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오늘도 하나 배웠네요, 장민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이 좋았던 책. 젊은 시절 술과 게임에 치열했던 작가는 나이가 들며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강다방은 모르는(?), 학교 교실 컴퓨터 모니터가 책상 속에 있던 세대의 연륜이 담긴(?) 일상 기록과 인생살이 비법이 담겨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답으로 가득찬 우리 인생이지만, 조금은 더 여유로워진다. 오늘도 하나 배웠으면 된 거지...
제목 : 오늘도 하나 배웠네요
저자 : 장민지
펴낸곳 : 풀고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54쪽
크기 : 110x180mm
가격 : 13,000원
발행일 : 2023년 3월 10일
ISBN : 979-11-982111-0-1 (03810)
먹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좋아하는 나물을 무치고, 찌개를 끓였다. 어느 날은 반찬이 짜고, 어느 날은 밥이 질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먹였다.
가끔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배달시키지 않 고중국집을 갔다. 최소 주문금액 때문에 불필요하 게 시키던 탕수육이나 군만두를 시키지 않고 온전히 짜장면 한그릇만 먹고 집에 왔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중국 음식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해보면 짜장면, 햄버거, 치킨, 돈까스가 잘 못한 건 없고, 미련하게 먹은 내 죄가 제일 크다. 역시 떡볶이는 살이 안 찌지, 살은 매일 시켜 먹는 내가 찌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양질의 식사였다. 내 눈과 손으로 고르는 식재료...
모르는 사람이 명품백을 들고 찍은 사진 한 장에 시선이 사로잡혀 부러워했다. 건너 아는 사람의 팔로우수가 몇 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비결이 궁금해지고, 그 몇 만명을 가진 기분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끄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신상 카페나 오마카세 식당 방문기를 보고 막연하게 나도 가고 싶다 같은 의미 없는 갈망만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자정이 넘어 있었다. 나의 하루는 내 이야기가 아닌 무성의한 갈망만이 가득했다.
'나의 개성'에는 남다른 애정 같은 것이 있다. '나답게 사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삶의 태도이기도 한데, 그 태도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함몰되고 있었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 잠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올려야 하는 내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마음이 좁아질 때가 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마음의 문이 좁아져서 내 마음을 꺼내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기도 힘들어지는 시기가 온다. 나는 가끔 타인이 버거워진다. 부대끼는 감정들 사이에서 '쟤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예민함이 올라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가야한다. 좋은 사람들과 다같이 떠나는 여행도 물론 즐겁지만, 삐뚤어진 나를 내가 챙겨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은 좁아진 마음의 문을 여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럼 가끔 다른 포장마차에 가면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산에 가서 만난 호탕한 아저씨 얘기를 해주고 술을 마신다. (이름도 모르는 그 아저씨가 늘 건강하기를 빈다. 취기에 계산을 다 했다고 착각했지만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아저씨가 내 몫까지 계산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여행의 묘미는 내 일상의 타인에 게서 벗어나고 싶어 떠나온 여행지에서 부지불식 간에 내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넘어오는 타인들이다.
혼자가면 외로울 것 같다고 묻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음이 좁아지고 심기가 예민할 때는 혼자 멍하니 바다를 보거나, 산책길을 걸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그리고 혼자서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다 보면 엉클어진 수많은 관계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 든다. 이 순간에는 오로지 내 의견이 제일 중요하게 된다. 그렇게 혼자 떠나 오면 마음의 문 틈이 서서히 벌어진다. 그럼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 외로워진다. 다시 일상으로, 수많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삶의 다양한 관계가 부대끼는 이들에게 혼자 여행을 추천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삶을...
일기는 현재 나의 욕구와 감정과 상태를 훤히 알려주는 쇼핑몰 장바구니 같은 것이다. 장바구니에 담는 것만으로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삶의 포커스가 어긋나서 하루하루가 고통이라면 일기를 쓰고, 읽고, 행동할 것.
글을 쓴다는 것을 떠나 어쨌든 책을 읽는 것은 행복을 공짜로 사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으니 34년을 살아도 얻을 수 없는 삶의 정답을 책 한권으로 만나는 셈이다. 비 쫄딱 맞은 강아지 마냥 웅크리고 있을때도 시 한구절이 밥 한 숟갈 뜨게 할 때도 있고, 분노에 손이 떨릴 때도 정신과 의사가 따뜻하게 등 을 쓰다듬어 준다. 기회조차 없는 세상이 팍팍하게 느껴져도 책 속에 있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개척한다.
운이 좋게 떡붕어나 잉어 같은 것을 건져 올리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고, 붕어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잘가 하며 보내준다. 그렇게 받은 힘을 그대로 안고 집에 돌아가면 세상이 내 뜻대로 안 풀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가끔 내 미끼를 물어주는 물고기들처럼 내 인생에도 불쑥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행복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케케묵은 방에서 딸기향이 오르고 머리카락 끝까지 딸기향이 묻은 느낌이다. 저녁에 먹은 기름에 볶은 소시지, 계란후라이, 미역국이 느끼했는데 시원하게 속을 정리해준다. 겨우내 나 모르게 아팠던 감정들도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딸기 몇 알로 이렇게 재충전이 되다니.
그렇게 봄이 다가오는 계절에 딸기를 먹고 있으니 멜론 먹었던 가을과 한라봉을 먹었던 겨울 이 생각난다. 몸과 마음이 상했을 때는 제철 과일을 먹어보라.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나눠 먹어 보길. 더 나아가서 네 생각이 났다며 선물도 해보길 바란다. 계절을 챙기는 것은 자신을 잘 챙기는 좋은 방법이다. 맞이하는 계절마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도 나에게 주는 행복이다. 이번 주말은 할머니 기일이고 모두 모이기로 했으니 예쁜 딸기들을 가득 들고 가야겠다.
책을 읽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늘 예민하고 매사 날이 선 이유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고 조롱했고 분노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고역인 것이다. 나는 나를 용서할 필요를 느꼈다. 나를 통제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루를 계획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춤추듯이 살아야...
가을이 올 때까지 꺼내 입지 않았다면 내 옷이 아닌 것이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들이라도 서랍장에서 1년을 지내면 묵은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코끝을 스치니 사람도 나아가는 방향 없이 머물러 있다면 묵은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에는 우리는 어느 방향이든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청소를 하는 중에는 이런 상념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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