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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판매자(플리마켓 셀러) 참여 실패기 폭망썰



1. 청귤과의 만남


제주도 여행하며 청귤 에이드를 마신 적이 있다. 정말 맛있었다. 존맛탱이었다. 청량하면서도 달콤한 청귤 에이드 맛은 한여름 더위에 지쳐 갈증에 허덕이던 나를 구원해줬다. 한 단어로 아나스타샤...


그리고 어느 날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청귤을 판매한다는 기사를 발견한다. 여기서 잠깐 청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청귤은 별도의 품종이 아닌 익기 전 초록색 감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미숙과 귤이다. 그래서 농협과 뉴스 기사에서는 청귤이라는 단어 대신 풋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원래 청귤은 판매가 되지 않는 귤이었다. 감귤 농가에서 과잉 생산을 줄이기 위해 귤이 익기 전 열매를 땄는데 덜 익은 특유의 신맛 때문에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서 청귤을 설탕에 재어 청귤청, 차, 샐러드 등에 이용하며 올해부터 농협에서 청귤(풋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 벼룩시장 신청, 상품 제작, 홍보


나는 청귤청을 담글 생각으로 청귤(풋귤) 한 상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았다. 나머지 청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도중 우연히 동네 벼룩시장(플리마켓) 판매자(셀러) 모집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래서 남은 귤들도 모두 청귤청으로 만들어 벼룩시장에서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제주도를 여행할 때 가봤던 벨롱장을 생각하면서...


집에서 혼자 먹는 거면 그냥 사용하고 남은 스파게티 소스 병에 담았을 텐데, 돈 받고 판매하는 상품이다 보니 청귤청 담을 병을 사버렸다. 그리고 병이 너무 밋밋해보여 병에 붙일 안내 부착 종이(라벨)까지 만들게 된다. 인터넷에서 병 붙일 스티커 가격을 알아보니 워낙 소량을 제작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스티커를 제작하지 않고 손수 A4용지에 인쇄해 투명 스티커(?) 손코팅 필름을 붙였다. 



포장지 하나 바꿔 성공한 프로틴 바, 티타임즈
http://1boon.daum.net/ttimes/ttimes_1705161946




어디선가 본 포장지를 바꿔 성공한 프로틴바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름 라벨 디자인을 시작했다. 나도 제품 디자인만 잘하면 매출이 쭉쭉 올라가겠지 생각하면서... 그래서 만들어진 제품 안내 라벨. 느낌적인 느낌을 살린 느낌으로? 나름 시각적 청귤과 설탕 아이콘도 만들어 넣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점이지만 컴퓨터 화면으로 봤을 때 큼직큼직했던 글자들을 실제 종이에 인쇄하고 병에 붙여보니 너무 작지 않았나 싶다. 초기에는 색깔(컬러)로 제작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인쇄 품질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리고 색깔이 들어가는 인쇄는 흑백 인쇄보다 배 이상으로 비싸다. 이번에 잘되면 다음번에 색깔 번쩍이게 만들어야지 생각했다.


글로 적어보니 굉장히 쉽게(?) 만든 것 같은데 청귤을 베이킹소다로 씻고, 한 번 더 식초로 세척하는 작업, 청귤청 담을 병을 열탕 소독 하는 일, 청귤을 물기 없게 말리는 작업, 병에 붙일 라벨을 자르고 붙이는 등 한두 개가 아닌 대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손이 많이 갔다.





동네 벼룩시장 판매자 신청과 판매자들의 소통은 밴드 앱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청귤청 병을 방바닥에 놓고 촬영한 상품 사진도 밴드에 올렸다. 평소 밴드에 올라온 글보다 반응이 좋았다. 기대된다는 댓글부터 어머 이건 사야돼 아이콘까지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청귤청 완판을 꿈꿨다. (좋아요도 눌러줬는데...)





3. 일을 크게 벌려볼까?


현장에서 직접 담근 청귤청으로 청귤에이드를 만들어 판매해볼까 생각도 해봤다. 다만 벼룩시장 판매자에게는 탁자가 아닌 돗자리 1개만이 지원됐다. 그래서 청귤에이드를 제조해 판매하려면 탁자, 아이스박스 등이 필요했다. 컵이랑 빨대, 물, 사이다 등 신경 쓸 것도 많았고 혹시라도 안 팔렸을 경우 재고처리가 힘들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잔디밭 바로 뒤에 카페들도 있었다. 청귤에이드는 이번에 잘 되면 다음번 탁자도 사고 아이스박스도 사서 해봐야겠다 결론 내렸다.


벼룩시장을 위해 다이소에서 5천원짜리 접이식 간이 의자도 구매했다. 전문적인 벼룩시장 판매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캬캬캬. 벼룩시장 하루 전날 홍보 문구도 인쇄했고 거스름돈으로 사용할 동전도 교환 완료했다. 처음에는 누가 그런거 사겠냐하던 엄마도 나중에는 비닐봉지도 필요하지 않냐고 은근슬쩍 조언도 해줬다. 환경을 보호하는 벼룩시장의 원래 목적(급하게 의미 부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봉투는 준비하지 않았다. 


벼룩시장을 준비하며 나도 모르게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돈 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벼룩시장을 준비하면서도 돈을 무한대로 쓸 수도 있겠다 느꼈다. 잘 되면 좋은데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번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벼룩시장에 참여하려 했다.







4. 게스트하우스와 수재쨈, 수재청


사실 많은 게스트하우스는 직접 담근 수제쨈을 조식으로 제공하거나 판매한다. 게스트하우스 자체만으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과연 내가 만든 청귤청이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나 실험해보고 싶었다. 다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쨈이나 청을 만들어 상업적으로 판매하려면 식품법 상 주거 지역이 아닌 별도의 상업 공간에서 제조해야 한다. 벼룩시장 같이 소량으로 단발성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별도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게스트하우스 허가도 그렇고 쨈이나 청 만들어서 파는 것도 그렇고 알고 보면 규제가 참 많다. 집에서 쨈이나 청을 뚝딱 만든다고 다 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벼룩시장 하루 전날 밤, 망하면 어쩌지, 하나도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새벽에 잠 안 자고 병 온탕소독하고 청귤 썰고 설탕을 덜어 넣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 청귤청 병에 붙일 라벨 종이를 하나하나 칼로 자르는 순간도 떠올랐다. 접이식 의자는 괜히 샀나 싶기도 했다.






5. 폭망을 넘어 X망으로


대망의 벼룩시장 당일. 결과는 폭망을 넘어 X망했다. 딱 1개 팔았다. 그것도 옆자리에 앉았던 판매자분이 하나도 팔지 못한 나를 보고 불쌍했는지 집에 가기 전에 하나 사주셨다. 안 팔리면 내가 다 먹어버리면 되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안 팔리니 마음이 아팠다. 큰 돈은 아니지만 벼룩시장을 준비하며 투자한(?) 돈들이 다 적자가 되었다. 나무야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내가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채연의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보는게 아니었다.




6. 원인 분석과 교훈


벼룩시장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인지, 위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무엇보다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더욱이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주 연령층은 엄마와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1천원, 2천원을 쥐여주고 벼룩시장에서 아이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사게 했다. 그래서 벼룩시장의 많은 판매자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형을 팔고 있었다.


1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벼룩시장을 알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참가를 결정해서 그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주요 이용객이 누구인지, 타겟을 누구로 잡아야 하는지 조차 파악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요즘 보고 있는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제주도를 여행할 때 봤던 사람이 동네 벼룩시장에도 올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내가 만든 청귤청은 동네 벼룩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품목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닌 청귤청처럼 새로운 상품이나 물건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과 손이 많이 간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이라면 어느 정도의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벼룩시장에서는 청귤청보다는 안 입는 옷, 안 쓰는 가방, 인형 등 완제품을 판매하는 게 효율적인 측면으로만 봤을 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청귤청을 만들면서 느꼈던 것 중 한 가지가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금전적으로 더 이득일 수 있겠다는 거였다. 아르바이트는 적어도 물건이 안 팔렸을 때의 위험 부담은 없으니까. 꼬박꼬박 월급 나오던 직장인 시절이 그리워졌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장사는 어려운 거구나.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아니구나.


원가 고려하는 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하고 팔면 되겠지 싶었는데 레몬청으로 시작하려고 했던 일이 레몬에이드, 상품 포장 등 무한정으로 원가가 올라갈 수 있겠구나 깨달았다.


여자들끼리는 물건을 사고팔 때, 나이가 많건 적건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벼룩시장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돗자리에 앉아 자신의 공책 등을 팔았는데 공책 얼마예요, 떨이예요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에너지도 얻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젊은 사람들을 보고 에너지를 얻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7. 그렇게 벼룩시장 종료


벼룩시장은 4시까지였지만 3시가 되자 판매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사람들과 판매자들이 조금씩 줄어들 때, 벼룩시장 옆면에서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나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이 떠난 텅빈 잔디밭과 옆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나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마치 TV 프로그램 다큐3일에서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프로그램을 끝낼 때의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실험(?) 도전은 X망했구나...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준비한 청귤청 20개 중 19개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청귤에이드를 만들어 마셨다.





다른 누군가 벼룩시장에 판매자로 참가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실패하더라도 한 번쯤은 도전하고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나 역시 금전적으로 손해는 봤지만 이번 경험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생을 살아갈 때 큰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게스트하우스를 언제 시작할 지, 과연 시작할 수 있긴 한건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강다방 게스트하우스에 온다면 벼룩시장에서 폭망한, 직접 만든 청귤청으로 청귤에이드 또는 청귤차를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청귤청이 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청귤청을 담았던 마음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밝은 미소) 이것으로 벼룩시장 판매자(플리마켓 셀러) 참여 실패기 폭망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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