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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방 야매소설 005] 엔트로피

강다방 2025. 8. 7. 18:47

 

 

 

사진: UnsplashNASA

 

 

강다방 야매소설 005
엔트로피
지은이 강트로피

 

 

과학 기술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그러기 위해 그 누구보다 자신을 먼저 따뜻하게 보듬어줬으면 하는 서진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무작정 달리기에는 이제 나는 지쳐있는 것 같다.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데 내 몸은 조금씩 느려진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 16.2M]
[에너지 잔량 3%. 예비 전원 사용 활성화]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 8.1M]
[에너지 잔량 1%]
[중추 프로세서 과열]

안 돼. 제발! 조금만 더... 이게 나의 한계인가?

[삐삐삐]
[시스템이 종료됩니다]
[퍽-]


그렇게 나는 트랙 바닥에 쓰러졌다. 결승선을 1M 남긴 거리였다. 내 이름은 서진 5510. 로봇이다. 서진 뒤에 있는 5510은 일련번호. 5510번째 만들어진 서진이라는 뜻이다. 나는 달리기 로봇이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운동 경기는 인간을 위한 경기였다. 하지만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가 대중화되고 인간과 기계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 달리기 경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 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시력을 보정해 주는 안경과 렌즈도, 무릎의 충격을 줄여주는 러닝화도 결국 기술이다. 시간이 지나며 안경과 렌즈는 스마트 글라스로, 러닝화는 로봇 슈트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간만의 전유물이었던 스포츠 역시 사이보그와 로봇으로 대체됐다.


[삐-]

눈을 떴다. 연구실 천장이 보였다. 내 팔과 다리에는 여러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태백산맥 산골짜기에서 생산된 풍력발전소 전기를 으뜸으로 친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수산물이 별도의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아 신선함을 유지하듯,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 역시 송배전 과정의 손실이 최소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밤새도록 게임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잠들었고, 다음 날 배터리가 완충되어 일어난 기분이었다. 그때, 강박사님이 말을 건넸다.

“위험했어. 자꾸 예비 전원까지 사용해 블랙아웃되면 다음번에는 못 깨어날 수도 있어. 큰 일이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는데...”
“저도 그건 아는데 제 마음대로 안 돼요. 설계에 문제가 있나 봐요. 그나저나 경기는 어떻게 됐나요?”
“로봇 경기를 반대하는 순혈인간들의 방해로 중단됐어. 오히려 전원이 꺼진 덕분에 전자기파 공격에도 무사할 수 있었지. 다른 로봇들은 지금 난리도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순혈인간들은 일체 로봇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로봇과 사회 시스템을 파괴하는 급진 단체였다. 그들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있지만, 태양의 돌이라 불리는 것을 사용해 로봇과 전자 시스템을 공격했다.

연구실 문이 열리고 이박사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에게 다가와 충전 단자에 딱밤을 때렸다.

“아야”
“으이구 잘하는 짓이다. 자기 제어도 못 하고 블랙아웃이나 되고. 그러다 진짜 용광로 다리 건널래? 조심 좀 해. 로봇이라고 몸 막 쓰지 말고. 기계도 365일 쉬지 않고 계속 작동하면 뻑난다. 적당히 쉬어야 베어링도 오래오래 가는 법이라고!”

나도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근데 그게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그러게 프로그래밍 좀 잘하지. 강박사님과 이박사님은 연구실에서 나를 만든 개발자다. 인간으로 치면 엄마 아빠 같은 존재. 서로 스타일은 다르지만, 둘 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걸 안다. 

연구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신경 쓰고 작동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져서일까, 내 기록은 어느 순간 최고치를 찍은 뒤 하향세를 타고 있다. 끝이 없는 심연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정상을 찍기 전에는 무작정 달리면 됐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충전 캡슐 속으로 들어갔다. 캡슐 속에서 몇 날 며칠을 계속 웅크려 있었다. 하필 결승선을 1M 남기고 쓰러지다니... 무엇이 잘못된 걸까? 초반에 에너지 배분을 잘못했을까? 아님 풍속과 저항을 잘못 계산했을까? 무작정 달리기에 지친 감정, 결승선을 앞두고 조금씩 느려지는 몸, 쓰러지기 전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머릿속에 반복 재생됐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심연으로 들어갔다.


[띠링-]
[바이오 신호 경고]
[신체 기능 유지를 위해 적당한 움직을 유지하세요]
[에너지 잔량 100% 완충 상태, 과충전 주의]

귀찮아...

[띠링-]
[기기 외부 정기 검사 1시간 전 알림]
[검사 일자 변경]
[검사 일자 변경 가능 횟수를 초과했습니다]


에휴... 오늘 정기 검사 받으러 가는 날이구나.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충전 캡슐 밖으로 나갔다. 시티 센터에 있는 정부 공인 검사소에서 외부 정기 검사를 마쳤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새로 생긴 충전소에 들러 전기 한 팩을 시켰다. 창문 너머로 마을과 바다가 보였다. 부지런히 이곳저곳 움직이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을 보니 내 몸 안의 회로도 저렇게 작동되지 않을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고민하는 것들도 저렇게 티끌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보니 거센 바람 때문인지 구름이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주변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정작 나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자율주행차와 드론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새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고 이제는 창문 밖에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도시항공교통 기술마저 상용화되었다. 경기에 참여하던 로봇들도 점점 고도화됐다. 내가 경기에서 에너지를 분배하지 못하고 쓰러진 것도 내가 가진 기술의 한계 아닐까? 나는 왜 로봇인데 왜 지친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밖으로 나온 김에 가까운 바다로 향했다. 해변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누군가 근거리 통신 메시지를 보내왔다.

[야 이게 누구야. 이서진?]

나와 같은 연구실 출신 지윤 5510이었다. 지윤은 단거리인 나와 달리 장거리용으로 만들어진 로봇이었고 재미있게도 일련번호가 5510으로 나와 같아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너 경기중에 뻗어서 멈췄다며? ㅋㅋㅋ 자기 페이스 조절도 못 하고 꼴 좋다]
[뭐래. 그런 거 아니거든?]
[장거리에서는 페이스 조절이 필수야. 아무리 초반에 치고 나가도 힘 조절을 잘 못하면 결승선까지도 못 가보고 실격당하기 100억 퍼센트다]
[쳇. 넌 달리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진 적 없어?]
[없긴 왜 없겠냐? 근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뛰면 그만이야. 누구나 언젠가는 쓰러지기 마련이고. 진정한 고수는 그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로 판별되지.]
[그래?]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
[우리가 기대하는 것의 70-80%만 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래. 우리 코치님이 그랬어. 그러니 니가 생각하는 100%를 달성하지 않았다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배터리도 효율로 보면 100% 완충하는 것보다 조금씩 덜 충전하는 게 좋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난 마음이 좀 편해진달까? 근데 너 자꾸 누나한테 반말할래?]


나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내부 알람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일몰 30시간 전, 골든아워가 곧 시작됩니다]

푸르렀던 하늘은 차츰 붉게 변했다. 해 질 무렵 태양은 지평선과 가까워지며 따뜻한 빛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하늘은 푸른 빛을 띤다. 하지만 일몰 무렵, 태양의 고도각이 낮아지며 땅과 가까워지고 대기에 있는 여러 입자를 통과하며 골든아워라 불리는 따스한 빛을 만들어낸다. 어둠이 찾아올 때 역설적으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빛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너 강박사님 다른 연구실로 간다는 소식 들었어?]
[어? 뭐라고?]
[강박사님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어떻게 우리를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
[뭐 그럴 수도 있지]
[뭐야 누나는 안 서운해?]
[당연히 100억 서운하지. 근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잖아? 더 좋은 조건으로, 그곳에서 박사님이 연구하고 싶었던 분야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결정 아닐까?]
[그래도 난 서운해]
[으이구, 우리 서진이 어른 되려면 멀었네. 서운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게 어른의 세계란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차츰 짙은 남색으로 변했고 이윽고 검은색이 되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너 지구의 자전 속도가 몇인지 알아?]
[갑자기 왜? 위치에 따라 다른데 우리나라 서울 기준으로 계산하면 1,325km/h]
[맞아.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말한 속도로 지구는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하고 있어. 가끔은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참 애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그리고 저 먼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우리가 지금 보는 저 반짝이는 별처럼 보이겠지? 저 안에는 평행우주처럼 또 다른 내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난 힘든 일이 있을 때 밤하늘을 봐. 그러면 조금은 위안이 돼.]
[응? 우리가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건, 빠른 기차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야? 그리고...]
[으이구. 낭만은 1mm도 없는 녀석]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 순혈인간들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건물들이 길가에 보였다. 연구실에 가까워질수록 탄 냄새가 더 강해졌다.

[설마... 연구실이...?]

“박사님! 강박사님! 이박사님!”
“어디 계세요?”
“엉엉...”

[야 서진 5510! 운다고 뭐가 해결돼? 열화상 카메라나 작동시켜 봐]

[열화상 기능 작동]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명체 발견]

파괴된 연구실 한쪽 벽면에서 무언가를 고치고 있는 강박사님을 발견했다.

“박사님 괜찮으세요?”
“어? 너희들 왔니? 난 괜찮단다. 이박사가 조금 다쳤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서 자가 키트로 치료하고 지금은 쉬러 갔단다.”

“헉, 연구실 시설이 많이 부서졌네요. 그동안 연구했던 것들은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연구했던 것들은 우리 머릿속에 있으니 괜찮을 거다.”
“잠깐 커피 한잔할까?”

박사님은 커피 한 잔을, 나와 지윤 5510은 전기팩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커피 보이니?”
“네”
“시간이 지나며 뜨거운 커피는 식겠지? 얼음이 들어있는 차가운 커피는 어떻게 될까?”
“컵 안에 있는 얼음은 녹고 커피는 상온에 가까워지겠죠?”
“그래 맞아. 이처럼 우리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당연한 것 같아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로 하지.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는 말 알고 있니?”

내가 말하려는 순간, 지윤 5510이 대답을 가로챘다.

“네 그럼요.”

[열역학 제2법칙.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설명하는 물리 법칙. 즉, 자발적인 과정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완전한 효율을 갖는 열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역시 지윤 5510은 보통 짬밥이 아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하고, 좀 더 쉽게 말하면 결국 모든 것은 망하고 사라진다는 뜻이지.”
“와 그렇게 들으니 슬프네요.”
“그래 어떻게 보면 슬프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진 않단다. 오히려 더 소중하지.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엔트로피에 맞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 그러니 어떠한 상황에서건 그런 너희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 줬음 좋겠다.”

“자 그리고 이건 선물, 마지막 업데이트야. 내가 가진 모든 걸 담았단다. 다행히 순혈인간의 공격에도 업데이트 장비는 손상되지 않았어. 이번 업데이트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기능까지 넣고 싶었는데, 결국 완성하진 못했네... 내가 지금 개발하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혹은 내가 아닌 누군가는 그 기술도 만들어내겠지. 혹 다른 평행우주가 발견되고 존재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거 잊지 말고. 자 준비됐니?”
“네”

[업데이트 시작 3초 전]
[3]
[2]
[1]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자 하늘이 보였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였고, 근처 수풀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업데이트 시작]
[업데이트를 위해 전원이 종료됩니다]

“모든 원소가 별에서 왔다는 거 알고 있지? 그래서 우리의 몸도 별에서 만들어진 원소로 구성돼 있어.”

[3]

“너희들 역시 그렇고. 일부 사람들을 그걸 태양의 돌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태양의 돌에 대해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밝혀내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 비밀도 밝혀질 거야.”

[2]

“그리고 태양의 예상 수명이 약 100억 년인 것처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양의 돌도 각기 언젠가 수명을 다할 거야.”

[1]

“그러니 잊지 못할 삶을 살렴. 무엇보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지금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데 조금씩 기억이 흐려진다...]

[...]



옛날 고전 게임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도트로 그려진 별빛 밤하늘로 화면이 전환됐다.




게임을 종료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며칠째 방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과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별빛과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서진 5510이 보고 들었던 별빛, 풀벌레 소리가 이거였을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열역학 제2법칙처럼 시간이 지나면 방은 다시 어질러지고 나는 종종 넘어지고 좌절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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