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
해저도시 타코야키
해수면이 높아져 모든 땅이 물로 덮인 지구를 배경으로 쓰여진 단편 소설 6편.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참신하고 재밌었다. 각각의 소설은 서로 다른 인물, 배경이지만 약간의 떡밥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절망의 시대에 틔운 새싹 같은 소설 🐙
제목 : 해저도시 타코야키
저자 : 김청귤
펴낸곳 : 래빗홀 : 인플루엔셜
제본 형식 : 종이책 - 무선제본
쪽수 : 269쪽
크기 : 120x188mm
가격 : 15,000원
발행일 : 2023년 3월 27일
ISBN : 979-11-6834-093-0 (03810)
차례
불가사리 · 7
바다와 함께 춤을 · 61
파라다이스 · 85
해저도시 배달부 · 121
해저도시 타코야키 · 181
산호 트리 · 239
해설 | 미래를 색칠하는 파국과 환상 심완선 · 251
작가의 말 · 265
추천의 말 · 268
그렇게 인공 자궁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만들어진 태아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결합된 동물 특성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거나 아예 더디게 자랐다. 혹은 죽어버리거나.
나는 엄마가 두 명이다. 혹등고래 세포와 결합한 엄 마와 문어 세포와 결합한 엄마다. 고래 엄마인 고야와 문어 엄마인 해수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특히 해수 엄마는 모성애가 강한 문어의 성격이 작용했는지 인공 자궁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자신의 몸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싶어 했다. 유전자 편집도 가능한 기술력이라 난자와 난자의 유전 정보를 결합해 태아를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바다로 들어가는 인간은 두 부류였다. 죽고 싶어서, 혹은 살고 싶어서. 과거에서부터 잠들어 있던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인간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어 변이시켰다. 그게 인간을 살릴지, 죽일지는 바다에 맡겨야 했다.
그건 고래 유전자와 결합한 엄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게다가 엄마가 무사히 돌아와도, 신체가 온전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제발, 제발.......
엄마가 집을 나간 다음 날 연구소에서 사람이 왔다. 코코아가루를 비롯해 각종 밀키트, 열매를 따도 일주일 안에 다시 맺힌다는 신품종 나무 화분, 통풍이 잘...
다시 숨을 고르고 내려와 칼질을 했는데,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작살이었다. 작살이 주변에 있는 물고기들을 관통한 채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자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나를 작살로 조준하고 있었다. 사람을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걸 보면 이들에게 살려달라고 빌어봤자 소용없을 것이 뻔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칼질을 하자 그물이 투두둑 끊어지며 한꺼번에 많은 바다 동물이 쏟아져 나왔다. 바다 전체로 생명이 흘러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말로만 들었던,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을 본다면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감상도 잠시, 재빨리 도망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배 인간들은 나에게 상어와 돌고래를 불러내면 처음 온 날처럼 따뜻한 음식과 푹신한 침대, 온수 샤워 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바다에 사는 나에게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바다에서는 배가 고프면 해초를 뜯어 먹고 조개를 잡아먹었다. 인간들의 음식은 나에게 너무 자극적이었고, 그렇게 맛있지도 않았다. 몸이 푹 들어가는 침대도 불편했다. 모래 위에서 편하게 자고 싶었다. 온수 샤워? 돌굴뚝에서도 온수는 충분히 나오는 데다가 씻는 것도 이끼나 각질을 먹는 물고기들에 게 몸을 맡기는 게 훨씬 깨끗할 것이다
.
선물이라며, 좋은 것이라며 내민 것들을 내가 다...
돌고래들이 부르는 노래와 저 멀리서 들리는 고래의 소리가 뒤섞였다. 내가 사랑한다고 노래한 것을 듣고 부르는 답가였다.
사랑해 파랑아 사랑한단다 아가야.
원래는 인간들을 잘 피해 다녔는데 다들 나 때문에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니 아주 미안하고, 그보다 더 많이 고맙고 행복했다.
바다 아래로 가라앉을수록 점점 어두워졌는데, 나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빛 가루 덕분에 어둡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소용돌이를 만들던 무리 중 상어와 돌고래가 나를...
그만큼 배달부는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수인을 신인류라 하며 떠받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일 뿐이라며 '배달부'라는 직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배달 일을 왜 안 하냐, 직무유기다, 그렇게 태어났으면 축복인 줄 알고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원성이 점점 늘어났다.
언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시장 말고도 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배달 일을 언제 시작할 거냐고 묻는 일이 늘어났다. 어릴 때부터 경험을 쌓아야 베테랑이 되는 거 아니겠느냐, 내가 또래보다 유난히 큰 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는 말도 들었다. 돔에 있는 식량을 축내기만 한다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럴 거면 로봇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나 싶지만, 해저도시에서는 전기가 매우 귀하다. 로봇을 충전하는 것 보다 인간을 인공 배양하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힌다. 식량도 조금만 먹고 사고도 일으키지 않으며 평생 청소 만 하다가 다시 다음 인공 인간의 재료가 되기 위해 제 발로 공장으로 돌아가니 완벽한 에너지 순환 시스템인 것이다. 돔 중심부의 진짜 인간들은 얼마나 편할까.
나는 이런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청소부를 만들 때 필요한 세포를 죽은 청소부에게서 가져오는데,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청소부들의 세포가 섞여 융합하고 성장하면서 본능처럼 알게 되는 게 많았다.
종종 불합리, 불공정, 불평등 같은 단어가 떠올라 괴 로웠고, 시원한 바람이나 태양, 꽃, 사랑, 대화, 체온, 책...
돔 안의 돔은 어떤지 상상하려고 해도 사소한 힌트 조차 없으니 매번 상상이 바뀐다. 저긴 환한 빛이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야, 따뜻한 음식을 먹고 살 거야, 옛날에 태어난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돔이 깨진다면 안의 돔만 둥실둥실 떠서 그 안의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무슨 상상을 해도 다 좋은 것뿐이다.
돔은 아주 넓어서 높은 곳에 있어도 돔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돔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건물들이 계획도시처럼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전기가 귀해 엘리베이터는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돔 안의 돔에서 멀어질수록 건물 층수가 높아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아주 가끔, 건물 창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책을 보고 있는 걸까? 그저 빛을 바라보고 있나? 옷이...
"우리는 멸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을 거라 믿었다"
물에 잠긴 지구에서 춤추고 사랑하는 존재들의 해피엔딩
바다는 평등하고 기술은 잔혹하며 진화는 참혹하다. 하지만 김청귤의 인물들은 그렇게 발 디딜 곳 없는 곳에서 끝까지 서 있는 법을 보여준다. 발끝으로 선 인물들은 평등한 재난 앞에서 각기 다른 태도로 버틴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이기적으로 구는 인간은 존재하지만, 공존과 협력을 택하는 이들 또한 있다. 김청귤의 글은 우리가 끝끝내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옆에 선 사람을 끌어안으려는 몸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으로 변하든.
천선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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