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김송희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잡지 <빅이슈>의 편집장이 쓴 에세이. <빅이슈> 잡지에 실린 글은 공식적이고 정제된 이야기들만 담겨있는데, 이 책에는 조금은 찌질하고 슬픈 진솔하면서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곱게(?) 늙고 싶은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를 꿈꾸는 1인 독거 청년들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은 책.
제목 :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저자 : 김송희
펴낸곳 : 딸세포 : 피치북스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40쪽
크기 : 130x200mm
가격 : 15,000원
발행일 : 2021년 11월 24일
ISBN : 979-11-966756-3-9 (03810)
작가 김송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eesedals/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은 1인 생활자의 모험기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김송희 에세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나로 살기 위하여!
홀로 또 함께 살아갈 모두를 위한 김송희식 응원
"부유한 할머니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서로 돌보며 재미있게 살 테니까!"
김송희
필명 늘그니. 《빅이슈》 편집장. 전 《씨네21》, 《캠퍼스 씨네 21》 기자. 《나일론》, 《한겨레》, 《하이컷》, 《여성중앙》, 《페이퍼》, 텐아시아, 카카오 등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매체에서 글 을 써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직도 많이 했고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전전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백 세쯤 되면 알 수 있으려나 싶은데, 가진 것 없이 명만 길까 봐 두렵다. 카카오톡 프로필의 상태 메시지는 10년째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다. 공저로 『미운 청년 새끼』가 있다.
인스타그램 @cheesedals
브런치 @flymoon6
얼마 전 무릎 수술을 받은 엄마는 실비 보험을 한 푼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엄마는 쾌활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가족에게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병간호를 도맡은 동생은 엄마 때문에 화병에 걸리겠다며 밤마다 혼자 주차장에 내려가 숨을 고르고 참을 인을 집어삼킨다. 무슨 놈의 메뉴가 그렇게 길고 어려운지, 엄마는 혼자서 치킨도 시킬 수 없다고 투덜댄다.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으니 짜증스럽고, 그간 혼자 잘 헤쳐나왔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서 허무하다. 보험만 이 최고의 노후 대비라고 믿었지만 바보가 된 기분이고, 온 세상이 나를 속여먹기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 노인이 되는 일은 그런 것 이다. 여태 당연하게 살아온 세상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에 노인은 너무 느리고 천진하다. 무조건 엄마 편을 들며 보험사에 따지고, 동분서주하다 깨달았다. 엄마는 자식에게 짜증이라도 내지, 내가 나이 들었을 때는 누가 나를 돌봐주지?
“문제가 생기면 나서줄 젊은 가족이 없다는 건 무서울 것 같아...
나는 곁에 있는 친구를 도울 수 있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사람마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너무 사랑하면 일부러 덜 좋아하는 척을 한다. 얼마 전 후배로부터 "선배는 이 일을 어떻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어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연극적인 톤으로 손을 내저으며 “어머, 원동력은 무슨 놈의 원동력이야. 카드 값 때문에 하는 거지. 다음 달의 카드 값이 오늘의 나를 살게 한다! 아자 아자!"라고 답하고 말았다. 삶을 너무 사랑하는 걸, 이 일을 너무 좋아하는 걸 최대한 숨기고 싶다.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다가 질린다며 차였던 경험 때문은 아니고, 그냥 너무 행복해 보이면 누군가 지켜보다가 그 행복을 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던 신이 "오호라~ 너 참 살만해 보이는구나. 이제는 괴로울 차례다!"라며 불행을 번개처럼 내릴 것 같다. 더 사랑할수록...
그것을 놓쳤을 때 더 상처받고 실망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그래서 뭐든지 덜 좋아하는 척, 원래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척하고 만다. 너무 희망에 부풀어 있으면, 그 희망을 놓쳐버렸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러니까 희망 따위 없는 척, 그냥 하루하루 주어진 걸 해내며 살 뿐이다. 하지만 생이란 건 기본 값이 '매우 고됨'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어쨌든 힘은 내야 한다. 산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나온 대사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에 매료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관은 할지라도 좌절은 하지 않고 어찌되었든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갖는 건 꿈조차 꾸지 않는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이사 갈 때마다 평수는 줄어들고 내 딴에는 안간힘을 쓰며 살았는데 월급도 삶의 규모도 제자리...
목차
프롤로그 누구나 귀여운 할머니가 될 수는 없지만 · 5
1장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로 살기 위하여
애증의 뿌리· 17
엄마와 연락을 끊고 나니 일상이 편해졌다 · 22
사위 현상금 · 28
모르는 여자의 익숙한 죽음 · 34
자기 돌봄의 기쁨과 슬픔 · 39
어머니와 아줌마 사이 · 43
언젠가, 요양병원 · 47
느리게 이별하는 중입니다 · 52
효도와 취향 사이 · 58
고양이와 나 · 64
2장 수다 울었으면 일하러 가자
...
3장 스위트홈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난하기 · 111
한 사람에게 허락된 공간 · 120
이사 날의 악몽 · 124
흔적 · 130
남의 집 구경 · 134
4장 돈지랄이 어때서
호랑이를 좋아하세요? · 141
초라해 보일까 봐 쓰는 돈 · 145
맥시멀리스트를 위한 항변 · 149
사는 즐거움 · 153
넷플릭스를 끊을 수 없는 이유 · 157
벼룩시장에서 얻은 것 · 162
성공의 맛 · 167
5장 연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는 삶 · 173
'고독한 ㅅㅈ방'의 비밀 · 178
보기 싫은 사람 · 184
우리는 관계 맺을 수 있을까 · 189
이런 환상에 빠진다. 연애한다고, 결혼한다고 고독이 사라지는 게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그렇다.
"어떡해. 우리 집 앞 건물에 사건 났나 봐.” 어느 날 친구가 창문 너머의 빌라 사진을 찍어 보냈다. 옥탑방으로 난 계단으로 경찰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시체가 나왔는지 현장 감식반이라고 쓰인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수사 드라마에서만 봤던 풍경이 창문 앞에 펼쳐지자 친구는 무섭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친구는 며칠 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1층에 사는 동네 마당발 아저씨의 설명에 의하면, 앞 건물 옥탑방에 살던 40대 비혼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었고, 경찰 조사 결과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죽은 그는 몇 달 전 실연을 당했고, 월세도 4개월가량 밀려 있었다고 한다. 내 이웃도 아닌, 친구의 동네 주민이었던 모르는 여자의 죽음.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해 엉엉 울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아빠가 요양 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다. 재작년 설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빠는 대학 병원에 장기 입원했고, 당뇨 합병증으로 수차례 뇌, 장, 신장 관련 수술을 해야 했다. 몸의 반절이 마비된 상태지만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어 간단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신장 투석을 위해 응급차를 타고 대학 병원을 오가고 있으며, 다음 주에는 혈관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가정 살림에 평생 보태준 적 없었던 아빠의 부재인지라 우리 자매들은 '아빠가 없다고 뭐 집안이 망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생존한 상태로 병원비가 매달 300만 원씩 나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평생 가장이었던 엄마는 사보험 하나 없는 남편의 병원비를 갚느라 빚에 허덕이고 있다. 직장도 보험도 없이 평생을 풍운아로 살았던 남자가 병원 신세를 오래 질 경우 병원비가 포탄처럼 쏟아지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얼마나 피폐한 삶...
관리자 수가 적은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인간의 존엄까지 주장하기 어렵다. 다들 몸 어딘가가 불편한 환자들이고, 병원에서 개개인의 수치심까지 돌봐줄 여력은 없으니 말이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게을러진다는 것,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누워만 있는 아빠는, 안 그래도 무기력한 사람이 우울증까지 걸려서 남은 게 식욕과 욕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나의 아빠는 그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아내가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으며, 매주 병문안 오는 자식이 있으니 나은 처지였다. 그다지 열심히 살지도 않았으며, 좋은 부친도 아니었고, 부양자 역할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말년에 보호받는 아빠를 보며 나는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게 어쩌면 사회에 남은 마지막 안전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할 수는 없을 테니, 계속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대로 살다가 늙으면 요양 병원 들어가지 뭐." 예전에는 툭툭 내뱉던 소리를 이제는 쉽사리 하지 못한다. 내가 늙었을 때 나는 요양 병원에 들어갈 돈이 없을지도 모른다. 요양 병원은 결코...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엄마의 취향이고 삶이다. 싫다는데 억지로 당근을 입에 넣어주던 내 어린 시절의 엄마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에게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몰라서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는 육십 평생 자신에게 익숙하게 체화된 것만을 편안하고 즐겁게 느끼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 나를 낳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좋은 걸 보면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는 내 앞에서는 "그거 별로”라고 해놓고는 뒤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나는 싫다고~ 싫다고~ 하는데 딸들이 끌고 가서 억지로 해봤잖아. 근데 그게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
2장
다 울었으면 일하러 가자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난하기
이것은 지옥처럼 더웠던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다. 나는 연남동의 3층짜리 주택 1.5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곳은 바람길이 막힌 주거 밀집 지역이라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도 유지되어 끔찍하게 더웠다. 더구나 1.5층은 1층의 콘크리트 열기가 방 안으로 온전히 흡수되어 24시간 내내 찜질방처럼 더웠다.
다행히 내 방에는 4평형의 소형 벽걸이 에어컨이 달려 있고 언제든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좁은 방을 시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거나, 틀고 나서도 10분 후에 쫓기듯꺼야만 했다. 가난한 살림에 폭탄처럼 투여될 전기 누진세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아랫집 사는 여자 때문이다.
에어컨을 튼 방에서 살포시 잠이 드는 극락은, 지구온난화고 뭐고 에어컨 최고를 외치게 했다.
그런데 에어컨을 설치한 그날 새벽, 누군가가 내 집 문을 미친듯이 발로 차기 시작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인 소리였다. 거세게 문을 걷어차는 소리는 새벽 5시까지 끊이지 않았다. 고양이 세 마리,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지만, 그날은 하필 고양이와 나뿐이었다. 고양이 집사들은 다들 알겠지만, 고양이란 족속들은 귀여움은 깡패 수준일지언정 침입자가 등장했을 때는 빛의 속도로 싱크대 밑으로 사라지니 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잔뜩 화가 난 발에게 문은 밤새 두들겨 맞았다. 이제 그쳤나 싶으면 다시 발길질이 시작되었고, 나는 오들오들 떨다가 아침을 맞았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위에 사는 주인집 아저씨가 술을 마셨나? 할머니 혼자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범인은 오후에 밝혀졌다. "그쪽이 설치한 실외기 때문에 밤에 한 숨도 못 잤어요."라는 짜증 섞인 전화를 받고서 알았다. 범인은 바로 아랫집...
"집주인 할머니에게 들어보니까 가난해서 에어컨 재설치비가 부담이라고 들었어요. 저도 가난해봐서 잘 알죠. 많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제가 봐드릴게요. 대신 밤에는 틀지 마시고, 하루에 1시간 이상 틀지 마세요. 운 좋은 줄 아세요. 제가 가난해봐서 이해해드리는 거예요. 여유 있는 사람 만났으면 국물도 없는 거 아시죠?"
이건 무슨 소리일까. 매일 전화해서 실외기 문제 해결하라고 귀찮게 하는 그 여자 때문에 할머니가 내 편을 든답시고 가난을 운운한 모양이다. '가난한 사람끼리 이해하고 살아야죠.' 식의 훈훈한 대화로 마무리될 것 같았지만, 그 여자는 그러고도 30분이나 더 훈계를 늘어놓았다.
나는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와 냉동실에 있던 비비빅을 와작와작 씹었다. 분노가 차올랐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아니...
"왜 돈을 못 모으는지 이제 알겠다."며 한숨을 쉬던 엄마는 답답해서 더는 못 보겠다며 짐 정리도 끝나기 전에 고향으로 내려 가버렸다.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한 끼도 못 먹고 이삿짐을 나르다 고향으로 내려간 엄마 때문에 나 역시 속이 상해, 정리도 덜 끝난 집에 털썩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12평에서 10평, 더 좁고 깨끗하고 시내에서 멀어진 집으로 이사를 왔다. 2년 뒤에는 또 어디로 갈지 모른다.
고향에 도착한 엄마에게 "잘 도착했어?"라고 문자를 보내자 답문이 왔다. "너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 집이 없어서 서러운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사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온종일 여기저기서 내 삶을 부정하는 소리를 들었더니 나 역시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두통이 심해서...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단 상담만 받아보려 했는데, 상담 실장님이 "요새 다들 이 정도 가격은 한다.”며 “그렇게 부담은 안 되시죠?”라고 묻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돈 없어서 이 정도 운동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운동은 해야 하니까, 허리 디스크도 치료해야 하고.'라며 가장 저렴한 그룹 레슨을 끊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옷은 새로 사야 하나요?" 날씬한 몸에 핑크색 필라테스 레깅스를 입은 실장님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갖고 계신 편한 옷 입으시면 돼요."
운동 첫날, 나 빼고 모두 요가복을 세트로 입은 모습을 본 나는 다시금 로봇 도시락 통을 들고 전학 온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가 전용 레깅스가 아니라 일반 레깅스를 입고, 맨발인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옆자리 사람들은 전부 요상한 발가락 양말을 신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것은 '토삭스'라는 이름의 물품으로 바닥에 미끄럼 방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노동의 가치는 한껏 폄훼되었고,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서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되도록 이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이 되는 것만이 현명한 노후 준비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과거에는 다양한 주제 안에서 취향 스펙트럼을 펼쳤던 친구들조차도 이제는 모두 현실의 불안과 돈 이야기뿐이었다. 물론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고민이 달라지고, 그 생각이 대화에 묻어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돈이 있어야 해. 왜냐하면 사회는 고령화되고 있고, 연금은 빠르게 바닥나고 있으며 우리가 늙었을 때 국가는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을 거니까,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물가 상승률 대비 적은 연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우리 세대의 미래는 결국 부동산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불우한 노인이 되었을 때 사회 안전망이 나를 지켜줄 거란 믿음이 우리 세대에게는 없다. 현재의 노인 세대 중 노후 대비로 부동산을 사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현실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에 불행한 노인이 된다면 그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를 대비할 자산도...
인스타그램에도 유튜브에도 나보다 화려하게 잘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전시되는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된다. 당연하다. 돈이 있어야 미래도 도모할 수 있고, 꿈도 꿀 수 있고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거절도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울 수 있고 덜 불안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세대에게 가장 큰 공포는 빈털터리 노후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경제활동은 할 수 없고,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갈 돈도 없고 연금은 턱없이 적어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의 삶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안정적인 노후를 살고 싶은 바람과 사진과 영상으로 상류층의 삶을 쉽게 엿볼 수 있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 뒤엉켜, 이 모든 욕망은 증폭되고 우리의 머릿속은 온통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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