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GV 빌런 고태경
제목 : GV 빌런 고태경
저자 : 정대건
펴낸곳 : 은행나무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36쪽
크기 : 140x210mm
가격 : 13,500원
발행일 : 2020년 4월 20일
ISBN : 979-11-90492-43-0 (03810)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강다방은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옛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습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영상 쪽은 아니어서 굳이 영상 제작 수업을 듣진 않았는데,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래도 졸업 전에 한 번쯤은 배워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호기롭게 1학년 영상 제작 수업을 신청했는데…
첫 수업에 들어가 보니 타 학과 학생은 저 혼자였고, 종강까지 조별로 영화 만드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학년들의 반복되는 잠수, 서로 다른 의견 충돌, 계획과는 달라지는 이야기 전개… 결국 시작은 창대했지만 결과물은 용두사미로 끝났고, 수업이 끝날 무렵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를 외치며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영상 쪽은 앞으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그렇게 영화 관계자가 아닌 관객으로 종종 영화를 보며 살아오던 어느 날, 강릉에 있는 단편 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GV, Guest Visit)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준비하며 읽었던 책이 <GV 빌런 고태경>이여서 였을까요… 저는 모든 관객들에게 한 마디씩 발언할 기회를 드리며 초유의 GV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듣고만 가면 재미없잖아요. 영화도 결국 관객이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고…) 아무튼 감사하게도 소수의 인원, 공간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GV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GV를 끝낼 때 말하고 싶었는데 어버버하고 하지 못한 말을 여기에 적어봅니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자리해 주신 관객분들, 멀리서 강릉까지 와주신 멋진 영화를 만들어주신 감독님, 행사를 기획하고 세심하게 운영해 준 무명, 소중한 프로그램을 후원해 준 강원문화재단과 강원영상위원회, 영화가 다른 곳이 아닌 강릉에서 촬영될 수 있게 해준 지금은 사라진 강릉국제영화제까지. 영화란 혼자가 아닌 다른 이들이 함께할 때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 멀리서 묵묵히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다방이 진행했던 GV 영화가 궁금하신가요? 12월 무명 정기 상영작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어린 시절 헤어진 아빠를 찾아 강릉을 찾는 영화, 이가홍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더불어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계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소설 <GV 빌런 고태경>도 함께 읽어보세요. 삶은 때때로 실망스러운 NG가 나지만, 때론 OK가 없어도 용감히 넘어갈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2024 강원
강릉시네마실
10월 19일 토요일 / 인생서가
<심장의 벌레> 한원영
10월 26일 토요일 / 소집
<네가 사랑했던 우리를 기억할게, 영원히> 이수현, 여대현, 김예별
11월 02일 토요일 / 무명극장
<8월의 크리스마스> 이가홍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장편소설
GV 빌런 고태경
2020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삶은 언제나 실망스러운 노 굿(NG),
하지만 떄론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제작지원 신청을 여기저기 했는데 아직 어디서도 지원받지 못했거든요. 일 년 이상 이 작품을 찍을 생각은 없고...... 올해 연말에 서 울영화제 출품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 대답을 신중히 듣던 고태경이 물었다.
"그럼 조 감독은 이다음에 뭘 하고 싶은 건데?"
글쎄,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릴 적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감독이라는 자리가 멋있어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감투에 대한 환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감독 지망생들 중에 명예욕과 보상심으로 버티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영화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다음 작업을 지속할 정도로 내 영화를 봐주는 사람이 있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작업할 수만 있다면, 규모와 상관없이 그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건 나이브한 생각인 걸까.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더 나은 환경에서 배우, 스태프들에게 읍소해가며 민폐를 끼치지 않고, 그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면서"
고태경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달랐을까. 수십, 수백 번도 더 상상해본 일이다. 그러나 그 순간들을 경험해보기 전에는 내 부족했던 점들을 몰랐다. 그 당시엔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었다.
"작품 완성하려고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지? 그런 거 아무나 못 해. 난 말이야, 이제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무릎 꿇는 거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진짜 부끄러운 건 기회 앞에서 도망치는 거야"
고태경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덧붙였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말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콧날이 시큰했다. 고태경이 나의 표정을 흘긋 살피더니 말없이 조수석의 창을 조금 내렸다. 시원한 바람과 소음이 어색한 공기를 채웠다.
어느새 고태경의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슬슬 장비들을...
내가 말했다.
"좀 길게 말해도 될는지요."
곧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고태경이 운을 떼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관객들이 오오, 하고 박수쳤다. 고태경의 말은 허풍처럼 들리지 않았다.
"조감독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박수와 응원은 처음 받아봅니다. 최 감독님도 같이 영화를 보셨다면 하고 슬픈 생각도 듭니다. 고마워요, 조 감독. 정말 고맙습니다."
고태경은 사람들 앞에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고태경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몇 년 전 나는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에 절망한 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먼저 손 내밀 줄도, 도움을 청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혼자 고립되어서 위태로웠다. 그런 사람에게도 극장과 도서관은 열려 있었다. 그 두 곳은 사회적안전망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소설이 될지도 모를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태경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준비생들과 지망생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해낼 사람들이 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건 나에게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도서관 열람실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맞은편에 앉아서 토익 공부, 공인중개사 공부, 시나리오, 번역 등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 책이 독자분들에게 그런 위로로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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