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이승원
지금이 쉴 때니? 쉴 거 다 쉬면서 어떻게 제시간 안에 할 수 있겠니? 남들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자영업을 하다 보면 영업 요일 외 휴무일에도 일하게 되는데요. 그런 저에게 제목이 넘 매력적이여서 홀려 읽은 책입니다. 강다방은 책을 읽기 전, 에세이나 힐링이 되는 내용으로 예상했는데 정치 경제 사회 노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이라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이처럼 책은 더 새롭고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게해주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면 우리는 쉴 수 있을까요?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쉼 있는 삶을 꿈 꾼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제목 :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저자 : 이승원
펴낸곳 : 돌베게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19쪽
크기 : 135x210mm
가격 : 14,000원
발행일 : 2022년 11월 21일
ISBN : 979-11-91438-91-8 (03330)
돌베게 누리집
http://dolbegae.co.kr/
지금이 쉴 때니?
쉴 거 다 쉬면서 어떻게 제시간 안에 할 수 있겠니?
남들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마을활동가들과 함께 대략 이런 내용을 나누는 동안, 두 가지 질문이 우리 앞에 던져졌다.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의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대신하고, 태양광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불안은 왜 계속되는 걸까요?"
"로봇이 지긋지긋한 노동을 대신해 이제 누구나 놀고 쉬면서 재미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환호성을 질러야 하지 않을까요?"
SF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가 로봇에 대해 이야기한 단편소설집 『아이, 로봇』 I, Robot에는 인간과 로봇이 이상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로봇 공학 3원칙'이...
부자들에게는 이것들이 없는 지금도 이미 자신들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 덕에 동해안 일출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돈 많은 기업가라고 해도 돌봄, 가사, 건설, 제조, 유통 등 여러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에게 사용하는 교육, 임금, 노무관리, 보험처리와 관련된 비용보다 이들을 대신한 로봇 구입과 관리 비용이 더 든다면, ‘플렉스’가 목적이 아닌 이상 비싼 로봇이나 태양광 자율주행차에 큰돈 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첨단 신상품 구입비와 유지비가 인건비와 노무관리 비용보다 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동자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고, 근로계약서가 없어도 되는 로봇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 해도 실업 상태를 노동해방 상태로 탈바꿈시키진 못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여전히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아니, 불안이 희망을 노골적으로 잠식한다.
도덕적 해이로 도산 직전에 처한 대기업에 경제와 사회를 위한다는 이유로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여하는 데에는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이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데는 주저한다. 그렇게 살려낸 기업은 정리해고와 임금 삭감의 방식으로 노동자를 내몬다. 기업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들은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GDP(국내총생산) 수 치에 눈이 먼 정부는 대기업 프렌차이즈와 경쟁하다 골목에서 쫓겨나 가난한 도시 난민이 돼버린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지 못한다.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GDP는 인간 삶과 환경의 측면을 배제하고 오로지 '양적 성장'의 무게만 재는 비정한 저울이다. 쓰레기 배출량과 환자 수가 증가해도 GDP는 증가한다. 하지만 반대로 소비와 쓰레기를 줄이고 건강한 생활로 병원 이용률이 줄어들면 GDP는 상대적으로 감소 한다. 삶의 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 친환경적이고 절약하는 삶은 GDP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실현한 사람인 양 인간을 또 다른 착각의 늪에 빠뜨린다. 이 늪 속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착각 노동의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다. 마침내 우리 일상에서 과도한 소비와 그에 따른 부채 증가의 속도는 임금이 축적되는 속도보다 빨라진다.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해서 GDP가 증가하고 밤하늘의 스카이라인은 높아지고 화려해져도,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노동은 형벌처럼 느껴질 뿐이다.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우스처럼, 눈앞에 있는 듯한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노동의 소외, 사물화
그리고 인간의 소외
이제 '편안한 휴식'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연필과 종이, 책과 조용한 공간이 있는 도서관, 따뜻한 차 한잔과 쿠키, 산책하고 사색하면서 쉴 수 있는 주변 숲, 가벼운 자전거 타기, 서로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신상품,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듯한 해외여행,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음식 재료와 주방기구, 스마트한 최신 전자제품의 구매와 소비가 오늘날의 쉼을 점점 소비 문화 속으로 침잠시킨다. 과도한 노동과 부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쉼의 시간조차 또 다른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 소비 문화로 변질되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소비 문 화속에서 점점 고립되고,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자기가 원하는 관계망을 형성한다. 미래의 노동마저 담보로 하면서까지 소비해야 잘 쉴 수 있을 것 같은, 소비를 쉼...
놀이터가 누군가에게는 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아이들이 뛰놀고, 텃밭을 가꾸고, 벼룩시장이 열리는 신나는 장소 일 수 있지만, 그곳에 화려한 대형상가를 짓고 싶어 하는 땅 주인이나 개발업자에게 그런 모습은 지역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간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놀고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발산되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수익이 최우선인 투자 대상일 뿐인 것이다.
쉴 때는 쉴 만한 장소가 필요하고, 쉼의 장소는 개방되고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쉼의 장소에 모이고 연결된 존재들은 모두 평등하다. 각자의 삶의 리듬과 속도, 그리고 차이를 인정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모두 존엄하게 대우받는다. 마치 뭇 생명들이 공생하는 숲과 같다. 쉼의 장소는 중심과 표준이 지배하지 않을뿐더러 단일한 목적과 힘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곳이 아닌, 여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우리 일상의 동선이 이곳에서 새롭고 자유롭게 그려질 수 있듯이,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일상의 동선을 공유하여 새로운 마주침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오멜라스 사람들의 자족적 쾌락이 아닌, 공생공락의 쉼을 위하여.
마주침의 공터, 즉 헤테로토피아는 소비와 유통, 분리와 통제가 중요한 자본주의 도시가 지향하는 공간 질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고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고, 우연한 마주침이 가능하다. 어쩌면 서문에서 언급한 누구나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그런 헤테로토피아일지도 모른다. 헤테로토피아에서는 부딪침과 동시에 환대가 넘치고, 차별이 아닌 우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름'의 가능성, 수평적 토론, 새로운 사유를 통해 현재의 공간 질서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일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운동의 힘을...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감에는 기대감과 비관이 공존한다.
불안에서 벗어난 어떤 평안을 위해, 사람들은 최신 캠핑도구와 등산장비를 SUV차량에 싣고 천연의 삶을 즐기러 산으로 들로, 강과 바다로 떠나곤 한다. 웰빙 well-being, 행복 happiness, 건강 fitness의 뜻을 모두 담은 단어 '웰니스' wellness는 21세기 신종 산업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철학이자 생활양식이 되었다. 노후 연금, 양육에서 벗어난 중년의 목가적 삶,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는 품격 있는 주택, 고가의 빈티지와 최첨단 디지털 제품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21세기형 답을 주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일하려 한다.
웰니스 열풍의 반대편,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이 급격히 늘어났다. 자살률은 이후 18년 이상 계속 증가 추세를 보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매일 평균...
책을 끝내면서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먼저 이 책을 쓰면서 매우 힘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도 책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작지 않은 행복이다. 정작 책을 쓰면서 진짜 힘들었던 이유는, 이 책에서 표현된 '우리' 또는 '사람들'이 사실 '나' 자신이었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제시한 현대인의 우울함, 불안, 소비 중독, 자기계발, 착각 노동과 같은 현상은 나와 무관하거나 그저 관조적으로 관찰한 것들이 아니다. 이 책은 나부터 그것들에 찌들어 있는 상황 속에서 쓴 자전적 독백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써내려간다는 것이 버거웠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쓰면서도 해마다 금연을 반복하고 실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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