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프롤로그
옷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요
긍정을 강요하는 사회
게으름에 대한 고찰
느리다고 해서 잘못되는 건 아니잖아요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내 몸은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이삼십 대 여성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울증이지만 해맑은 편입니다
언제까지 끔찍한 참사를 반복할 것인가
프롤로그
첫 책을 낸 기쁨과 여운이 남아 있는 와중에 훌쩍 시간이 흘렀다. 위로를 전하기 위한 책은 아니었는데, 독자들이 용기를 얻었다는 말에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내 안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느라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하고 싶 은 말은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안에서 들끓는 용암이 남아 있었다. 전편에 비해 좀 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었다. 오랜 기간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NGO에서 일을 해왔고, 지금은 사회 구성원인 한 시민으로 살아갈 뿐이지만 여전히 내게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회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 이유는 장황한 미사여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만 나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여 내 글이 정치적인 이야기로 느껴져 불편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정치는 없기에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를 썼을 뿐이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관을 담아 세상에 던져본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읽고 공감해 주는 독자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투사가 되어 거리에 나가서 시위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도 획일적인 우리 사회에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노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이번 책에도 도움을 준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담아 보내며. 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서 이 책의 시리즈가 여기서 끝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저씨와 만나 몇 차례 대화를 나누다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고, 아저씨의 집에 초대받았다. 대화를 나누며 아저씨는 옷이 딱 세 벌이라고 말했는데,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옷에 관심이 없는 나도 옷이 열 벌은 훌쩍 넘는데, 대체 어떻게 세 벌로 생활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집에 가니 정말 아저씨가 입고 있는 옷 한 벌 외에 벽에 걸린 두 벌이 전부였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옷 세 벌로 생활 할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빨래를 자주 해서 입으면 충분하고, 더욱이 캄보디아는 더운 날씨이기에 옷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그간의 고민을 서슴없이 털어놓았고, 우리는 한동안 옷의 필요성과 옷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다국적기업의 횡포 등에 대해...
긍정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해 미디어나 SNS에는 대체로 밝고, 긍정적이며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만 널려 있다. 부정적이고,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성공하고 잘 사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나만 뒤처졌다는 소외감과 불안감에 어느새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따라가려 애쓰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억지 긍정에 빠지게 된다. 억지 긍정이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잘될 거라는 허무맹랑한 긍정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얼마간은 억지 긍정으로 자신과 타인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억지 긍정은 자신의 진짜 감정으로부터 고립시켜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여전히 '싫다'는 말이 뇌의 회로도 거치지 않고 먼저 튀어나온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사회에서 해나가는 역할이 있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조금 더 섬세하게 비판하고,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성향이 아니었다면 이 책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생활 방식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정해진 시간에 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밤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오죽했으면 법정 근로 시간까지 생겼을까. 회사원에게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시간을 쪼개어 삶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바쁜 하루를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고 여긴다.
한편 쉼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쉬고 싶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쉼을 죄처럼 여긴다. 격앙된 표현이라 고 할지 모르지만 바쁘지 않으면 조바심을 느끼며 쉬고, 놀 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죄가 아니고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실과 근면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한국인 특유의 근성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맞는 옷차림, 소득과 주거 환경 등 나이에 맞는 평균의 삶이 정해져 있다. 나는 소위 평균의 삶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항상 느리다는 참 견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누구도 평균의 삶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의 삶은 허상이 아닐까. 오히려 평균이라는 수치가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느리다고 참견했던, 심지어 나조차도 스스로를 옥죄던 그 말은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만약 모두가 평균의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한 사람의 삶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걱정을 듣는다.
몇 년 전이었다. 아침이면 눈뜨기가 무섭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웠다. 하루하루가 악몽이었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땅으로 꺼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끼니를 해결하는 일 외에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죽음에 직면한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반려묘를 발견하고, 내가 하고 있던 행위를 멈추었고 한동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울음을 토해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다시금 일어났다. 29일 밤, 마음을 졸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뉴스 속 장면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실시간으로 본 현실은 참담했다. 그렇게 꽃다운 나이의 영혼 159명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다가 허망하게 떠났다.
단번에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8년 만에 일어난 참사였기에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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