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에세이
우울의 바깥을 향하며, 두루
제목 : 우울의 바깥을 향하며
저자 : 두루
펴낸곳 : 개띠랑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83쪽
크기 : 117x178mm
가격 : 13,000원
발행일 : 2023년 11월 11일
ISBN : 979-11-980169-7-3 (02800)
인스타그램에 즐겁고 행복한 모습만 올라오는 시대, 그래서 더 우울한 시대, 우울에 대해 쓴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우울에 대해 적었지만 그렇다고 엄청 우울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는 글을 적으며 우울의 바깥으로 나온 느낌이 듭니다. 어느 날 이유 없이 축 처지게 될 때, 지독하게 가라앉는 날을 마주할 때, 이 책이 우리를 우울의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는 문이 되어주길 바래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한 해 보내세요.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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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바깥을 향하며
지독하게 가라앉는 날이 있다. 왠지 내가 최악인 것만 같은 그런 날. 괜히 짜증이 솟구쳐 올라 꼭 해내야 하는 일도 쉽게 망치게 된다. 그런 나를 스스로 견디지 못해 자책하게 되는 아주 끔찍한 하루. 이 세상에 가장 처량한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축 처진다.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생각들. 그러다 보면 우울은 더 깊어진다. 이토록 우울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다.
한 번 나를 옥죄어 버린 우울은 쉽게 놓아주지를 않았다.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면 어디를 가냐며 다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곤 했다. 떨쳐내려고 하면 더 세게 쥐고 흔들었다. 당최 이 우울이란 것은 익숙해 지지를 않는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말이다. 극복하고 싶어도 이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제는 아주 잘 아는데. 우울이 찾아올 때쯤이 되면 몸살이 오기 전, 몸이 으슬으슬 떨리듯 마음이 요동치니까.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면서도 마치 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게 다 내 의지가 약한 탓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 또 더 우울해진다.
그간 자신을 가장 혐오했었기에 딱히 내 모습을 마주할 일이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차피 최악일 테니까. 그런 내가 이제는 자주 나를 마주한다. 자주 외모를 점검한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를 쓸어 넘겨 단정함을 유지하려 한다. 이제는 외출 전, 꼭 거울을 확인한다.
또, 내 모습을 자주 찍어두려고 한다. 뭐 딱히 잘 생기거나 보기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함이다. 지금의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가장 이 모습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별것 없는 행위가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이목구비의 형태, 주름의 깊이, 눈매의 날카로움 정도, 입꼬리의 부자연스러움. 모든 것이 내게는 지금의 나를 탐구할 수 있는 힌트가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는 과정.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하는 일인 것이다.
이끌려 가는 삶은 싫으니까.
결국에는,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삶이 아닌,
내가 아는 삶.
요즘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정말 내 삶을 사는 것만 같다.
나는 아직 행복이 무언지 잘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하는 곳을 향하다 보면 그 관성으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도 경험이 쌓이고 조금 익숙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척척 해내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일도 그 언젠가는 익숙해져서 행복을 척척 해내고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꼭 행복해야 하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꼭 행복하고 싶다. 아니, 뭔지는 알아야겠다.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자기방어 기제가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삶에서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남을 향할 때는 정도가 비교적 약한 편인데 애석하게도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에게는 아주 강력하게 작용한다. 여기서 많은 척을 하게 된다.
괜찮은 척, 잘 사는 척, 행복한 척, 건강한 척...
늘 가족들에게는 베테랑 연기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이 되어야...
인생을 통틀어 절대 빼놓을 수 없고 떼어내려야 도통 떼어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단연 가족이 떠오른다. 애달픈 삶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으랴마는 그중에서도 특히 이 가족이란 것이 애석하게 도 더욱 그렇다. 이 세상에 당차게 울음을 내지르며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되어 버리는 불가항력과 같은 것. 태어나보니 나의 부모, 형제가 결정되어 버리는 것. 이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삶이란 것이 운명을 타고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쯤은 의심해 본다. 사실 운명을 잘 믿는 편은 아닌데도 그것 말고는 이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실패해도 된다. 성공과 실패를 쉽게 굳이 구분 짓고 싶지는 않지만 성공이 내가 목표한 것을 이루는 것 딱 한 가지만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실패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패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작고 큰 실패와 성공을 겪겠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실패를 겪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 실패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저녁 6시가 돼서야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혼자 있으면 더 힘든 것 같아서 자주 가던 책방으로 뛰어왔다. 회사를 도망치듯 나와 책방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나의 인생은 매 순간이 도망이었는데 마지막의 순 간도 역시나 그랬다.
이 도망이 언제고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평생일지도 모를 이 도망을 나는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그 도망을 부끄러워 하고 또 다른 도망을 도모하는 것도 다 용기가 필요한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으로부터 도망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도망을 기꺼이 맞으며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그러니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때. 나는 참 많이도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글이 투박하고 날이 서 있는 듯했다.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토해내는 듯한 정제되지 않은 글에 가끔은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아마도 글을 쓸 때의 그 마음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 글이 부끄러워 그렇기도 했다. 아무리 첫 책이라고 하더라도 이토록 글이 다듬어지지 않았었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 이 첫 책의 의미가 그러했기에 좋았다. 그 누구도 내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가장 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닐까.
쉽게 다룰 수 있는 마음은 없다. 저마다의 무게를 갖고 그만큼의 짐을 지고 있을 때가 있어서 쉽게 꺼내지 못할 때도 있다. 마치 지독하게 끈적한 접착제로 발라놓은 것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마음속 깊고 어두운 구석에 자리 잡은 것일수록 더욱 어렵다. 이때 강제로 그것을 바깥으로 끌어내기보다는 천천히 그 공간에 빛을 들이고 바람을 쐬어주려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찬란한 빛도 있고 선선한 바람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아가기를 바라며. 다치기 쉬운 상태의 마음이 혹여나 상처 입고 영영 나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때로는 강력한 힘보다 기다려주는 인내가 더 강력할 때도 있다.
주변에서 봤노라고 하셨다. 그래서 최대한 근처에 있는 장소를 물색해 이쪽으로 쭈욱 가시면 아마도 묘목 파는 곳이 나올 것이라 안내해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며 “이목구비가 스마트하고 이뻐 깔끔해~” 하셨다. 그 말이 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했다.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렴풋이 예상해 보자면 아마도 그동안 나를 미워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나의 이목구비는 얼마나 관심이 있었나. 얼마 동안이나 나를 방치하고 나 자신을 무시하고 깎아 내렸을까. 처음 보는 할머니가 본 나는 이리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못 나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어릴 적 보았던 무덤덤한 그 눈빛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라는 잔나비의 노랫말처럼, 나는 이제 그들의 눈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어른이라는 것이 조금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타인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 무덤덤한 눈빛으로 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에게는 더 다정한 눈빛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호주에서의 시간들은 어느 생존의 터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1여년의 짧고도 긴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 지냈던 공간. 모든 것이 내게는 귀중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나날들 속에서 어쩌면 나는 생존 그 이상의 것을 발견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왼손 한켠 작은 흉터를 바라본다. 뭐, 사실 죽을만큼 아팠던 기억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이 자그마한 자국이 버텨낼 힘을 준다. 맞아, 이 모든 일이 먹고 살려고 하는거지. 그래도 지금은 다행히도 멀쩡한 팔이 있고 오늘 한 끼 식사 먹을 여유는 있잖아한다.
“그럼, 지금 가봐요."
밤바다를 갔다. 갑자기, 그냥, 다녀왔다. 낯선, 그러나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무작정.
시작은 계획형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못 한 인간은 계획적인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존재였다. 떠나기 전 노트 빽빽이 계획을 세우는 그들에게 목적지도 불분명한, 목적 없는 여행이란 있을 수 없는 일과 같았다. 그렇게 무 계획형 인간은 무계획의 끝장을 보여주겠노라고 호언장담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에서는 끝없는 대화가 오갔다. 시끄러운 고속도로 위의 차 소음이 몽글 피어오르는 꽃망울을 막지는 못했다. 마치 미리 준비해 온 이야기를 풀어내듯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무기력의 늪.
교육 가장 안전하면서도 불안전한.
삶의 중심이자 바깥.
가장 편해야 하지만 가장 불편해지고 마는.
집에만 있으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하면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고는 집을 뛰쳐나온다. 어디든 간다. 보통은 카페인데 가끔은 처음 가보는 곳을 가기도 한다.
사실 도망가는 거다. 자칫 더 깊은 곳을 향할 마음을 이끌고 동굴의 바깥을 향한다. 삶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려 애써보는 것이다.
무기력할 때는 불을 다 켜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도...
“아, 아까워서 못 쓰겠다.”
예쁜 카드 지갑을 선물 받았는데 더러워질까 봐 못 쓰겠다고 했다. 하얗고 까만 털실 재질로 된 것인데 평소 물건 관리를 잘 못 하는 사람인지라 딱 봐도 금방 더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도저히 아까워서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새것을 보면 그런다.
'이거 쓸 수 있을까? 그냥 이 상태로 두고 싶은데. 쓰면 깨지고 헤지고 상하게 될 텐데, 그건 원하지 않는걸.'
그런 모습을 본 한 작가님이 그랬다.
"영원히 때가 안 탈 수는 없으니까요."
맞다.
영원한 건 없다. 새것은 이내 닳고 사용 흔적이...
어떤 의지로 살아가든, 어떤 마음을 갖고 지내든 그 마음을 고이 간직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훗날 돌아봤을 때 그때의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삶이 주는 과제를 성실하게 풀어가며 쌓아갈 수 있도록 또 오늘을 착실하게 살아가야 하겠다.
비록 보잘것없는 삶일지라도 계속 흘러간다. 그것의 총량이나 질 따위는 상관없이, 그것을 가장 깎아내리는 내 조그만 삶일지라도 말이다.
어떨 때는 그것이 참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참히 흘러가 버리니 말이다.
또 어느 한 편의 다른 삶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마치 이 세상에 고통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황홀에 퐁당 빠져버린 걸까.
나는 이제,
그 어떤 삶의 모습도 사랑하고 싶다.
그때의 내가 그토록
하고 싶고 듣고 싶었던 그 말들을
지금의 나는
나에게 하고 듣고 있을까.
나는 과연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잘 살고 싶어졌던 마음이
이제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해주려나.
(P.85, '어느 날 문득 다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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