐다. 동네 놀이터에서 또래 꼬마들이 모래성을 쌓으며 노는 것을 발견한 민성은 자신도 함께 그 무리에 끼어 놀고 싶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래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을 본 민성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모래 대신 다른 걸 옮겨 버렸다. 그렇게 민성과 어울렸던 아이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듯 감정이 바뀌어 버리자 어른들은 민성과 자신의 아이들을 철저하게 격리하기 시작했다. 곧 동네 사람들은 민성을 '재수 없는 아이'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성은 동네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었지만 그 영문을 알 수 없었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옮기던 '그것'을 더 이상 함부로 옮기면...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배우로서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2~3년간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고, 어느덧 내 나이도 서른 중반이 되었다. 대중들에게 잊힐까 조금씩 두려웠던 나는 다시 오디션이라도 봐야 하나 싶었지만, 차마 주연급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함께 작품을 했던 감독님으로부터 드라마 제의를 받게 되었는데, 제안받은 역할이 처음엔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미혼모 역할이 들어온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나에게 애 엄마 역을 하라니...... 순간 너무나 울컥했다. 공백기의 배우에게 작품 제안이 얼마나 큰 호의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배우의 정점을 찍고 꺾이는 순간이 바로 오늘인 것만 같았다. 그 비참함은 이루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해당 배역을 맡게 되면 이제 다시는 로맨스 드라마를 찍을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했다. 물론 서른다섯의 나이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20대 시절에 머물러 있었고...
전들 저보다 잘 풀리는 사람들과 굳이 비교해 가며 제 자신을 깎아내리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저는 저보다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졸한 우월감을, 저보다 매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겁한 열등감을 갖는 것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노량진 고시촌의 가파른 언덕길은 상도동으로 이어집니다. 상도동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지나 또 하염없이 걷다 보면 국사봉 터널이 나와요. 차를 타고 지나갈 땐 터널 입구에서 출구까지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똑같은 길이의 터널을 걸어서 지나가려면 출구가 한 참이나 아마득하게 느껴집니다. 터널이 마치 지금의 제 인생 같았어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노량진을 벗어난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신림동 고시촌이었죠.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량진보다 더 우울한 곳이었어요. 하지만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사시생들이 대거 빠졌고, 오히려 노량진의 공시생들이 이곳으로 넘어...
저는 현재 3년째 노량진 고시촌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1년은 부모님이 지원을 해 주셨기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하반기 1차 필기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죠. 문제는 2차 체력테스트였는데 30:1의 경쟁률을 뚫고 필기시험에 통과했음에도 5:1의 체력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과락이 나오지 않는 한 체력 테스트에만 붙으면 3차 면접은 대부분 붙는다고 봐도 무방한 시험에서 아쉽게 떨어진 거예요.
첫해에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던 저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 2년 차에는 알바를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독서실 총무 알바는 공부도 하면서 한 달에 40만 원가량을 벌 수 있기에 많은 공시생들이 선호하는 일...
사랑이 없는데도 7년이나 맞고 살았다는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정우가 짜장면 그릇을 내놓기 위해 가게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웬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눈엔 피멍이, 왼쪽 입술은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여자는 정우를 지나쳐 가게로 들어오며 민성에게 말했다.
"지난번엔 엔지니어분이 추출할 사랑이 없다고 절 집으로 돌려보내셨잖아요. 그사이 전 또 이렇게 됐어요."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 난 피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굴이 퉁퉁 부은 손님은 다름 아닌 재희 씨였다.
"손님은 남자 친구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사랑을 매입 할 수 없었던 거구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저는 왜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하는 거죠?"
"그건 정 때문이에요. 정이라는 건 감정보다는 기억에 가까워요."
7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모든 일상을 공유한 재희 씨의 남자 친구는 이미 그녀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녀는 연인보다 가족과 친구를...
내일은 오랜만에 늦잠을 잘 예정이라 알람은 맞추지 않아도될 것 같았다.
"우리가 쓸모없는 감정을 매입해 줬으니 앞으로는 잘 살겠지?"
손님이 돌아간 바테이블을 마른행주로 닦던 정우가 혼잣말인 양 민성에게 물었다. 아마도 정우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이 어디 있어. 저 여자는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을 겪게 될 거야. 어쩌면 벌써 소중한 무언가를 놓쳤을 수도 있고."
"야, 그렇게 생각할 거면 넌 도대체 이 장사 왜 하냐?"
"그건......."
그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듯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여기가......"
늦은 밤, 두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강원도 강릉시 용지로 162 (옥천동 305-1)
이야기를 팝니다
강릉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독립서점, 헌책방, 출판사, 편지, 기념품 가게
'강다방 이야기공장 > 입점 도서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립출판물, 시집] 우리의 밥이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리 (1) | 2023.09.04 |
---|---|
[독립출판물] 자유청춘예금통장, 김채윤, 이현석, 오지혜 (0) | 2023.09.03 |
[소설] 여름의 한가운데, 주얼 (0) | 2023.08.13 |
[소설] 어스, 이종혁 홍은화 양단우 주얼 본본 (0) | 2023.08.11 |
[취미, 예술] 업사이클링 도감, 이자까야 (0) | 2023.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