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갈 데가 있어서요, 이택민 산문집
독립출판물으로 만들어지는 책의 대부분의 에세이인데, 남성 작가가 쓴 에세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책은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남성 작가가 쓴 에세이 산문집이다. <고민 한 두름>에 이어 2번째로 출판 된 책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불안 한 톳>까지 3부작을 함께 읽으면 좋다. 90년대생 친구가 쓴 일기를 읽은 느낌이다.
제목 : 갈 데가 있어서요
저자 : 이택민
펴낸곳 : 책편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84쪽
크기 : 120x188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1년 12월 1일
ISBN : 979-11-971216-2-3 (03810)
이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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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편사
https://www.instagram.com/chaekpyunsa/
이택민 李澤珉
연못 속 수많은 돌 중에 빛나는 옥돌 하나
우린 모두 우주먼지 같은 조재인지만, 바람에
흩날리기엔 무거운 심장 하나씩 가지고 있다.
못 아래 차분히 가라앉은 옥돌처럼, 미지근한
심장 하나 품고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싶다.
당부의 말
삶은 흐른다. 지금도 과거가 되니
우리 부디 대과거로 남지 않기를.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갈 데가 있어서요
차례
당부의 말
1부 갈 데가 있어서요
우리는 모른 채 15
미지근한 심장은 언제쯤 16
같은 날, 다른 공간 17
죽음과 가장 가까운 맛 27
마른 사과 29
돼지고기 김치찌개 31
향으로 지르는 비명 34
얼마나 많은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이냐고 36
괜찮아, 다음 버스 타면 돼 38
Texel Island 41
기억이 저장되는 방식 51
흙길을 자처하는 여행가 52
택시 안에서의 묘한 기류 54
갈 데가 있어서요 58
2부 감정의 모행성
투박하게 단어를 썰어갈 뿐 75
장마가 오는 사이 76
무뎌지지 않도록 81
미완 86
어떤 계절을 살아가는 걸까 89
폭설 92
밑 빠진 고독 94
혼자만의 철학 96 팔짱 낀 사람 98
추억이 나를 감는다 99
완주만큼 소중한 것 110
감정의 모행성 112
방백 114
생일 116
부스러기 121
퍼즐 조각 123
나는 내가 어렵고 가을은 가을이 쉽다 126
3부 우린 국경선을 밟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
모기향 133
깡통을 타고 날으며 2 134
야속한 여름 141
새벽을 거닐다 142
헬싱키나 탈린 같은 곳으로 144
섬은 지구가 만들고, 언덕은 바람이 만들었다 146
어깨를 툭 치는 148
부스 안 사람들 150
한 나라에서 한 나라로 156
오늘의 소란이 서른의 소란이 될 테니까 157
시처럼 음악처럼 158
우린 국경선을 밟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 160
어려울수록 펜을 쥐겠습니다 178
마지막 페이지 180
새벽길을 나서는 모든 그대에게
그로부터 9개월이 흘렀다. 돌아가지 않을 것 같 던 국방부 시계도 조금씩 움직였다. 그사이 나는 훈련병에서 이등병, 이등병에서 일병이 되어 있었다. 군대에서의 두 번째 여름을 앞두고 있던 5월 초엔 열흘간의 1차 정기 휴가를 허가받았다. 3.4초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이전 휴가와 달리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겠노라 다짐했다. 휴가 한 달 전부터 친구들 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휴가 계획을 세웠다. 여느 때 와 같이 싸지방에서 페이스북을 하고 있는데, 같이 입대한 친구 중 한 명에게 메시지가 왔다.
'5월 9일에 우리 부대에서 부대 개방 행사하는데 올래?'
정확히 제대를 1년 앞둔 5월 4일, 휴가를 나왔다. 그 주말에 친구 부모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가평으로...
외근 후,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집으로 한 번에 가는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해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강남역으로 갔다.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스마트폰 앱으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했다.
3분 24초, 2번째 전 (여유)
집 앞에서 내릴 수 있는 버스가 곧 도착이다. 게다가 잔여 좌석도 널널하다. 희망 고문과도 같은 시간, 3분! 부리나케 달려가면 버스를 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총성에 반응하는 육상 선수처럼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고, 몸을 재빠르게 반으로 접어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강남역 5번 출구를 향해 지하도를 질주했다. 마지막 관문인 에스컬레이터를 두 칸씩 뛰어오르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횡단 보도를 건너기 위해 건널목 앞에 선 순간, 버스 정류장을 무심히 지나가는 빨간색 광역 버스 한대. 서울은 뛰어도 느린 곳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마십시오.
그동안 배경 음으로 흘려보낸 안내 방송이 귓가를 맴돈다. 평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 보면 오른쪽은 가만히 서서 올라가는 줄, 왼쪽은 걸어서 올라가는 줄이라는 게 이용자들의 암묵적인 규칙이란 걸 알 수 있다. 왼쪽 줄에서 가만히 서 있으면, 대개 사람들은 뒤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실례합니다." "잠시만요." 와 같은 말을 내뱉고 비켜주기를 기다린다. 더군다나 인파가 몰려드는 출퇴근 시간에...
혼자서 택시를 타게 되면 주로 앞좌석에 앉는다. 동행이 있을 땐 뒷좌석에 타지만, 혼자 탈 땐 왠지 앞자리에 타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다. 다만, 앞자리에 탑승하는 것이 혼자서 속으로 기사님에게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향이 있다.' 라는 의사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많은 기사들은 말을 걸어온다. 아니,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한다. 절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나 털어놓을 법한 푸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토로하는 것이다. 승객을 신부로 착각한 듯, 자신의 과거 행적을 풀어놓는 고해성사의 자리로 여기는 모습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에 관하여 심신이 모두 지쳐있던 시절의 나는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여력도...
첫 혼자 여행의 숙소는 찜질방이었다. 시내 부근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인 후, 수면실에 몸을 뉘었다. 하지만 처음 와보는 낯선 여행지에 답답한 수면실 공기까지 겹쳐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친구들은 어디서 자고 있을까, 나처럼 밤잠을 설치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몇 푼 아끼고자 게스트하우스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불편한 잠자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간신히 잠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떠졌다. 몸을 일으켜 미지근한 탕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늘어져 있다 밖으로 나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옷을 입는 동안 살갗에 스치는 공기가 퍽 서늘했다. 카운터에 탈의실 키를 반납하 고 꾸겨 신은 신발을 고쳐 신고 있을 때, 신발장 앞 의 구두닦이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새벽이라 추울 텐데, 어딜 그렇게 일찍 나 가요."
"아... 갈 데가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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