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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방 야매소설 004] 구의 제안

강다방 2025. 6. 9. 11:31

 

 

 

사진: UnsplashIvan

 

 

 

강다방 야매소설 004

구의 제안

지은이 강냥이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잘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껏 잘 살았고, 잘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현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현은 B의 제안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B가 보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홈즈를 구하고 싶다면 아래 물건을 챙겨 접선 장소로 올 것. 허튼수작 부리면 홈즈는 무사하지 못하는 거 말 안 해도 알지? 경고는 한 번뿐이다.



접선 시간 : 다음 주 화요일 저녁 18시 45분
접선 장소 : 남대천 농산물 새벽시장
준비물 : 검은색 길고양이 똥 두덩이, 애플민트 뿌리 세 쪽, 강다방에서 파는 고양이 볼펜 한 개
- B -


준비물을 통해 B의 정체를 추측해 본다. 고양이 똥은 고양이들을 모으기 위해, 애플민트는 고양이 냄새를 숨기기 위함일 것. 고양이 볼펜은 왜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사님이 말을 걸었다.

“현, 정과장이 어디 갔을까? 그나저나 이번 씨앗 나눠주는 프로그램 반응은 어땠어? 얼핏 보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씨앗 나눠드리니까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아 그래? 다 현 덕분이에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약속 있는 걸 깜빡했네. 정과장 오면 나한테 연락 달라고 전해줘요. 그럼, 수고~”

내가 일하는 곳은 씨앤씨오 녹색터. 식물을 연구하는 연구소다. 이사님이 물어본 초록 퍼뜨리기 대작전은 씨앗 나눠주는 프로그램으로 식목일을 맞아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였다. 

과거에 사람들은 식목일에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이 집에서 식물 기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도시는 고층 건물로 채워지며 하늘과 더 가까워졌지만,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통하는 집은 오히려 찾기 어려워졌다. 많은 사람들은 식물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 실패해도 좋으니 사람들이 다시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초록 퍼뜨리기 대작전을 제안했다.

정과장님이 나타났다.

“정과장님, 이사님이 찾으셨어요.”
“아 그래요? 또 뭘 시키시려나... 지난번 초록 퍼뜨리기 대작전 시작할 때 심었던 양귀비 씨앗에서 신기하게도 싹이 났어요.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밥 먹으러 가시죠.”

점심은 평소 가던 임당식당으로 정해졌다. 회사에서 걸어서 5분. 반찬이 매일 조금씩 바뀌는 백반집이다. 요즘 밖에서 파는 음식은 냉동식품과 밀키트를 살짝 조리해 내놓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재료를 손질해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나물, 야채 반찬이 많이 나왔다. 밥을 먹으며 정과장님께 길고양이에 관해 물어봤다.

“정과장님 주변에 길고양이 본 적 있으세요?”
“길고양이요? 고양이는 왜요? 그러게요. 예전에는 주변에 길고양이를 많이 봤는데 어느 순간 찾아보기 힘들어졌네요.”
“도로가 커지고 넓어져서일까요? 뭐랄까 도시는 더 반듯반듯해지고 세련되어졌는데, 뭔가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아 강다방이라는 책방에 고양이가 가끔 출몰한다고 들었어요. 매장 앞에 자꾸 고양이가 똥을 싸놓고 가 골치 아프다고 했어요.”
“강다방이요? 거긴 고스트 타운에 있는 거 아니에요? 거기 좀 위험한 동네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고스트 타운이 옛날에는 강릉에서 가장 번화했던 동네였어요. 신기하죠?”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센트럴, 과거 신도시로 개발되었으나 시간이 지나 노후화되고 사람들이 떠나 폐허가 된 고스트 타운, 사람의 흔적조차 없는 와일드 필드 3곳으로 나뉘었다. 그때 구가 나타났다.

“아 오늘 오전 너무~ 힘들었어요. 퇴사 생각 간절합니다. 어? 두 분 이 반찬 안 드시는 거세요? 그럼, 제가 대신 먹습니다!”

나는 구가 절대 퇴사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 진짜 퇴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퇴사에 대해 말하지 않는 법. 그리고 구는 어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동네방네에 선언하고 다녔다. 반찬에 집중하고 있는 구에게 물었다.

“구님 혹시 남대천 농산물 새벽시장 가보셨나요?”
“그럼요. 유기동물보호센터 자원봉사 하러 갈 때, 셔틀버스 타는 곳이에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키운 야채를 가져와 팔았다고 해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공장형 농장이 아닌 동네 사람들이 텃밭에 직접 농사짓고 판매했다니 신기하죠?
“그래요? 그런데 구님 자원봉사도 하세요? 꽤 멋지네요?”

구는 반찬을 오물거리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현님도 관심 있으면 자원봉사에 참여해보는 거 어떠세요? 현님이 고양이나 강아지가 되었는데, 주인이 유기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슬프겠어요. 정과장님은 자신이 고양이나 강아지가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본 적 있으세요?

“그런 상상을 왜 하죠? 저는 개나 고양이가 아닌데요?”

정과장님이 말했다. MBTI가 T인 정과장님다운 대답이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도 구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세상을 떠나는 친구를 보면 슬프면서 뭐랄까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거잖아요.”

순간 구가 입은 티셔츠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티셔츠에는 감자튀김이 그려져 있었고 한쪽에 붉은 케첩이 묻어있었다.

“구님 케찹 묻었어요. 혼자 맥도날드 가서 맛있는 거 드시고 온 거 아니세요?”
“앗, 이게 뭐지? 잠시만요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홈즈가 걱정되어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 듯 마는 듯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씨앗 모종 관리와 삽수, 다양한 기온, 환경에 따른 식물의 성장 등을 연구했다. 

중간에 민원인도 응대했다. 초록 퍼뜨리기 대작전 때 씨앗을 받았는데 씨발아가 안 됐다고 항의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안 줬다고 했다. 왜 물 주는 걸 안내하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씨발아...

급하게 정과장님이 일 하나를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 일을 처리하다 보니 퇴근 시간까지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 홈즈는 무사할까?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밤, 한숨을 쉬는데 연구소에서 키우는 고양이 파드가 다가와 몸을 비볐다. 험난한 회사 생활의 낙이다. 고양이는 왜 이리 귀여운 걸까. 생존하기 위해 인간에게 귀여움받는 종으로 진화한 게 아닐까.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홈즈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늦은 밤 차를 몰아 강다방으로 향했다. 어두운 거리, 멀리서 노란 불빛이 보였다.

“저기인가?”

문을 열고 들어간 강다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인가?”

매장 안 한쪽에 메모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167쪽과
강다방 가이드 동네편 65쪽을 펼쳐볼 것
고양이 볼펜은 900원.
결제는 키오스크에 태그하여 결제 가능


그 순간 누군가 강다방 안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강다방 사장님인지 손님인지 한참을 고민하는 사이, 상대가 말을 걸었다.

“이 책 구매하고 싶은데요?”
“아 저도 손님이에요... 사장님이 지금 자리에 없는듯한데, 여기 있는 키오스크로 결제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는 강아지와 고양이 의학사전이라는 책을 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동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아 네... 동물 좋아하죠. 사실 저는 동물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동물이 좋아 수의사가 되었는데, 슬프게도 아픈 동물이 많아져야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리고 동물이 죽는 것도 숙명처럼 계속 봐야 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머리 식힐 겸 이곳에 왔어요. 앗, 제가 좀 주책이죠? 너무 많은 말을 했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수의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일상이 반복되면 그런 고민을 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타성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사는 사람들도 많고... 어쩜 그렇게 되는게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수의사가 떠난 뒤 홀로 남은 공간에서 잠시 사색에 잠겼다. 나는 왜 식물연구원이 되었는가, 지금 잘살고 있는 걸까?

그때 창문 밖으로 검은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가로수 아래 풀과 흙에 몸을 뒹굴고 사라졌다. 고양이를 따라 급하게 밖으로 나갔지만, 고양이는 이미 사라졌다.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는 뭔지 모를 검은 덩어리가 몇 개 있었다.

“어? 고양이 똥이잖아? 뭐야 옆에는 애플민트도 있네. 이거 일이 쉽게 풀리는군. 설마 홈즈를 납치한 B가 강다방인가?”

검은 고양이 똥과 애플민트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아, 내일 출근 어쩌냐... 휴...”

B가 요구한 준비물은 모두 준비했고, 이제 내일 남대천 농산물 새벽시장으로 가면 홈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홈즈는 무사할까?

밤잠을 설친 뒤, 회사에 출근했다. 홈즈가 걱정되어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퇴근 시간이 ‘땡’되자마자 남대천 농산물 새벽시장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저 멀리 긴 코트를 입고 고양이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났다.

“B?”
“물건은?”
“여기.”
“저기다 놔.”
“홈즈는 어딨지?”
“홈즈는 행복하게 잘 있다. 물건 놔뒀으면 뒤로 물러서!”

준비한 물건을 놓고 뒤로 물러선 순간, B는 물건들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뭐지?”

B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저질 체력으로 결국 B를 놓쳤다. 켁켁...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 운동 좀 해둘걸...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야옹~”
“강다방에서 봤던 고양이인가?”

고양이는 다리 사이로 팔자를 그리며 자기 몸을 비볐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등을 비비며 하늘로 배를 깠다. 고양이의 애교에 고양이 배를 쓰담해줬다.

“어머 너 임신했구나? 아님... 설마 뱃살이니...?”

잠시 뒤, 고양이는 일어나 어디론가 총총 걸어갔다. 걸어가다 멈춰 뒤를 돌아보며 야옹거렸다.

“따라오라는 뜻인가?”
“야옹~”

한참을 가다 고양이는 한 건물 앞에 멈췄다. 문 앞에는 B가 쓰고 있던 가면 모양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고양이해방전선’이라는 문패가 달려있었다.

“야옹~”

고양이는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자리를 떠났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웠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모니터가 빛을 내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는 알 수 없는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곳곳에는 투명한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 고양이들이 갇혀있었다.

“설마 이곳은...”

상자 안, 고양이들은 잠이 들었는지 움직이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 가면을 쓴 자가 다시 나타났다.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제법이군. 이렇게 된 이상 진실을 말해주마. 이곳은 고양이해방전선. 우리는 고양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고양이를 가상 세계에 업로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홈즈 역시 지금 네 앞에 있는 기계 속에서 가상의 세계로 기억을 업로드하고 있지. 고통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행복의 세계로 말이야. 곧 끝날 거야. 어때 너도 고양이를 위해 고양이해방전선에 들어오는게?

“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장 그만두지 못해?”


“말이 안 되는 소리라니... 현, 너 설마 홈즈가 영원히 살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리고 홈즈에게 못 해줘서 미안했던 거 없어? 홈즈가 고통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살고 싶을까? 아님 아픔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세계에 살고 싶을까? 우리와 함께하면 더 많은 고양이를 자유롭게 해방할 수 있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군. 홈즈는 곧 자유와 영원의 몸이 된다!”

홈즈에게 미안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홈즈가 더 나이 들면 아플 일만 남는다. 과연 홈즈는 고통스럽더라도 나와 함께 하길 원할까? 홈즈를 고통없이 보내줄 수 있다면 그게 홈즈를 위한 일이 아닐까...

저 멀리 기계 안에 갇혀있는 홈즈가 보였다.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네가 뭔데 홈즈의 생사를 결정해?”

“자 저기 모니터 안에 이미 업로드된 길고양이들을 봐.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길고양이들은 이미 대부분 업로드 되었고 이제 반려 고양이들 차례다. 위대한 고양이해방전선의 앞길을 방해하지 마라!”

B가 모니터 보는 순간, 홈즈를 향해 달려갔다. B는 몸을 던져 나를 막았다. 서로 몸싸움을 하던 도중 그의 가면이 벗겨졌다.

“구?”
“정체를 들키다니 이거 유감이군. 현, 홈즈를 위한다면 잘 생각해 봐. 진짜 홈즈를 원하는게 무엇인지...”

구는 손을 뻗어 바닥에 있던 리모콘을 눌렀다. 홈즈를 업로드하던 기계에서 황홀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홈즈와 연결된 모니터의 숫자가 95에서 96, 97, 98로 올라갔다.

몸을 일으켜 다시 홈즈를 향해 달려갔다. 홈즈가 들어있는 투명한 통과 모니터가 연결된 선을 잡아 뽑았다.

“삐삐삐!”
기계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나왔다.

“안돼! 전세계 고양이들의 희망을 방해하고 망치다니! 용서할 수 없다!”

홈즈와 연결되어 있던 기계에서 차분하고 아리따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외부 충격 감지. 안전 모드 재부팅 시작”
“3, 2, 1”
“시스템을 다시 시작합니다.”

홈즈는 통 안에 새근새근 숨 쉬며 고이 잠들어있었다. 홈즈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홈즈, 늦게 와서 미안해...”

홈즈를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집에 온 뒤 경계를 풀고 처음 내 얼굴 옆에 다가와 누웠던 순간, 아파서 병원에 데려간 순간 등 홈즈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구가 말했다. 

“네가 뭔데 홈즈의 생사를 결정하냐고 물었지? 그래 이제 홈즈는 스스로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고통없는 자유로운 가상 세계로 갈 것인지, 아님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주인과 함께 남을지... 모든 건 홈즈에게 달렸어.”

그 뒤 나는 기억을 잃고 쓰러졌다.



*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났다. 출근 전 회사 근처 카페에 들렀다. 커피를 마시는데, 창문 너머 홈즈를 닮은 고양이가 보였다.

고양이가 멈춰 섰다. 서로 눈을 마주친다. 고양이가 꼬리를 살짝 구부리며 다가온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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