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nsplash의Ant Rozetsky
강다방 야매소설 008
각자의 정류장
지은이 강기사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최강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불현듯 내 주변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기차가 꼬리 물듯 이어지는 풍경처럼 마치 예정된 듯 나에게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를 함께 사용할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혼자서도 여행을 잘 다녔는데 서울로 이주한 뒤, 어느 순간 여행하는 걸 멈췄다. 서울의 바쁨과 치열함 때문일까...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서울 생활이 일상이 되었을 때, 문득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강릉으로 향했다. 쾌적한 호텔도 좋지만, 전혀 새로운 사람과 부대낌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릉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예전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많았던 것 같은데, 시대가 변해서일까?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없어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도 도미토리가 아닌 개인실로 운영되고 있었다.
여행 중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펼쳤는데 건너편 침대에서 말을 걸어왔다.
“와 그 책 읽으시는 거세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아 그래요?”
...
“혼자 여행 오신 거세요?”
“네.”
...
“저는 서울에서 왔어요.”
“경남 하동에서 왔습니다.”
“와 저 군 생활을 하동에서 했어요.”
“정말요? 와 신기하네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상대는 막 군대를 전역했다고 이야기했다. 상대와 의외로 말이 잘 통했다. 예전 내 어렸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형님 맥주 사왔는데 한 잔 드시겠습니까?”
“오 좋죠. 제가 뭐 먹을 거라도 하나 배달시킬게요.”
도미토리 방을 나와 게스트하우스 1층 공용공간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타일로 만든 식탁이 인상적이었다.
“어디 어디 다녀오셨나요?”
“강릉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그냥 친구 집 주변에 있었어요. 해안도로 따라 달리기도 했고요.”
“우와 여행와서 러닝이라니. 멋진데요? 저도 나중에 해봐야겠어요.”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안목? 커피거리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주문진까지 가는 해안버스 탔어요. 주문진 수산시장도 갔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공용공간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넉살 좋은 동생이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곧이어 여자도 이야기에 합류했다.
“저는 술을 잘 못 마셔서 딱 한 잔만 마실게요.”
그리곤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소주와 맥주를 꺼내 왔다.
“소주랑 맥주 미리 준비해 놓은 거예요?”
“네 혼자라도 마시려고 했어요. 히히.”
그녀는 컵에 소주를 붓고 그 위에 맥주를 채웠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컵 안에 넣고 '탕'하고 쳤다.
“와 제대로 드실 줄 아네요.”
“자 건배할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즘 MZ는 건배도 한 번만 하니 이후에는 각자 편하게 먹어요!”
“누나 MZ예요?”
그녀가 맞은편에 앉은 동생을 째려봤다.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웠다.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이야기와 함께 밤이 깊어 갔다. 여행과 영화, 책 이야기가 나왔고 내일 가려고 했던 책방으로 이어졌다.
“내일 강릉역 앞에 있는 책방에 가보려고요. 사연이나 고민을 말하면 그 내용으로 소설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 프로그램 신청할까 고민 중이에요.”
“엥? 그런 걸 왜 해요?”
“전 재밌어 보이는데? 누나 MBTI T죠?”
“어떻게 알았지? 네 저 T예요.”
“형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하는 거래요.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누나는 내일 뭐 하실 거예요?”
“저는 그냥 해변에 앉아 바다보면서 음악이나 들으려고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지금 하고 고민과 걱정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잠시 뒤,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이창섭의 ‘천상연’이 나왔다. 잠시 뒤, 같은 방을 쓰는 동생의 눈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저 사실...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전역하고 마지막 휴가 나왔는데, 더 이상 못 기다리겠데요. 아니, 조금만 더 있으면 전역인데... 그게 말이 돼요? 1년 5개월을 기다려줬으면서. 전역이 다가올수록 저한테 더 이상 설레지 않는대요... 그래서 여행 왔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와 전 여친 사람 볼 줄 모르네. 연상도 괜찮으면 누나가 친구 소개해 줄까요?”
“누나... 고맙지만.,.. 전 연하가 좋아요. 흐흐흐...”
어렸을 때,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누군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인생은 버스 타는 것과 같대요. 버스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각자 버스 타는 곳도 내리는 곳도 다르잖아요. 어렸을 때 평생 갈 것 같던 친구들과 우정도, 첫사랑과 뜨거웠던 사랑도, 영원할 것 같은 가족도 언젠가는 헤어지고 그 끝이 있잖아요. 이별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잠깐이라도 같은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게 소중한 게 아닌가 싶어요.”
맞은편에 있는 여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표정한 얼굴에 외로움이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떠나기 전 함께 방을 쓴 동생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형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 고마웠어요.”
“에이 뭘요.”
“형, 이름이 뭐예요? 저는 상준이에요.”
“제 이름은 최강이에요.”
“나중에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 서로 더 멋진 모습이 되어 만나요!”
기차 시간이 몇 시간 남아 바다로 향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켰다. 그때 창문 너머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제 봤던 여자인가? 해변에 앉아 음악 듣는 거 좋아한다더니... 참... 여기서 보네. 갈 때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
그녀는 해변에 앉아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인사를 하러 카페에 나서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성큼 걸어갔다. 파도가 들이쳤고, 그녀의 뒷모습이 수평선 아래로 푹 꺼지듯 사라졌다.
“뭐야?! 저기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바닷가로 달려갔다.
“어?! 어제 봤던?”
“어? 뭐야?!”
“이거 보세요. 꽃 모양 조개예요.”
“하 난 또...”
“네? 아... 설마... 하하... 점심은 드셨어요?”
함께 감자옹심이를 먹으러 갔다. 가게 앞에 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직접 감자를 갈아 만드는 것 같았다.
“와 감자옹심이 엄청 맛있네요. 저 처음 먹어봐요. 쫀득쫀득하면서 포근해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라 종종 강릉 오면 먹어요. 저도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띵동”
휴대폰을 확인한 뒤,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색한 순간이 잠시 흐른 뒤, 그녀가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저 사실... 어제 바다에 들어갈까 잠깐 고민했어요. 가족 문제가 좀 있었어요. 근데 어제 이야기 듣고 그냥 앉아 있기로 했어요. 그냥 바다에 앉아 음악 듣는데 참 좋더라고요. 이런 맛에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한 정거장 더 가보기로 했어요. 덕분에 맛있는 옹심이도 먹었네요. 자...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바다에서 주웠던 꽃 모양 조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는데, 이제 기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고마웠어요.”
우리는 끝내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버스 창문 너머로 짧았던 강릉 여행이 풍경처럼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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