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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2일차 숙소 위드유 호텔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입니다. 조식 시간에 맞춰 2층 카페로 내려가면 토스트와 계란후라이를 만들어주십니다. 씨리얼과 우유는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 되고 별도의 컵라면도 있습니다! 꽤 푸짐한 아침이었습니다.

 

 

 

 

 

 

 

[여행기] 걸어서 울릉도 일주 한 바퀴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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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걸어서 울릉도 일주 한 바퀴 2일차

울릉도에서의 2일차 시작.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는데 마침 버스가 지나갑니다. 울릉도에 있는 시내버스는 육지 시내버스와 달리 관광버스/고속버스 차량으로 운행됩니다. 버스에는 울릉도 캐릭터 오징어 오기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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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절기 울릉도 버스 운행 시간표. 울릉도는 계절마다 버스 운행 시간표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버스를 타기 전 잠시 시간이 남아 어젯밤 보지 못했던 동네 주변을 둘러봅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자세히 보니 수협 로고가 꽤 예쁩니다.

 

 

 

저동항에서 잡아온 오징어를 담는 모습. 오징어 분류 작업을 하는 많은 분들은 외국인이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또 다시 바다를 건너 울릉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펭귄 조형물은 얼음을 받는 곳입니다. 설마 펭귄이 아닌... 갈매기인가?

 

 

 

울릉도 관광 지도. 지도상에는 저동항부터 관음도까지 미완성 표시인 점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기준 울릉도 일주도로가 완전 개통된 상태입니다. 도로이기보다는 터널에 더 가깝지만요.

 

 

 

저동항 방파제에서 바라 본 울릉도 저동리 모습입니다.

 

 

 

촛대바위 지명 유래


옛날 저동마을에 한 노인이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조업을 나간 노인의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상심한 딸은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로 며칠을 보내다 불현듯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생각에 바닷가에 가보니 때마침 돛단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딸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배가 있는 쪽으로 파도를 헤치고 다가갔다. 그러나 거센파도에 점점 지쳐갔고, 딸은 그 자리에 바위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이 바위를 촛대바위 또는 효녀바위라고 부른다.

 

해피엔딩이나 교훈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난 촛대바위와 얽힌 이야기...

 

 

 

 

 

 

 

저동 해안산책로


저동 해안산책로는 도동 해안산책로와 이어지며, 울릉도 초기 화산활동 당시에 만들어진 화산암으로 이루어져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며 볼 수 있는 암석은 주로 현무암이며 베개용암, 기공, 행인, 암맥, 해식동굴, 해안폭포, 용암류, 크링커, 하이알로클라스타이트 등 다양한 특징들이 있다.

화산암 : 지표로 분출된 마그마가 급격히 식어 굳어진 암석
베개용암 : 용암이 물 속에서 분출하여 만들어진 베개모양의 암석
암맥 : 마그마가 기존 암석의 틈을 따라 올라와서 생성된 암석
기공 : 용암이 식을 때 용암 속의 기체가 빠져나가지 못 하고 암석에 만든 구멍
행인 : 광물로 채워진 기공
클링커 : 흐르는 용암의 표면이 굳은 후 부서져 생긴 조각
하일알로클라스타이트 : 물 속으로 흘러 들어간 용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깨진 조각

 

 

 

 

울릉도 여행 마지막날 알게 된 사실인데... 로드뷰에서 도로에서 촬영한 모습 외 바다에 촬영한 울릉도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울릉도의 마지막 날은 해안 일주 버스를 타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습니다. 첫날 저동항에서 여행을 시작했으니 처음 걷기 시작한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게 되었습니다.

 

 

 

몇 십 분 넘게 걸었던 터널을... 버스는 단 1-2분만에 통과했습니다. 2일 동안 고생하며 걸었던 길을 버스는 단 1시간만에 이동했습니다. 울컥하기도하고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그리움만 쌓이네 등 7080 노래가 흘러나왔고 시간 여행을 끝내고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걷지 않고 차를 타고 울릉로를 여행했다면 길가에 어떤 꽃이 폈는지 발견하지 못했을거고, 우연히 만난 숲 속의 작은 카페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겁니다. 

 

 

 

울릉도의 해안도로는 2020년 12월까지 공사가 진행됩니다. 버스로 울릉도 한 바퀴를 돌고 어제 들리지 못했던 도동항 주변을 둘러봅니다.

 

 

 

도동항 근처 강치거리. 강치는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 서식했던 바다사자로 현재는 멸종된 상태입니다.

 

 

 

여행을 하면 한 끼 정도는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꼭 먹는 습관이 있는데요, 울릉도에도 햄버거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롯데리아를 방문했습니다. 다만... 울릉도는 특수 매장으로 점심 세트 메뉴도 없을 뿐만 아니라 판매되는 햄버거의 종류도 적었습니다. 또한 세트 메뉴는 무조건 라지 세트만 가능했습니다 ㅠ 설악산에서 먹었던 창렬(?) 롯데리아가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관광지를 여행할 때 굳이 햄버거를 먹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할 떄 햄버거 먹는게 낙이었는데...

 

 

 

 

 

 

 

2박 3일동안 울릉도를 여행하며 처음 마주친 강아지! 울릉도에는 길고양이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길강아지들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도동거리에서 누군가 키우는 강아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명이 김밥을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울릉도 사람들은 겨울이나 비수기 때 외국이나 육지로 여행을 많이 간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모습을 간직한 아궁이. 옆에 땔감이 있는걸 보면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울릉도 길거리에서 본 강낭콩 꽃, 꽃댕강나무, 결국 이름을 찾지 못한 울릉도 지천에 펴있던 하얀 꽃.

 

 

 

옛날 울릉도의 모습.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울릉도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지금도 울릉도에 들어오려면 긴 시간과 고생을 해야하는데 저 때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옛날 사진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울릉도에 있는 뉴욕뉴욕 카페입니다. 왜 이름을 뉴욕으로 지었는지 여쭤봤더니 사장님이 한 때 뉴욕에서 사셨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다른 음식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에 6-7천원 할까봐 겁 먹었는데 커피는 다행히 관광지 물가 강릉과 비슷했습니다. 2층 옥상에는 인도 느낌 나는 알록달록한 의자와 식탁이 있습니다.

 

 

 

 

 

 

 

강릉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동항 여객선터미널로 가는 길, 닭새우와 고래를 만났습니다.

 

 

 

오징어를 싣은 차량(?)이 지나가는게 신기해 사진을 찍었는데, 도로에 오징어 한 마리를 남겨놓고 갔습니다. 울릉도에 살았다면 주워가는건데...

 

 

 

아까 먹지 못했던 김밥에 도전했습니다. 사실 명이김밥을 먹고 싶었는데 저동에서 명이김밥 파는 곳을 찾지 못 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먹는 김밥은 뭔가 더 특별할 줄 알았는데 가격만 더 비쌀 뿐, 육지에서 먹는 김밥과 똑같았습니다. 굳이 울릉도에서 일반 김밥을 먹을바에 육지로 나가 같은 가격으로 좀 더 알찬 김밥을 먹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울릉도를 떠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야옹이가 저를 배웅(?)해줍니다. 야옹아 안녕 잘 있어. 배 시간이 남아 근처 공원, 관해정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이하게 교회 예배당에서 사용하는 의자를 가져다 놓았네요. 

 

 



관해정 유래

이곳은 저동 앞바다의 촛대바위 뒤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라 하여 관해정이라 부르며, 개척 당시 관해정 부근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후박나무 숲이었으나 개척민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논밭을 만들어 점차 울창했던 숲은 사라지고 현재 몇 그루의 후박나무(수령 350년 정도)들만 보존되어 마을 내 유일한 숲으로 남아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어왔다. 또한 개척 당시부터 마을 산신당이 1960년경까지 있다가 이후 울릉고등학교 뒤편으로 이전되었지만 현재에도 일명 이곳을 제당으로 부르기도한다.

1882년 조선정부에서 빈섬으로 관리해 오던 울릉도를 사람이 거주 할 수 있도록 개척령이 반포되자 울진에서 정감록을 신봉한 전재환 일가가 피난지라는 이유로 울릉도로 이민해 올 때 식솔로 함께 이주해 온 배상삼은 힘이 천하장사인 무부였다. 그는 사동의 과부를 보쌈하여 관해정 앞에서 대장간을 차려놓고 농기구를 만들어 팔며 거주했다. 당시에 울릉첨사로 순시차 입도한 평해군수 조종성은 배상삼을 도수로 정하여 섬을 관리토록 하였는데 배도수가 왜인들이 무단으로 건너와 벌목하는 것을 혼자 힘으로 20여명을 상대하여 몰아낸 이후로 왜인들은 몇 년간 얼씬도 못하였다.

1894년경 가뭄과 쥐떼로 흉년이 들어 개척민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부유층의 창고를 강제로 수색하여 수십석의 곡물을 모아 나누어주어 굶어 죽어가는 수백명을 살려 생명의 은인이 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 때에 왜인들로부터 생필품을 구입해서 개척민들에게 되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몇몇 상인들이 배도수로 인하여 왜인들이 오지 못하자 상업을 할 수 없어 그를 죽이기로 모함하였고, 배도수는 태하성하신당제를 지낼 때 이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의 시신은 이곳 관해정 앞에서 화장장으로 치러졌다.

1962년 10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및 대통령권한대행 박정희 대통령은 군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하였는데 저동항내까지 군함이 들어 올 수 없어 전마선을 타고 뭍으로 내릴 때 발을 헛디뎌 바닷물에 빠졌는데 방파제가 없어 고생하는 주민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저동항 방파제를 건설할 것을 지시하였고 다음해인 1963년 9월에 울릉도민들은 이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모금을 하여 박정히 대통령 순찰비를 항만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세웠다. 저동항은 1980년도에 준공되었고 당시 동해안에서 두 번째로 큰 방파제로 동해의 어업전진기지가 되었다.

관해정은 저동마을의 정월 대보름, 팔월 한가위 등 문화행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었고, 50년대와 60년대에는 남면 그네뛰기 대회도 매년 열리던 곳으로 마을 내 행사가 있으면 의례히 이곳으로 모이는 장소로 주민들의 가장 사랑 받는 곳이었다. 관해정을 중심으로 큰모시개, 중간모시개, 작은모시개 마을로 나뉘어져있으며 참고로 저동마을은 개척 당시 이곳 해변에 모시가 많이 자생해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은 포구란 뜻으로 모시개라 하였다. 이후 행정명을 제정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 저동이라 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깍끼등, 주사골, 줄맨등, 숯골, 내수전, 신흥동, 와달리, 용바위골 등 자연지명을 가진 마을이 산재해 있으며, 주변에는 촛대바위와 북저바위 대섬(죽도), 봉래폭포, 풍혈(바람구멍), 해안산책로, 내수전약수터, 일출전망대와 개척민들 애환이 서려있는 내수전 둘레길이 있다.

 

 

와... 이거 안 읽고 갔으면 진짜 아쉬울뻔... 1916년 저동항의 모습과 지금 저동항을 비교해보면 천지개벽한 모습입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강릉으로 가는 배를 탑승하러 저동 여객선터미널로 갑니다.

 

 

 

갈매기와 제비, 고양이와 인사하고 오늘 강릉까지 데려다줄 씨스타 11호에 탑승합니다.

 

 

 

강릉에서 울릉도로 들어올 때도 미스트롯이 TV에서 방영되었는데 울릉도에서 강릉으로 갈 때 역시 미스트롯이 켜져있습니다. 담당자가 분명 미스트롯 팬인게 틀림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육지와 울릉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연령대는 꽤 높은 편인데 (교통비, 물가 등이 비싸서?) 중장년층을 위해 미스트롯을 틀어놓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이제 다시 강릉으로 돌아갑니다. 강릉항에 도착하고나니 밤이 되어있습니다. 안목항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강릉 사람이 다 되었나봅니다. 이것으로 2박 3일간 울릉도 여행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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