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Jonathan Pielmayer
강다방 야매소설 시리즈 002
어서오세요. 민지네 구움과자입니다.
지은이 강마들렌
흑과 백을 넘어 다채로운 색을 구워내는 민지네 구움과자가 되길 바라며 민지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초이기적인 나조차도 요즘에는 죄책감이 드는 하루다. 요즘 나의 고민은 이것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내 행복이 우선인가? 누군가는 불행한데 나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어서오세요. 민지네 구움과자입니다."
오늘 첫 손님이 들어왔다. 잠깐 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잘 나가던 IT 대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다 최근 버블이 꺼지며 제 발로 회사를 나온(정확히 말하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영업자이다. 파이어족을 준비하다 회사를 나와 현재는 구움과자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 손으로 눌러보시면 안 됩니다."
"네, 죄송합니다. 혹시 이거 시식은 안 되죠?"
"네, 시식은 어렵습니다."
"다른 빵집은 전날 구운 빵 할인해서 팔던데..."
첫 시작부터 힘든 손님이었다. 오늘 하루가 힘들어질 것 같다. 휘낭시에를 손으로 눌러보던 손님은 구움과자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중년 남성이었다.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은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마들렌과 휘낭시에 등 구움과자 몇 개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왔다.
"총 15,500원입니다. 봉투는 100원인데 필요하신가요?"
"봉투는 그냥 주는 거 아니에요?"
그는 머뭇거리다 봉투 가격을 포함한 15,600원을 계산했다. 그리고 쭈뼛쭈뼛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런 거 사람들이 많이 사 먹어요?"
이런 거라니... 그는 나의 사랑과 애정이 듬뿍 담긴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이런 거라고 표현했다. 뭐라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그는 쭈뼛쭈뼛 다음 말을 꺼냈다.
"사실 저는 옆 건물 주인인데, 동네 발전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어요. 혹시 여기에 서명을 좀 해주실 수 있어요?"
단골 손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모래알 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가 건넨 서명서를 읽어봤다. 맨 위에는 '하남시를 사랑하는 모임'이라 적혀있었다. 하남시는 동네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펼쳐라 등 좋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대충 읽고 서명을 하려는 순간, 맨 아래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OO당을 해체하라'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이 아저씨는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았다. 나 최민지는 사내 정치와 뒤통수가 난무한 회사에서 팀장까지 올라간 나름 경험치 만렙 찍은 전직 회사원이었다. 훗 이 최민지를 너무 쉽게 보셨군요. 나는 태연하게 이렇게 물었다.
"근데 이 아래 문구는 뭔가요?"
그는 들켰는지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아, OO당이 없어져야 나라가 잘될 수 있어서... 우리 동네도 발전할 수 있고..."
"헐 이건 좀..."
나는 말끝 흐리기 스킬을 쓰며 똑같이 반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강렬했던 그와 첫 만남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종종 건물을 청소하고 관리하러 가는 길 매장에 방문했다. 때로는 이런저런 음모론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이만 가봐야겠다고 자리를 떴다.
그는 그 후에도 종종 매장에 들어왔다. 둘에 한번은 구움과자를 사갔다. 그의 방문이 마냥 반갑지 않았지만, 한 푼이라도 매출이 더해져 또 마냥 싫지만도 않았다. 역시 세상의 좋고 나쁨은 돈으로 결정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했다. 요즘 들어 추락하고 있는 매출 때문에 회사를 괜히 나왔나 후회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계엄 이후 간간히 방문하던 손님들의 발걸음이 똑 끊겼다. 매출이 반토막이 되었다. 파이어족이 되리라는 나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딸랑"
기다리던 오늘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민지네 구움과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복이 많으시네요.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으셨어요. 혹 조상님께 정성을 들여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쁘네요."
이를 악물고 강력분 포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마음을 다잡고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았을 때쯤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딸랑"
"저기 죄송한데... 집에 갈 돈이 없어요. 택시 탈 돈 만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하... 집이 어딘데요?"
"하남역 근처에요."
"하남역이면 버스 타고 가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버스를 싫어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쭈볏쭈볏 매장을 나갔다. 오늘따라 유독 이상한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세상 만만치 않다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이버 지도에 리뷰 알람이 떴다.
'여기 그냥저냥. 내가 집에서 만들어도 이 정도는 만들듯?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분위가가 좋은 것도 아니고 암튼 재방문 의사 없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굳이 저런 댓글을 다는 걸까? 마침 이전 직장 동료에게 카카오톡이 와 하소연을 했다.
'민지님 잘 지내고 계심?'
'승한님 저 오늘 넘 힘들었어요 ㅠ.ㅠ'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복이 많다는 사람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 지도에 달린 리뷰까지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그동안 나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영업을 시작하고 나니 벗어날 수 없는 불행의 늪에 빠진 기분이라고 넋두리를 풀어놨다.
'헐 민지님 힘내세요. 세상에는 343 법칙이라는 게 있데요. 10명이란 사람이 있다면 3명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해 주고, 4명은 관심이 없고, 3명은 아무리 잘하고 노력해도 싫어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세요! 평소 민지님답게 화이팅!'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말이 그날따라 마음에 와닿았다.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민지네 구움과자입니다."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 사람들을 위해 휘낭시에를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수량은 무려 100개! 마들렌 하나에 3,500원이니 다 합치면 35만원. 이 돈이면 당장 이번 달 전기요금은 낼 수 있을 터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대량 주문을 받기 위해 오늘 하루가 이토록 힘들었나 보다. 신나게 마들렌을 굽기 시작했다. 향긋한 휘낭시에 냄새가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그런데 다음날 문제가 발생했다. 마들렌을 주문한 장로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미리 예약금을 받아야 했는데 너무 들뜬 나머지 깜빡했다. 마들렌을 만들며 지금이라도 다시 연락해 예약금을 말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혹 예약금을 말하면 주문을 취소할까봐 연락하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아이고 내 사랑스런 마들렌들... 매장 한편에는 어제 야근하면서 만든 마들렌이 쌓여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 때 옆 건물 사장님이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그는 놀란 눈치였다.
“최사장 울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그는 여전히 존대와 반말을 섞어 물었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는 의외로 내 편을 들어줬고, 노쇼한 장로를 향해 지옥에 떨어질 나쁜 놈이라며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그러고는 이미 만들어진 휘낭시에를 자신이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참아왔다 서러움이 둑 무너지듯 터졌다. 원룸 사장님의 마음은 알지만, 수량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드시려고요?”
"내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한테 나눠주지 뭐.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뭐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그러면서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이니 나중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한 번 나오라고 했다. 슬쩍 서명서 한 장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쇼 사건 이후, 하루가 다르게 손님이 늘었다. 역시 나 최민지의 뛰어난 베이킹 실력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손님이 구움과자를 잔뜩 계산하며 이런 말을 했다.
“OO교회 다니는데 XX 집사님이 구움과자를 나눠주셨어요. 그때 너무 맛있게 먹어서 찾아왔지 뭐야..."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근데 비닐봉투는 100원이야?"
그 이후로 옆 건물 사장님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큰일이야"
“사장님이 구움과자를 많이 사주셔야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뭐? 그래 좋아. 그럼 오늘 남은 거 다 사 갈께.”
그는 얄미우면서 동시에 고마웠다.
“사장님 나 오늘부터 거리에 있는 쓰레기 줍고 다니기로 했어.”
“갑자기 왜요? 사장님 안 하시던 일 하면 큰일 나요.”
“뭐? 세상에 나처럼 착하고 바른 사람이 없어.”
“그래요. 쓰레기 줍고 다니신다니 인정해 드릴께요. 근데 사장님은 행복하세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세상은 사장님 맘대로 안 돌아가는데, 사장님은 항상 즐겁고 행복해 보이셔서요.”
“최사장 오늘 질문 좋았어! 이 세상은 말이야...”
그렇게 옆 건물 사장님의 긴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의 말을 한귀로 듣고 흘려 보내고 있는데 세상은 어쩜 어쩜 흑과 백, 0과 1로 나눠진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과 백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존재하고, 0과 1 사이에는 0.1부터 0.9까지 또 0.11부터 0.99까지 수많은 숫자가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각자의 정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종종 매장에 방문해 매번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설교하고 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민지네 구움과게 화이팅을 외쳤다. 처음에는 빈말로 들렸던 그의 응원이 조금씩 진심으로 느껴졌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되었건 더 행복해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정의이고 나는 불행한데 다른 이들은 왜 행복해보이는걸까?
다음날 평소와 같이 매장에 나와 영업을 시작했다. 옆 건물 사장님이 다른 일행들을 데리고 매장에 들어왔다.
"어머 여기가 그 휘낭시에 집이야?"
어... 근데 어딘가 낯 익은 목소리다. 설마... 그 때 그 휘낭시에 노쇼 예약 전화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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