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다방 야매소설 006
브로콜리 별빛
지은이 강보더콜리
아이들의 히어로, 뭐든 다 할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름답게 빛나는 별빛 주영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본인의 꿈마저도 편식하려 한다.
“근데 주영쌤은 야채 안 먹나 봐?”
“네? 아... 제가 브로콜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래? 얘들이 보고 배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주영쌤 어렸을 때 야채 안 먹는다고 부모님 속 좀 썩였겠어.”
“네?”
어린이집 원장과의 식사였다. 우리 어린이집은 매월 돌아가며 한 명씩 원장과 밥을 먹는다. 원장은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장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식사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원장과의 식사는 대부분 직원들의 부족함에 대한 질책으로 시작해 항상 좀 더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아가는지 모른 채 원장과의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난 뒤, 일이 남아 다시 어린이집으로 돌아갔다. 문 앞에서 퇴근하는 주임 선생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주영쌤, 원장이랑 밥 잘 먹었어?”
“네, 잘 먹었어요.”
“그래? 밥 먹었으면 바로 퇴근하지 왜 다시 왔어?”
“일이 좀 남아서 마무리하려고요. (주임쌤이 뭐 시켜서 정작 제가 해야 할 일을 못 했거든요 ^^)”
“그래? 민지쌤이랑 잘 준비하고 내일 봐. 난 일이 있어 먼저 간다. 수고.”
“아 네...”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원장보다 주임쌤이 더 얄밉다. 민지쌤과 계획안과 교구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주영쌤, 얼추 끝난 거 같죠? 근데 배 안 고프세요? 저 사실 저녁도 못 먹었어요... 힝... 올해 목표가 끼니 거르지 않고 잘 챙기는 거였는데.”
“그러네요. 간단히 편의점에서 뭐라도 간단히 먹고 갈래요?”
“쌤, 완전 좋아요. 전 살찌니까 컵누들 딱 하나만 먹을 거예요. 다른 걸로 저 유혹하시면 안 돼요!”
“저 사실 원장님이랑 밥 먹으면서 라면 완전 땡겼어요. 가시죠. 렛츠고~!”
민지쌤은 컵누들을 시작으로 소시지와 삼각김밥, 냉동 만두까지 해치웠다. 민지쌤 대폭주의 날이었다.
“하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래서 제가 살을 못 빼나봐요. 근데 주영쌤은 일하는 거 안 힘드세요?”
“네? 힘들죠.”
“근데 어떻게 버티세요?”
“그냥 버티는거죠. 아이들 보면 그래도 귀엽고 순수해서 그게 힘이 되나봐요.”
“오 주영쌤 좀 멋진데요?”
‘내가 멋진가?’
편의점 매장 음악으로 권진아의 위로가 흘러나왔다. 민지쌤과 나는 한동안 서로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영쌤, 저기 보이세요? 가끔 늦은 밤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보면 밤하늘의 별 같다는 생각을 해요.”
“민지쌤, 오늘 낭만적인데요? 저 멀리 우주에서 이곳을 봐도 반짝이겠죠? 그럼 저희도 별인건가요? 키키키. 이렇게 민지쌤이랑 이야기하니 넘 좋네요.”
밤은 깊어졌고 여느 때처럼 해가 다시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원장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표정이 굳어있었다.
“자, 오전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
“근데 주영 선생님과 민지 선생님은 고작 이딴 거 준비하느라 어젯밤 늦게까지 야근한 거예요?”
...
“키즈노트에 사진 올리고 댓글 다는 거 신경 써서 달아주세요. 통화도 하셨죠? 앞으로는 좀 더 꼼꼼하게 기록해 주시고요.”
...
“나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일하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세상 참 편해졌네...”
오전 회의가 끝난 후 민지쌤이 말을 걸었다.
“주영쌤, 오늘 원장 왜 저래요?”
“그러게요.”
“아... 저 이곳과 안 맞나봐요. 원장은 개짜증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함께 화이팅 해봐용!”
민지쌤의 희망과 달리 사건사고가 많은 하루였다. 준우는 오늘 하루에만 오줌을 2번이나 가리지 못하고 바지에 쌌다. 그리고 퇴원을 1시간 앞두고 또 한 번 실수를 저질렀다. 부랴부랴 민지쌤이 뒷수습을 하고 있는데 원장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민지쌤, 지금 뭐 하고 계세요?”
“바지에 실수한 아이가 있어 손빨래하고 있습니다.”
“네? 뭐라고요? 민지쌤, 저기 세탁기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저 세탁기 고장 났는데요...”
“고장 났으면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지난주에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고쳐 달라고 계속 이야기하셨어야죠!”
“고장났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요...”
“자꾸 말대꾸 할래요? 오줌싼 얘 준우죠? 내가 엄마 없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내가 이래서 이 동네를 싫어해... 다른 곳으로 가든가 해야지 참...”
마침 그 자리에는 준우가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준우의 귀를 막고 이야기했다.
“민지쌤, 준우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준우야, 선생님이랑 가자.”
준우를 잠시 다른 선생님께 맡기고 다시 세탁방으로 돌아갔다. 민지쌤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 세탁기 고장 났다는 몇 번이나 말씀드렸어요. 그때마다 고쳐준다고 하셨는데 원장님이 지금까지 안 고쳐주신 거고요.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얘들 앞에서 그런 말하시면 어떡해요.”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주영쌤 말 이상하게 한다?”
“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해요.”
“주영쌤? 지금 말 다 했어?" 예쁘다고 오냐오냐해줬더니 이제 보이는 게 없구나? 하, 참... 기가 막혀...”
그 일이 있고 난 뒤, 소식을 들은 주임쌤이 찾아왔다.
“주영쌤, 왜 그랬어. 원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제가 왜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잘못은 원장님이 하셨죠.”
“어머머! 주영쌤 그렇게 안 봤는데, 고집있네. 이런 상황에서는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주영쌤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구나?”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그러다 원장님이 나오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이 바닥 좁은 거 몰라? 가만 보면 주영쌤은 이럴 땐 생각이 어리네...”
그로부터 며칠 뒤, 원장은 나와 민지쌤에게 앞으로 출근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퇴근길, 정리한 짐을 챙기며 민지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주영쌤, 괜히 저 때문에 그만두시는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에이 무슨 민지쌤 때문이에요. 원장 때문이지. 안 그래도 여기 오래 못 다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요...”
...
“주영쌤은 참 대단한 사람 같아요.”
“네?”
“자기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저는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어렸을 때는 먹기 싫은 음식도 엄마한테 혼날까 봐 억지로 먹었고, 가기 싫은 학원도 억지로 다녔어요. 지금도 원장이 뭐라고 할 때도 내 기분보다는 원장 기분에 맞춰 쭈구리처럼 가만히 있었고요.”
...
“하, 주영쌤, 그나저나 저희 어떡해요. 다른 어린이집 지원하면 원장한테 평판 조회 갈 텐데... 원장이 절대 좋은 말 안 해주겠죠?”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있다. 주사 맞기 전, 아이들은 주사바늘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지만 정작 주사가 들어가는 순간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당시에는 무섭고 걱정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별거 아닌 것들.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그로부터 며칠 뒤, 민지쌤에게 카톡이 왔다. 다른 어린이집에 취업했다는 소식이었다. 컵누들 딱 하나만 먹겠다면서 대폭주 했던 날이 떠올라 살포시 웃음이 나왔다. 민지쌤은 어디에서든 잘 살 것이다. 문제는 나인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다시 어린이집으로 갈까? 아님 임용시험을 준비할까? 꼭 어린이집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관련된 일로 진로를 바꿔볼까? 이런저런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시 카톡이 왔다.
“까톡”
준우 어머님이 보낸 선물과 편지였다.
주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만두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그만두게 된 계기가 준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약소한 선물이지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친구가 유아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급하게 사람을 찾고 있어요.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주영 선생님은 현장 경험이 있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담가지지 마시고 관심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 주영 선생님은 잘하시리라 믿어요. 그럼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두근두근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결정된 건 없지만,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준우 어머님이 보낸 문자를 보고 언젠가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내 이름 주영의 영은 종종 빛날 영(煐)이 된다고. 그러니 주영이 너는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라고 말했다. 사는 게 깜깜해질 때면,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스스로를 떠올려 보라고 이야기했다.
만약 다른 세계에 있는 주영이가 지금의 나를 보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미래의 주영이가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어쩜 그 이야기는 내가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주영이 넌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해낼 거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주영이가 주영이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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