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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온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주변은 이제 익숙해졌고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딜 가기 위해 길을 물어보았던 입장에서 이제 오히려 관광객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지역 주민들만 아는 숨겨진 맛집도 알게 되었고, 전에는 검색해서 탑승했던 버스도 이제는 검색하지 않고 척척 탈 수 있게 되었다. 강릉에 있는 동안 강릉다움이란 무엇일까, 강릉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언젠가 어두운 밤, 강릉에 있는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를 내려왔다. 꼬불꼬불하고 거친 길을 내려오며 강릉은 참 거칠고 척박한 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자연환경은 강릉의 음식 문화에도 나타난다. 강릉 지역의 음식들은 과거 먹을 것이 귀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나 메밀로 만든 감자옹심이, 막국수 등이 발달했다. 또한 사람들은 국물을 우릴 재료가 귀해 고추장과 된장으로 국물을 내 장칼국수를 끓여먹었다.

옛날 강릉 사람들은 서울로 가기 위해 대관령을 넘어야 했다. 산을 넘는 동안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맞서 싸워야 했고 운이 나쁘면 때로는 호랑이를 만나기도 했다. 지금 강릉은 강릉선 KTX의 개통으로 2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강릉은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지나야 했다. 강릉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가기도 힘든 고립된 땅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강릉은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고 보듬어주는 곳이 될 수 있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세워지기 전,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는 강릉에 있는 오대산 소금강에서 신라의 부흥을 도모했다. 한 때 강릉이었다가 지금은 양양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하조대에는 고려시대 새나라를 꿈꿨던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혁명을 준비했던 곳이다. 율도국이라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홍길동전을 쓴 허균 역시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모두가 가난했던 때,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강릉 주변의 거친 바다로 나갔고 깊은 산속 탄광 안으로 들어갔다.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인 주문진은 바다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도시가 성장했다. 사람들은 강릉이라는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갔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서울이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폐쇄적인 도시라면, 강릉은 폐쇄적이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도시인 것 같다. 태백산맥의 숲과 동해 바다 속에 다양한 동물과 나무, 물고기들이 살고 있듯이, 강릉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어주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을 보듬어주었다.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지친 사람이라면, 어떠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라면 강릉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지금껏 그랬듯 강릉의 산과 바다가 여러분들의 꿈과 고민을 너그럽게 감싸주고 묵묵히 보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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