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다방 야매소설 007
여름, 가을, 겨울, 봄
지은이 강트레바리
계절의 흐름과 함께 한 뼘 더 성장했을 여러분께 글을 드립니다.
1. 민군의 이야기
점심을 먹고 산책 겸 카페에 갔다. 쟈스민차를 먹을 것인가 초코라떼를 먹을 것인가 고민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쟈스민차를 먹어야 하겠지만, 식후 노곤함을 이기기 위해서는 초코라떼가 제격이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
한참의 고민 끝, 결국 초코라떼를 선택했다. 초코의 진한 맛이 나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새로 생긴 약국이 보였다. 약국 앞에는 개업 기념, 고민 있는 사람을 위해 특별한 약을 처방해 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약국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꽃향기가 내 코끝을 스쳤다. 나는 향기를 따라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2. 민신의 이야기
오늘은 독서모임에 가는 날이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봤다. 머리에 흰머리 몇 가닥이 보인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문득 인생이 유한하구나, 인생 참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가는 길,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생길 때마다 속상했던 흰머리... 암세포 막아낸 흔적일 수도...”
하나씩 생기는 흰머리를 보고 슬펐는데, 암세포와 싸운 흔적이라니 내 머리에 있는 새치가 고맙고 기특해졌다.
독서모임을 알차게 끝낸 뒤 집으로 향했다. 집 앞 1층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 민군을 만났다. 형은 평소보다 신나 보였다.
“뭐야, 무슨 좋은 일 있어?”
좋은 일은 무슨.“
”뭐야, 오늘 왜 이래?"
“뭐래.”
오늘따라 형이 수상하다. 연애라도 시작한 건가?
3. 주옥의 이야기
무더운 여름을 지나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가을이 되었다. 평소와 같이 요가 수업을 들었다. 수업 마지막 즈음, 선생님이 숙제 하나를 내주셨다.
“한 주 동안 가장 자신에게 충실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찾아보세요.”
‘충실했던 순간? 그것도 자신에게?’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여느 때와 같이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시간에는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보통 동료들과 함께 밥 먹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공원의 나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렀는데 어느새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이구나’
순간 붉게 물든 단풍잎 하나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붉고 화사한 단풍이 참 예뻤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서 햇볕을 쬐고 있으니 내 마음이 충전됐다.
4. 주연의 이야기
원래 잘 먹는 편은 아닌데 요즘은 특히 더 땡기는 음식이 없다. 그래서 매번 끼니를 대충 때우게 된다.
언니 주옥에게 카톡이 왔다.
‘점심 먹었어?’
‘그냥 별생각이 없어서 지나쳤어.’
‘주연아, 밥 잘 챙겨 먹어.’
언니가 근처 카페 음료와 케이크 쿠폰을 보내줬다.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카페에 갔다. 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혼자서 초코라떼와 케이크를 먹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도 배가 안 찼는지 쟈스민차와 디저트를 하나 더 시켜 먹었다.
‘와 저 사람 잘먹네...’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 나 지금 집 근처 카페 왔어.”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고? 응. 왜?”
“라이브 바? 그래. 알겠어.”
곧 있으면 저녁 먹을 시간인데, 이미 케이크를 먹어서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5. 나영의 이야기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전하, 아니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당장 나영을 돼지우리에 투옥하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감옥에 갇혔다. 그것도 돼지가 우글거리는 감옥에... 얼마 전 본 스릴러 영화에서 굶주린 돼지우리 안에 사람을 넣는 장면이 떠올랐다. 돼지우리 한편에 돼지가 싼 똥이 가득했다. 앗 똥을 먹던 돼지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꿀꿀”
“안돼!”
순간 잠에서 깼다. 오래간만에 꾸는 꿈이었다. 그것도 무서운 꿈... 잠깐 근데 나 돼지꿈 꾼 건가? 그것도 똥 나오는 돼지꿈? 복권이라도 하나 사야 하나?
퇴근길, 복권 가게에 들어갔다. 실실 웃으며 들어가는 나를 어떤 여자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과연 돼지와 똥의 기운이 나와 함께 할 것인가? 미신을 믿진 않지만, 복권 덕분에 한 주가 조금은 더 기대되고 즐거울 것 같다.
6. 지현의 이야기
새로운 서비스 배포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에 돌입했다. 업무 시간 중에는 외부 업체와 다른 부서 사람들과 미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정작 내 작업은 퇴근 시간 즈음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연락들, 내가 결정해야 할 사안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휴...’
계속 사무실에 있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퇴근 시간과 맞물려 거리에는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갑자기 출출해져 회사 식대 한도를 꽉 채워 저녁을 주문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근처 약국에 들렀다. 약국에 들어가는 순간, 꽃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 약을 먹었는데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카페에 들러 음료를 한 잔 주문했다. 약과 커피를 함께 마시면 안 좋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쟈스민차를 선택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길가에 줄 선 사람들이 보였다. 복권집이었다. ‘복권에 당첨되면 지금 보다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에 앉아 다시 업무를 시작하기 전, 밤 12시 전에는 꼭 퇴근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
시간은 훌쩍 지나 12시가 넘어있었다. 오늘은 도저히 더 못 하겠다 싶어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땐,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분명 알람을 맞춰놨는데, 알람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망했다...”
예정되어 있던 회의를 뒤로 미루고 급히 회사로 뛰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회사 건물과 마주한 횡단보도 앞에 섰다. 오늘따라 유난히 빨간불이 길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는 순간, 회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빵빵! 끼이익-”
다행히 트럭은 내 앞에서 멈춰 섰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며 도로 위에 주저앉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분이 터져 나왔다. 도로 위에서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7. 민지의 이야기
“2025 KBO 한국시리즈.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7차전, 결승전. 여기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볼파크입니다.”
“올해는 한화 이글스가 창단 40주년을 맞은 해이자, 19년 만에 KBO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해인데요. 과연 오늘 경기에서 한화가 LG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오늘 한화가 우승하게 된다면, 지난 1999년 우승 이후 두 번째 우승이 되는데요. 현장에 나가 있는 강나영 리포터 연결합니다. 강나영 리포터?”
“네, 여기는 한화생명 이글스 볼파크. 이미 이곳은 축제 분위기입니다. 한화 이글스의 우승을 염원하며 많은 한화 팬들이 이곳에 나와 있는데요. 잠시 팬 한 분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강릉에서 온 이민지입니다.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강릉에서 서울을 거쳐 대전에 왔습니다. 멀리서 온 저를 위해서라도 오늘 한화가 꼭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8. 형우의 이야기
응원하던 야구팀 LG가 한화에 졌다. 얼마 전에는 16년 넘게 만났던 여자 친구와는 헤어졌다. 지하철이 한강 철교를 지나는 순간, 이어폰에서 김동률의 ‘산책’이 흘러나왔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창문 너머 노을이 내 마음을 물들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난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이제는 결혼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창밖으로 지난봄, 여자 친구와 함께 걸었던 여의도 벚꽃길이 보였다. 몇 년 전, 함께 갔던 불꽃축제도 떠올랐다.
‘매년 한화가 불꽃을 터뜨리니까, 이번엔 봐주자.’
지하철이 한강철교를 다 지났을 즈음,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서울역으로 변경했다. 서울역에서 강릉역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기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역 안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으며 통찰 너머 맞이방을 바라봤다. 파릇파릇해 보이는 20대 초반 커플이 보인다. 서로 오랜만에 만났는지, 반가워하며 포옹한다. 행복해 보인다.
‘쳇...’
9. 민군의 이야기
특이한 약국이었다. 한쪽 벽면은 건강식품과 약이 진열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쪽 벽은 서가로 책이 꽂혀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창문에 붙어있는 특별한 약을 처방해 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요.”
“안녕하세요. 네.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선택을 하면 하지 못한 선택이 떠오르고, 다른 선택을 하면 처음 생각했던 선택이 떠올라요.”
약사는 이것저것을 묻더니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잠시만 이거 드시고 계세요. 금방 책 처방해 드릴게요.”
몇 분이 지난 뒤, 약사는 책이 담긴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자 주문하신 처방책 나왔습니다. 부디 이 책이 고민에 대해 도움이 돼주길 바래요.”
처방받은 책을 바로 뜯을까 하다 며칠 묵혀뒀다. 쉬는 날 근처 카페에 들러 초코라떼와 케이크를 하나 시켰다. 봉투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 내용에 빠져드는 것과 동시에 허기가 몰려왔다. 그래서 쟈스민차와 디저트를 하나 더 시켜 나머지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10. 민신의 이야기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페 너머로 형이 보였다. 형은 책을 읽으며 울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며칠 전만 해도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으면서...’
카페에 들어가 형에게 아는 척하려다 민망해할 형을 생각하며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켜놓은 텔레비전에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엄마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의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얼굴엔 세월의 주름이 깊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예전에 즐겨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깨비’가 방영되었던 2016년, 2017년 내 모습이 떠올랐다.
11. 주옥의 이야기
너무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했다. 밀려오는 업무 요청과 처리해야 할 일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됐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렸다.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한히 재생됐다. 그런 모습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순간, 동생 주연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매콤한 냄새가 풍겼고, 손에 커다란 봉지가 들려있었다.
“언니, 엽떡 사 왔어. 엽떡 먹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는 주연에게 잔소리했다.
“얘는 무슨 그런 걸 또 사와! 그런 거 먹으니 살찌지! 너 다이어트 한다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동생과 마주 앉아 엽떡을 먹기 시작했다. 거실 한편에 티비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행복이 이런 걸까...
12. 주연의 이야기
오늘은 특별히 기대되는 날이었다. 독서모임 멤버들과 강릉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서울역과 청량리역에서 각기 열차를 탔다. 나영 언니는 회사 동기가 강릉에 있다고, 먼저 강릉으로 갔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장칼국수를 먹었다. 기름에 튀긴 감자 뭐시기도 먹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역시 인스타그램 맛집은 걸러야 한다.
오죽헌 한옥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책방에 들러 책도 한 권씩 구매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창문 너머 파도를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파도에 다 쓸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조금 있다, 이모가 맘대로 내어주는 이모카세 먹으러 갈 거다. 저녁 먹고 나서는, 라이브 바에서 하는 공연도 보기로 했다. 카페 창문 너머 푸르렀던 하늘은 차츰 짙어져 검은색이 되었다. 오늘 하루도 참 부지런히 다녔다.
13. 나영의 이야기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 안.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풍겨온다.
‘아... 뭐야...’
냄새의 정체는 방귀 냄새. 누군가 열차 안에서 방귀를 뀌었다. 똥 꿈에 이어 방귀라니. 강릉에 도착하면 잊지 말고, 바로 복권을 구매해야겠다. 아 근데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했는데, 효과가 없으려나?
앞자리에 앉아 있는 독서모임 멤버 중 한 명이 엉덩이를 들썩인다. 설마...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작고 수줍은 방귀 소리.
“뿌웅”
범인을 잡은 것 같다. 범인은 내가 평소 호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방귀 소리가 귀엽게 느껴진다.
“뿌웅”
14. 지현의 이야기
무더위가 가시고 제법 날씨가 선선해졌을 때, 우리는 강릉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차가 도시를 빠져나가니 노란 들판이 펼쳐졌다. 기차 타기 전 서점에서 샀던 책을 펼쳤다. 행복에 관한 책이었다. 흔히 행복은 마음 먹기 달렸다고 말하는데, 이 책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행복을 이야기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강릉역에 도착해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데, 몇 년 전 회사 다니던 이맘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온도, 날씨였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시절에는 꽤나 힘들었던 것 같은데, 추억이 보정된 것인지 과거의 순간이 몽글몽글하게 떠올랐다.
길가에 복권집이 보였다.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나눠줄 복권을 한 장씩 샀다. 문을 나서는데 한 여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돼지꿈이라도 꾼 것일까? 다른 이의 행복한 모습이 나에게까지 이어져 웃음이 나왔다.
원하는 대학에 가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원하는 것이 되고 나니 허무했다. 행복은 무언가 ‘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 멀리 독서모임 멤버들이 보인다. 반가운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웃음이 나왔다.
15. 민지의 이야기
무더운 여름이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여름에는 덥고 습한 게 싫어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겨울이 되니 여름이 그립다.
한국시리즈는 한화의 우승으로 끝났다. 방송에서 인터뷰했던 영상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공유되었고, 덕분에 연락이 끊겼던 이들로부터 많은 안부 연락을 받았다. 이래저래 잊지 못할 가을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데, 하늘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어두운 하늘에서 순간 하얀 무언가가 흩날렸다.
‘...’
첫눈이었다. 하늘은 굵은 눈으로 뒤덮였고, 거리는 금세 하얗게 변했다. 길거리에는 외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우리에게 당연한 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자 평생 꿈꿔왔던 장면일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싫어하는 추위가 괜찮았다. 오늘은 집 앞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내리는 눈을 구경해야겠다.
16. 형우의 이야기
울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눈부신 날에... 침대에 누워 카카오톡을 열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전 여자 친구 프로필을 눌러본다. 너는 여전히 잘살고 있구나...
친구 목록을 주욱 내려본다. 한때는 친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잘살고 있을까? 수년 전 올린 사진이 그대로인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학교 다닐 때 홀로 좋아하던 친구는 벌써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구나... 괜히 미소 지어진다.
홀로 방 안에 있고 싶지 않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어딘가에서 꽃향기가 났다. 향기에 이끌려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서점에 있는 다양한 책을 둘러봤다.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하구나.’ 책 한 권을 골라 계산을 마쳤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앗 죄송한데, 저희가 처방해 드리려던 책이 방금 판매되었어요...이걸 어쩌나... 혹 나중에 택배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아 제가 지금 급하게 필요한데... 어떻게 안 될까요?”
“이걸 어쩌지...”
그녀가 구매하려던 책은 마침 내가 방금 구매한 책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서 혹시 필요하시면 이 책을 드리겠다고 이야기했다.
“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 책은 제가 데려가고, 밥 한 끼 사드려도 될까요? 자 여기 제 휴대폰 번호예요.”
가슴이 뛰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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