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에세이] 퇴근길, 밤하늘 아래 별을 세며, 메이지

강다방 2022. 8. 15. 17:34

 

 

 

 

독립출판물, 직장 생활 에세이

퇴근길, 밤하늘 아래 별을 세며

 

 


직장인의 설움(?)이 닮겨있는 에세이. 강다방 이야기공장에 입점한 에세이들은 아픔과 성장을 다룬 내용이 많은데, 이 책은 회사 생활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신입이 아닌 짬밥 좀 먹은(?), 위아래로 끼인 직급(?)인 것으로 추정되는 뿡뿡(?) 작가가 퇴근 후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리부터 과장, 차장급이 읽으면 공감될 내용들이 많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읽으면 갬성 충만해지는 에세이 집.

 


제목 : 퇴근길, 밤하늘 아래 별을 세며
저자 : 메이지
펴낸곳 : 문구점 응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28쪽
크기 : 118x191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2년 4월 11일
ISBN : -

 

 

강다방 이야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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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에세이] 퇴근길, 밤하늘 아래 별을 세며, 메이지 : 강다방

[강다방] 강릉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서점, 헌책방, 출판사,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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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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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이야기 9
사람이 어려운 나에게 12
해 질 녘, 아직도 회사 73
지금은 로그아웃 132
나를 지탱해주는 것 184
닫는 이야기 224

 

 

 

 

 

시작하는 이야기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를 지나고 나면 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도전을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떤 식으로 정체성을 찾아 방황할지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뒤집힐 만큼 가벼운 게 아니라고, 대개는 그 말이 맞는다. 매 순간들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까. 흔히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말하는 그런 운 명적인 순간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 뒤돌아보았을 때,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친구들의 연이은 죽음은 내 인생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터닝 포인트였다. 그간 나를 지탱해왔던 유리 같은 세계가 깨진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동안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삶의 가치들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지금 꽃이 피지 않는다 하여 슬퍼하지 말자

전례 없는 코로나의 장기화는 우리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든다.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차치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 없는 조급함과 불안을 키운다. 이럴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지런히 입을 놀리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다. 마치 인생의 정답과 그 끝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들 어디서 같은 수업이라도 들은 것인지, 너는 이미 늦었다, 지금처럼 살면 너는 점점 도태될 거다 같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상대의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누구는 회사를 박차고 나가 평생직장에 입사했다고 하고, 누구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다고 한다. 누구는 주식으로 월급의 몇 배를 벌었고, 누구는 '사'자 붙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하나, 둘 결승점에 도달해 가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장밋빛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미래에 성큼 다가간 느낌이랄까? 어쩐지 나만 그 뒷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점점 초조해진다. 내 앞보다는, 내 옆에 더 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새 나만 홀로 남겨져 있는 것...

 

 

 

 

 


여행을 다니고 동네 책방을 여는 거라고 말하니 참 답답하다. 현실적인 고민,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준비 같은 건 하는 건가? 어쩌려고 저러나 몰라, 철이 덜 든 건지,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자기 입으로는 다들 나는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지, 근데 그런 사람들의 문제가 뭔지 알아?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거야. 단적으로 봐, 작가도 아닌데다가 돈도 안 되는 글은 왜 쓰고, 일본어는 왜 배워? 잘 들어, 승진이나 현재의 업무에 보탬이 되는 스킬이 아니면 그건 자기계발이 아니라 그냥 돈 뿌리는 취미야. 너 돈 없다며. 그럴 시간에 경제 책을 읽고 부동산 기사를 더 봐. 그렇게 공부하고 싶으면 공기업 입사나 공무원 시험 같은 거라도 준비를 하던가. 그래야 나중에 덜 후회해."

믿을 수 없겠지만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잔소리였다. 그 말을 듣는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대화를 끝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하고 수치스러웠던 느낌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 삶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 속상하고 분했다. 혼자서 고심 끝에 한 선택의 결과가 지금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그대로 홀로 며칠을 끙끙 앓았다.

일주일이 넘도록 거센 바람과 비가 창을 뒤흔들었다. 그러다 반짝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이 얼굴을 빼꼼 내 밀었다. 기분 좋게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작년인 가 재작년 어느 봄이 떠올랐다. 그해에는 꽃샘바람도 심하게 불었고 비도 많이 내려서 그 봄 가장 화려했을 벚꽃...

 

 

 

 

은밀한 취미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확 폭로되자, 흡사 무방비한 상태로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갑자기 글을 쓰는 일이 부끄럽고, 꼭꼭 숨기고 싶은 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정도도 아니고, 무려 작가님이라고 소개해 주시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심한 나는 혹시나 회사에서 나와 관계가 좋지 않은 누군가가 지나가다 듣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작가님이라니 얼마나 비아냥 거리기 좋은 말인가. 코웃음을 치거나 반대로 박장대소할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끔찍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닌데, 괜한 분노와 수치심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새삼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어야 하는 걸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처음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10주간 쓴 글로 채워진 책을 받았을 때 기분이 정말 묘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호기롭게 몇 권을 더 주문해서 받았건만, 정작 지인들에게 나눠주지 못했다. 잘 다듬어지지 않고 서투른 글을 읽어 달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 이토 록 재미난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쳐나는데, 내 글을 읽는 건 시간 낭비 같았다. 그때 동료 작가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쓴 글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그저 나를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라고. 이 책이야말로 말로는 전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책 속에는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되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외에는 어떠한 목적도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애쓰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글을 쓰는 동안은 온전히 나를 위할 여유가 있다는 것, 세상의 때가 덜 묻은 나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러니, 글 짓는 마음을 잘 보살피고 가꾸어 나가고 싶다.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아픈 마음과 기억을 더듬어 자신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마음이 커지고 커져 소중한 사람이 나의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읽어주길 바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길 바랐다. 이제는 그 마음을 다시 잘 꺼내서 펼쳐 놔야겠다. 분명 그 마음이 글 짓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회사 생활 되게 오래 한 사람처럼 말씀드린 것 같아서 부끄럽긴 한데, 사실 이제 5년쯤 되었어요.”

“생각도 많아지고 힘들 시기이긴 하네요. 신입 때와 달리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고, 책임지고 도맡아야 할 일도 늘어나기 시작하니까요. 선후배 사이에서 조율해야 하는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아직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니까 많이 답답할 때죠.”

“맞아요, 맞아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머리는 없고 손발만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누군가를 설득할만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그게 제 한계인 것 같아서."

“아마 회사원 중에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은 없을거 예요. 회사 생활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 오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결국엔 다 지나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직장이 곧 직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래요. 그냥 뿡뿡 회사 노예라는 생각 대신 지금 하는 일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셨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계실 테니까요.”

그 대화를 계기로 직장과 직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분명 직업은 직장과 관련이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달랐다. 직장이란 일하는 장소를 뜻하고, 직업은 일정한 수입을 가져다주는 일을 뜻한다. 그래서 회사원은 직장을...

 

 

 

 

 

제가 더뎌서 그런 것도 있죠, 뭐. 일잘러의 꿀팁 같은 것 좀 공부해야 할까 봐요.”

“지금 그거 공부할 때가 아닐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거 공부나 해. 야근 그렇게 하는 것 보다 회사 일 대충 하고 재테크에 힘쓰는 게 답이야. 월급 받으러 오는 거 말고 회사에 무슨 의미가 있어. 월급 그거 받아 봐야 그냥 월급이지, 뭐. 그리고 마음 쓸 거 있나, 어차피 내 일 아니고 회사 일인데.”

“아, 뭐. 그래도 제 일이니까 기왕이면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평생 그렇게 살아.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월급에만 매달리다가. 그렇게 살면 뭐가 남는지 나중에 보면 알겠지.”

사실 재테크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거니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저런 말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게다가 일을 그저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모두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대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저 나 나름대로 나의 일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하루 중 몹시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쓰고 있는 만큼 일을 단순 히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만 규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하는 대부분의 말은 그저 당신과 나 사이의 가치...

 

 

 

 

 


말랑말랑

길치, 방향치인 탓에 한 번 길을 익히면 우연이 아니고서야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난 6년간 출퇴근 길의 동선 역시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늘 같은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을 이용하고, 회사 건물에 당도하는 무수한 갈래 중 단 한 갈래로만 다닌다. 만약 관찰 카메라로 나의 일상을 찍는다면, 매일 똑같이 보이는 배경 때문에 보는 이가 질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계절의 변화마저 없다면 맨 첫날을 복사, 붙여넣기 한 느낌이겠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이 구간에서는 자연스레 넋 놓기 일쑤인데, 요즘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존재가 생겼다.

바로 튤립이다! 주차장에서 건물 입구로 향하는 길가에 알록달록한 튤립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눈길을 잡아 끄는 빨갛고 노란 튤립, 은은한 코랄 빛과 핑크빛 튤립, 청순한 흰 튤립들이 사랑스럽게 서 있다. 분명 지옥의 문을 열러 가는 길인데, 찰나이긴 하지만 튤립 사이를 걸을 때면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다는 점에서 회사나 놀이공원이나 다를 바가 없지...

 

 

 

 

 


사측에서 코로나 우울로 노동력이 급감할 것을 우려하여 내놓은 앙큼한 방책이라면 성공적이긴 하다. 귀여운 튤립 덕분에 잠시나마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산뜻한 기분이 되니까.

통통하고 탐스러운 꽃망울이 벌어질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귀엽고, 신비로운 느낌이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튤립마다 암술과 수술의 색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꽃잎과 꽃 안쪽의 색깔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튤립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 비가 내리는 퇴근길, 바람에 흔들리며 온몸으로 빗방울을 받아내는 튤립들이 보였다. 문득 꽃 안에 물이 고여 있을지 궁금해졌다. 살포시 화단에 다가가 조금 벌어진 튤립 안을 살펴보니 바닥에 살짝 찰랑대는 물이 보였다. 문득 무언가는 튤립 안으로 내려앉아 이 물을 홀짝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이나 나비보다 먼저 엄지 공주를 떠올리는 나를 보며 어이가 없었지만, 묘하게 기분은 좋았다.

 

오늘도 이 지옥에 머무는 동안 마냥 사납고 각박하게 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없는 상상도 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있어서 다행이다. 일 때문에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들더라도 매사에 무감각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 정말 별것 아닌 것 같더라도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갖고 싶다. 그마저도 없으면 사람이 날카롭고 딱딱해져서 조금만 충격이 강해져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다가 끝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회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꽃눈 하나 덕분에 발걸음 가벼웁게 출근할 수 있다니 놀랍다.

역시 기한 내에 마쳐야 하는 일에 대한 걱정 없이, 회사 내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그저 잘 쉰 것만이로도 사람 마음에 이렇게 여유가 생기나 보다. 쉼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조그맣게 자리한 마음의 틈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동을 받고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 테지만, 쉼에는 소홀해지고 싶지 않다. 너무나 당연해서 놓치고 마는 것이 계절의 변화인데, 자연이 준 선물을 잘 누릴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쯤은 꽃 한 송이를 책상에 놓아둘까 한다. 내 자리를 오가는 사람들 또한 잠시나마 여유와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2월의 꽃은 프리지어다.

자연의 축복 속에서 오감을 단련한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지독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건강하고 순수한 귀에는 폭풍우조차 아이올로스의 거문고 소리로 들린다. 그 누구도 순수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깊은 슬픔의 나락으로 빠뜨리지 못한다.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삶은 더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다. -p. 39
**[고독의 발견], 헨리 데이비드 소로 **

 

 

 

 

 

#5

1월의 마지막 날을 기점으로 회사 건물에 입점해 있던 카페의 영업이 종료되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돌아가면 새로운 가게로 탈바꿈해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로 들어서지만, 역시나 철거된 상태 그대로였다. 회사 건물 밖의 다른 카페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탓에 오늘은 커피를 포기해야 할듯싶었다. 노동을 위한 카페인 충전은 필수인데,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버터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니 뭐니 해도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해야 제맛인데! 회사 건물로 비몽사몽 하게 들어갔어도 아이스 카페라테를 하나 사서 들이키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강제로나마 잠을 달아나게 할 방법이 없다. 오늘 참 시작부터 고되겠다, 휴.

무엇보다 요즘 회의가 너무 잦은데, 회의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실 수 없다니 그게 참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회의 때 서로 간의 입장에서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대로 각자의 업무로 돌아가면 감정의 앙금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나면 다 같이 커피 타임을 갖는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료를 들고 둥글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데, 처음에는 좀 어색하다가도 금세 분위기가 풀려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업무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나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면 예민해졌던 신경이 점차 누그러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커피 한 잔과 함께...

 

 

 

 


지금은 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중학생 때까지는 내심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나이 들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길 소망하면서.

항상 가족들을 건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만큼이나 서글픈 마음이 컸다. 부모님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으실텐데. 커피 한 잔의 여유조차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그 것은 너무나 무겁고 혹독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희생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고, 그만큼 강인한 어른은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고단한 인생을 살 아갈 미래의 내가 막연히 두렵고 싫었다. 세상에 즐거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흥청망청 놀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어른이 되어 누릴 자유보다 의무가 더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어릴 적 나는 생각보다 예리한 눈과 상황 판단력을 지녔었나 보다. 차라리 지금 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그런 마음 때문일까? 지금은 그 시절의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어른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마지못해 어른의 나이가 되어 어른 흉내를 내기 바쁘다. 괜찮은 척, 다 이해하는 척,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척.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나보다 더 상처받고, 미루고 회피하는 사람...

 

 

 

 


언젠가 동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는 일이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지라도, 씀을 멈추지 좋겠다고. 만약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주 피폐하고 엉망진창인 모습이 되어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동생 말이 옳다. 나는 내 마음을 읽고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주제에 더 많은 일을 잘하고자 끊임없이 닦달하며 몰아붙였을 테다. 어쩌면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던 그때에서 별반 나아가지 못한 상태로 멈춰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욕심부리지 않고, 재능이 없다는 말 뒤에 숨지 않고, 딱 지금처럼만 글 짓는 마음을 지켜가고 싶다. 순수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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