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최근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그래서 소개해보는 책. 책을 읽는 동안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이 나왔을 때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는데, 그때보다 지금 우리의 삶은 더 나아졌을까 생각해보았다. 한국이 싫어 도망친 주인공이 도착한 곳에 낙원은 있었을까? 책과 영화의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니 책과 영화 모두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제목 : 한국이 싫어서
저자 : 장강명
펴낸곳 : 민음사
제본 형식 : 종이책 - 양장제본
쪽수 : 204쪽
크기 : 127x188mm
가격 : 14,000원
발행일 : 2015년 5월 8일
ISBN : 978-89-374-7307-4 (04810)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에서 연탄을 뗐던 건 기억나니? 그때는 이 동네가 전부 연탄을 피웠지. 너희 반에 영진이라는 애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서 네가 눈이 빨개지도록 엉엉 운 적도 있어. 그다음부터 네가 연탄 가는 걸 무서워했는데, 그렇다고 그걸 예나한테 시켜서 내가 혼을 낸 적도 있지."
"그랬던가? 난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랬어. 예나가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얘."
그 일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가 어릴 때 예나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던 일은 기억나지. 버릇이 없다며 옷장에 가둔 적도 있는데. 엄마는 이야기를 계속하셨어.
"우리가 이 집에 20년 넘게 살면서 집 구조를 많이 바꿨어. 수리도 여러 번 하고, 옥상 올라가는 계단도 부엌이 아니라 거실에 있었지. 내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는 거야. 아궁이를 없애고 기름 보일러를 들여놓고, 쥐도 안 나오고. 우리나라가 워낙 빨리...
잘 모르겠더라.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예나랑 산사춘을 마셨지. 한 병을 다 비운 뒤에는 내가 집에 내려가 소주를 들고 올라 왔어.
예나한테 아이엘츠 공부를 하다 읽은 영어 지문에서 본 이야기를 해 줬어.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
다른 트렁크 하나와 백팩과 함께 멍한 정신으로 길에 쪼 그려 앉아 있었지.
흐물거리는 이민 가방, 트렁크, 그리고 백 팩. 호주에 처음 왔을 때와 짐이 똑같아. 이민 가방 바퀴가 부서진 건 재인 탓이 아니야. 가방도 4년 동안 제 역할을 할 만큼 해냈어. 내가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데 가방이 문제가 아니라 그사이 제대로 된 정착지조차 얻지 못한 내가 문제지. 난 도대체 호주에 뭐하러 왔지? 난 대체 왜 태어난 거야? 고생하려고 태어났나?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맞아?
그렇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사이, 재인이 이민 가방을 새 집에 옮겨 놓고 내 트렁크와 백 팩도 가져갔어. 마지막에는 내 팔을 잡아서 자기 목에 걸고 나를 정말 질질 끌다시피해서 데려갔어. 걔 몸에서 시큼달달하게 땀 냄새가 나더라.
짜잔. 오늘의 스페셜 메뉴는 갈릭 새우와 모듬 해산물...
"내가 멋있었다고?"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지.
"응. 스튜어디스가 와서 음료수 주려고 '우드 유 라이크 섬씽 투 드링크?'라고 묻잖아. 그런데 네가 세 번이나 '아이 벡 유어 파든?"이라고 교과서적인 답을 하더라고. 발음도 안 좋으면서. 나는 그때만 해도 내 영어 후진 거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콩글리쉬 쓰고 그랬거든. 그래서 속으로 너를 보면서 '쟤 대단하다, 용감하다.' 이렇게 생각했어. 그 스튜어디스가 너한테 되게 불친절하게 굴었는데도 넌 뭐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땡큐' 그러더라. 다음 날 유학원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얼마나 놀랐다고."
재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까 그 시절이 생각나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더라. 한마디라도 더 영어를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던 때였지.
"하지만 너는 공항에서 유학원 사장님 부부를 만나지 않았잖아?"
나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평생을 걸어?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다시 호주로 가던 날에도 지명이가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지금 내가 왜 호주로 가는 걸까 생각해 봤어.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지명이한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지.
"지나 봐야지. 내가 너를 잊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잊지 못하면 내가 호주로 가는 거고, 아니면 여기서 다른 사람을...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 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 불어. 햇빛이 짱짱해서 난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면서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나 자신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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