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출판사 창업 운영/취미는 없고 특기는 돈 안 되는 일

다정함을 잃지 않기

강다방 2023. 1. 26. 23:58

 

 

 

사진: UnsplashAaron Burden

 

 

[잔물결 글쓰기 모임]

다정함을 잃지 않기



아침으로 맥모닝을 먹고, 점심으로는 돈까스를 먹었다. 뱃속과 혈관을 기름으로 채웠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평소 가보려 했던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 책방에 출근해 내일 다시 시작될 한 주의 영업 준비를 했다. 손님이 들어왔다. 꽤 오랜 시간 매장을 구경하셔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했지만, 든든한 배 때문인지 혈관에 돌고 있는 기름 때문인지 기분이 좋다. 창문 너머로는 일기 예보에 없던 눈발이 날렸다. 예상치 못한 눈발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기차를 타고 전국을 한 바퀴 도는 여행한 적이 있다. 그 때도 기차 창문 밖으로 눈이 내렸다. 여행은 강원도에서 시작해 서울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모두 거쳐가는 여행이었다. 전국을 한 바퀴 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느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근처를 지나는 길에 우연히 방문한 곳이었다. 전시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하는데, 문 앞에서 안내를 하던 할머니가 사투리로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셨다. 강원도에서 왔다는 대답에 할머니는 ‘어찌 먼 곳에서 왔는가’ 놀라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젤리를 꺼내 선물로 주셨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장롱에서 주섬주섬 꺼내주던 과자가 생각났다.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기차를 탔었다. 밤에 출발해 다음날까지 운행되는 열차였다. 여행자들이 보통 이용하는 침대칸이 모두 매진되었고, 인도 현지인들이 앉아가는 열차 칸만 좌석이 남았다. 기차역에서 밤을 새고 다음 열차를 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인도 여행을 하며 악명 높은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밤 기차를 쉽게 선택하지 못 했다.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도시였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 결국은 밤 기차에 몸을 싣었다. 혹시나 누군가 가방을 훔쳐가지 않을까 가방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경계를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하지만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다음 날 아침 눈이 떠졌다. 그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앞에 마주보고 앉아 있던 인도인 한 명이 인도의 전통 음료 짜이를 한잔 사줬다. 여행할 때 누군가 권하는 음료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거듭 사양했지만, 인도인은 자신이 마실 짜이 외에 한 잔을 더 주문해 나에게 건넸다. 인도를 여행하며 마신 짜이 중 가장 맛있었던 짜이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려보이는 동양인이 홀로 기차에 타 가방을 끌어안고 꾸벅 조는 모습이 안쓰럽고 귀여웠나보다. 인도를 여행하며 몇 번의 사기, 몇 번의 싸움(?)이 있었지만 짜이 한 잔의 기억 때문인지, 과거 추억 보정 때문인지 참 따뜻했던 여행으로 기억된다.

새해를 맞아 다정한 책방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년 뒤에는 흑화되어 다정함과는 먼 곳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짐과 계획은 세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정함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맛있는 걸 먹고 배가 부를 때, 통장 잔고가 넉넉할 때, 무언가를 열심히 해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때, 스스로가 여유 있을 때 좀 더 관대하고 다정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올 한 해 밥 잘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하고, 일도 열심히 해, 돈도 많이 버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나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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