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방 이야기공장/입점 도서 소개

[독립출판물, 에세이] 내가 무슨 노벨문학상을 탈 것도 아니고, 설인하

강다방 2024. 10. 13. 18:19

 

 

 

 

 

독립출판물, 에세이
내가 무슨 노벨문학상을 탈 것도 아니고, 설인하

 
제목 : 내가 무슨 노벨문학상을 탈 것도 아니고
저자 : 설인하
펴낸곳 : Vice Versa (비체 베르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142쪽
크기 : 115x180mm
가격 : 12,000원
발행일 : 2023년 5월 31일
ISBN : 979-11-982425-9-4 (03810)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무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다렸다! 노 젓기의 달인 강다방이 살포시 얹어보는 숟가락! 단어도 이어지는 한강-강다방!

노벨문학상 소식으로 출판계가 떠들썩합니다. 거래처에는 관련 책 재고가 바닥났고, 소셜 미디어에는 책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모습이, 온라인 서점은 한 때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매년 최저치를 기록하는 독서율과 지역을 대표하던 향토 서점의 폐업 등 아쉬운 소식 많았던 출판계에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마치 단비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책에는 ’두 번째 법칙‘이 나옵니다. 한 번 겪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도있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을까요? K-문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K-문학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뭐 노벨문학상에 대해 장황하게 적긴 했는데, 사실 글이란 게 꼭 유명한 상을 타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마음속의 노벨상 수상작, 이 책처럼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예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님들 화이팅입니다!

 

작가, 출판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arinaa_writer/
https://www.instagram.com/viceversa_book/

 

 

 

 

 

 

"안 팔리는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30대 중반 안 팔리는 무명 백수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야기.

 

 

 

 

 

 


나는 두 번째의 법칙을 믿는다. 살면서 한번 겪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 번 겪은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글을 써서 단행본을 내든, 웹소설 출간을 하든, 독립출판을 하든. 그렇게 한번 일어난 이벤트를 나의 지속적인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두 번째'의 경우를 만들어 내려는 나의 노력이다. 

그래서 나의 좌우명은 ‘Make it Happen'이다. 무언가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심지어 그 일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 인생에서 한번은 일어나게 되었다면. 그 일을 단순히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반드시 두 번째의 결과물을 내려고 노력하자는 의미이다.

나의 두 번째 독립출판물인 이 책도 어찌 보면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3월에 처음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나는 세 달 만에 두 번째 독립출판물을 출간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떤 일이든 두 번을 해냈다면 세 번째, 네 번째까지 끝끝내 이어 나갈 내 근성을 믿으면서.

 

 

 

 

 

 

 


나는 작가다. 지난 4년 동안 에세이 단행본 3권을 출간했고 웹소설 3질을 완결 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나를 모를 수도 있다. 내 에세이 단행본들은 전부 1쇄를 다 팔아본 적이 없고, 유료로 출간한 내 웹소설에 달린 구매자 인증 별점 개수는 50개도 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안 팔리는 작가'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웹소설의 리듬에 맞춰 하루에 최소 5천 자씩은 어떻게든 써낸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한지, 하루는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글을 그렇게 '잘' 쓰나요?"

여기서 '잘'은 퀄리티의 '잘'이 아니라 빈도를 뜻하는 '잘'이다. 딱히 글로 성공하지도 못했으면서 어쩜 그렇게 꾸준하고 한결같이 글을 써낼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노동력과 정신력만큼은 오지게 끌어다 쓰는 이 글을 향한 나의 짝사랑이 계속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 글에 대한 자부심?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내 글이 남들이 쓰는 글들에 비해 딱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아무도 나를 모르는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냥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흔히들 창작하는 사람들이 게으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뭔가를 기다리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그제야 작업에 착수하는 느낌.

작가가 되고 나니 그런 환상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창작자들은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손이 써낼 수 있는 일 작업량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구상과 스토리를 얼른 써서 다 꺼내 놓고 싶어서 마음이 바쁘다.

우리가 매일 같이 이토록 치열하게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취미로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는 유명 만화가처럼 말이다.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은 창작자들에게 죽음은 특히 두려운 존재다. 만약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지금 내가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작가들은 늘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오직 나만이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고,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는 내 이야기들을 한정된 수명 안에 최대한 밖으로 많이 꺼내놓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소명이고, 혼자이지만 성실한 삶의 이유가 된다.

 

 

 

 

 

 


웹소설을 쓰다 보면 가끔 '내 글 구려' 병이 찾아온다. 같은 플랫폼에서 동시에 연재되고 있는 다른 갓작가들의 글에 비해 내 글은 개연성도 떨어지는 것 같고 노잼 구간인 것 같아서 의욕이 떨어져 버리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일부러 별점이 낮은 콘텐츠를 좀 찾아보는 편이다. '잘 썼다'는 호평 일색인 소설보다는 평이 그저 그런 소설을 보고, 별점 5개짜리 영화보다는 별점 2개 이하의 영화를 보는 식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런 것도 상업 데뷔를 하네. 이런 허술한 시나리오도 판권을 팔았네. 투자도 받고, 전 세계 개봉도 하고?"

일단 그런 생각이 들면 그때까지 내가 고민했던 작품성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싹 사라진다. 오히려 '아, 나도 좀 더 내맘대로 밀어붙여도 되겠다. 글이 좀 별로여도 완결을 내고 결과만 내면 되니까' 하는 용기와 의욕이 샘솟는다.

설령 나중에 혹평받고 낮은 별점을 받게 된들 어떤가? 그래도 작가라면 무조건 완결이 먼저다. 작품성이나 개연성에 대한 평가도 어쨌든 작품을 완결 내어 세상에 내놓은 후에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쓰자. 써서 뭐라도 내자. 나중에 혹평 좀 받으면 뭐 어떤가? 어차피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장편 웹소설 연재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가지고 있던 비축분 원고를 다 소진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고. 이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죽음의 라이브 연재라는 지옥도뿐이니까.

웹소설 작가에게 있어서 라이브 연재는 뭐랄까? 숲속에서 마주친 곰에게 한없이 쫓기는 기분과도 같다. 나를 뒤쫓아 달려오는 무서운 곰을 피해 앞만 보며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중간에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그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곰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려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뒤에야 나중에 '나 이런 일도 있었다'고 무용담을 털어놓을 수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이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울면서 달린다. 그래도 열심히 달려야지. 곰한테는 죄가 없으니까.

 

 

 

 

 

 

 


쓰고 있는 웹소설 분량이 단행본 3권 분량을 훌쩍 넘기면서 점차 어휘 중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름대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독서를 하면서 꾸준히 인풋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휘력을 늘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결국 나는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 본격적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어휘력 퀴즈를 풀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강좌가 포함된 EBS 월간 교재를 보는 식으로. 이런 것들이 과연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한글과 어휘를 공부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가끔 웃긴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껴서 공부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그때인 것을. 뒤늦게 빠져든 공부의 맛이 너무 달콤한 나머지 나이 마흔에 다시 한번 수능 시험을 치는 망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무료 연재를 하는 웹소설 작가들은 오디션 프로그램<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아이돌 연습생이나 다름없어요. 심지어 제 순위는 90위권에 등급은 F고요, PD픽을 받지 못하는한 상위권으로 데뷔할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묻기도 한다.

"그렇게 가혹한데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웹소설을 쓸 수 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내가 어찌 됐든 포기하지 않고 웹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 이유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쪽 시장은 성실함이 재능을 반드시 이기는 분야라는 확신 말이다.

물론 필력이 몹시 뛰어나거나 세상 사람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만한 환상적인 소재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그런 무기가 없다고 해서 딱히 기죽을 것은 없다. 원 히트 원더로 끝날 것이 아니고서야 이 바닥은 결국 계속 쓰고 매일 쓰고 꾸준히 쓰며 버티는 사람들만이 끝까지 살아남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 같았으면 스마트폰을 움켜쉬고 하루에도 몇 번 씩 새로 고침하며 반응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내가 인터넷에 올린 팬픽에 대한 피드백을 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수업이 끝나길 기다려 플로피디스크를 들고 PC방으로 뛰어가야만 했다. 그래도 오직 하루에 단 한 번만 주어졌던 그 순간을 기다리며 보냈던 설레는 시간은 그 나름대로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내게 인터넷에 꼭 글을 올리라고 말했던 그 친구는 알까?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소설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을. 어쩌면 지금 내 웹소설을 읽는 독자 중에는 20년 전 내 글을 읽었던 독자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의 아이들이 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걸 생각하면 조금 씁쓸해진다. 다들 어른이 되었는데 나만 그때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아서. 이런 삶은 나름 대로 여전히 낭만적이긴 하지만.

 

 

 

 

 

 


지금 연재 중인 웹소설의 전자책 단행본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돌리고 있다.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서 그나마 내 소설을 받아줄 것 같은 출판사만 딱 60여 곳을 추려서 메일을 보냈다. 이후 하루에만 2, 3통씩 거절 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웹소설 업계에서는 이렇게 투고를 거절하는 반려 메일이 메일함에 후드득 쏟아지는 상황을 '반려비를 맞는다'라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한꺼번에 몰아서 쏟아지는 반려비가 너무나 차갑게 가슴에 박혔다. 그렇지만 이후 매일 쏟아지는 반려비를 꾸준히 맞다 보니 전신이 아예 흠뻑 젖어버렸는지 이제는 오히려 적응된 느낌이다. 이제는 '아, 이건 좀 태풍 수준인데?' 싶은 거친 반려비를 맞아도 눈을 어느 정도 똑바로 뜰 수 있을 정도로는 적응이 되었다.

반복되는 거절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거절당해도 기분이 생각보다는 많이 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걸 보면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의 나는 회복 탄력성이 극도로 낮은 사람이었으니까. 연애하던 상대가 나를 거절하고 떠나거나, 직장생활을 할 때...

 

 

 

 

 

 

 

한참 몰입해서 글을 쓸 때면
순간적으로 노트북 화면에 비친
내 심각한 얼굴이 너무나 못생겨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화면에 내 얼굴이 반사되지 않게
안티 글레어 필름을 붙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었다.

 

 

 

 

 

 


글로 꼭 성공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딱히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기대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쓴 내 글에 너무 아무 반응이 없을 땐 문득 혼자서 급발진하곤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사람들이 이렇까지 내 글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는 거야?"

그럴 땐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 그러고는 다 안다는 듯 한숨을 쉬며 나를 다독인다.

"야, 어떻게 돈까지 바라겠어.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 

그러면 턱 끝까지 가득 차올랐던 억울했던 감정이 슬쩍 가라앉는다. 뒤이어 찾아오는 현타.

그래, 나 좋자고 하는 일에 어떻게 감히 돈까지 바라겠어. 그건 너무 욕심 아니야? 글 쓰는 게 재미있으면 됐지. 단 한 번뿐인 인생 살면서 '대체 재미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결국 나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래, 글아. 너한테는 재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 그저 재미만 잃지 말렴.

... 고 보니 나는 평생 이렇게 글을 호구처럼. 짝사랑하며 살듯하다.

 

 

 

 

 

 

 


들어가는 글에도 썼지만 나는 내가 글을 자주, 많이 쓸 뿐 질적으로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글이야?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뭐 어떤가? 내가 무슨 노벨문학상을 탈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이 글을 쓰면서 즐거웠으면 그만이다.

약간 더 나아가보자면, 오히려 그런 점에서 내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더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평소 나는 '글쓰기'라는 게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만만하게 느껴졌 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쟤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는 이미 차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멋진 글들이 많다. 유려한 문장과 화려한 표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 정도의 아름다운 문장들. 가끔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조금 기가 죽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글은 저런 사람들이 쓰는 거지. 내가 무슨 글이냐.'

한번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나면 섣불리 글을 써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강다방 이야기공장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용지로 162 (옥천동 305-1)

독립서점 & 지역 전문 편집샵 🌊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지역과 여행자를 연결합니다 🌲
강릉에 대한 이야기를 강다방 이야기공장에서 만나보세요 📚
강릉역 도보 5분 거리 위치 🚄

 

 

 

 

 

블로그 https://kangdbang.tistory.com
스마트스토어 https://smartstore.naver.com/kangdbang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angdbang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kangdbang
트위터 https://mobile.twitter.com/kangdbang
핀터레스트 https://www.pinterest.co.kr/kangdbang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aP8itqobqsqTnOwGdhnGQQ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